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개인 간의 작은 다툼인 폭력에서부터 종족 간의 전투,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국가 간 전쟁까지. 전쟁은 인류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인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크고 작은 전쟁이 없었던 때가 단 한순간이라도 과연 있기는 했을까?

전쟁은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사람을 제외한 여타 동물이나 식물들은 생명을 이어 가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경쟁만 할 뿐이다. 만물의 영장이요, 언어의 동물이요, 사색의 동물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인류가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고귀한 존재들이 극악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전쟁은 사람을 향해 일어난다. 사람들이 가끔 자연계의 재해나 맹수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과의 전쟁'이라는 식으로 이름을 붙이기는 했으나, 본질적으로 전쟁은 나와 내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또한 사람을 위한 전쟁이기도 하다. 명목상으로는 그랬다. 모든 전쟁은 자국민의 안녕을 위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어난다. 때로는 인도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웃 나라를 도와주기도 한다. 세계 평화를 위한 대규모의 전쟁도 있다. 그렇기에 모든 전쟁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벌어진다.

하지만 사람의 이익을 위한 전쟁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다. 비록 내 나라와 내 민족에게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해도 전쟁의 끝은 언제나 비극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최소한 1,000만 명이 전쟁터에서 사망했다. 그밖에도 수백만 명이 전쟁과 관련된 후유증 등으로 죽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총소리가 멈춘 지 단 20년 만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이번에는 5,000만 명이 죽었다. 이후에도 저마다 다양한 이유와 원인으로 전쟁이 일어났지만 그 끝은 비참한 눈물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비참한 전쟁이 언제나 '정당한 전쟁'이었다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쪽에서는 언제나 정당한 이유와 근거를 갖고 전쟁을 시작했다. 정당한 전쟁은 더 발전해서 '거룩한 전쟁'이 되기도 한다. 전쟁은 정의와 공의를 위한 것이고 자기 나라의 이익과 국민들의 안녕을 위한 것으로, 신(神)의 명령으로 벌어졌다.

특별히 기독교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명기에서 명령되고 여호수아서에서 실행된 '진멸'(히브리어 '헤렘')은 기독교의 오랜 딜레마였다. '헤렘'이 여호와의 명령이라는 근거가 기독교가 벌인 전쟁을 거룩한 전쟁이라고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었다. 성경에 써 있는 글자 그대로 이방인들을 향해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말이다.

'헤렘'은 구약성서에서 모두 80회 언급되는데 신께 바치는 '선물', 재판의 '판결', 모든 적을 몰살시키는 '진멸'(남녀노소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까지도) 등의 뜻으로 쓰였는데, 가장 많은 횟수로는 '진멸'의 뜻으로 썼다.

실제로 여호수아서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 교회에 의해 헤렘은 기독교 역사에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가져다주었다.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스위스 종교개혁가, 1504~1575년)는 모세의 미디안과의 전쟁과 여호수아서의 아말렉과의 전투를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전멸 전쟁으로 해석했으며, 윌리암 고그(William Gouge, 1578~1653년)는 교황절대주의를 아말렉으로, 개신교를 여호수아로 이해했다.

이러한 해석은 미국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처참하게 학살하는 시기에도 커튼 마터(Cotton Mather, 회중교회 목사, 1663-1728년)에 의해 적용되었다. 여러 면에서 탁월한 신앙이었음에도 이방인을 적대하는 면에서는 헤렘을 적용하여 자신들 행위를 정당화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 앞서서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라"(신 20:16)는 헤렘 명령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1. 가나안 족속은 모두 진멸되었을까?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히브리어 '헤렘' Ḥerem)하라는 명령은 맨 처음 모세에게 주어진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신 7:1-2)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벌어진 첫 전투에서 여리고 성의 시민들을 상대로 조직적인 학살을 감행하는데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가축들까지도 진멸한다.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수 6:21)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두 번째 목표인 산지 위에 있는 아이(Ai) 성과 전투를 벌였으나 실패한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한 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에게 온전히 바쳐야 할 물건을 누군가 도둑질하여 물건들을 따로 빼돌렸기 때문이었다(수 7:11). 그래서 탈취물을 빼돌린 아간과 그의 자녀와 심지어 짐승들도 함께 돌에 맞아 죽게 된다.

그런 다음에 두 번째 공격이 성공하게 되고, 아이 성 전체 인구 1만 2,000명이 진멸(헤렘)되는데 도망가는 생존자들도 학살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광야로 추격하던 모든 아이 주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그 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이라."(수 8:24-25)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에서 진멸(헤렘)은 모든 땅에 걸쳐서 진행된다. 오로지 세겜 사람만이 살아남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족장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부족 간 동맹 때문으로 보인다(창 12:4-9). 기브온 사람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진멸을 피해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종이 되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족속을 진멸(헤렘)하는 것은 이렇게 마무리된다(수 10:40; cf. 11:10-11, 11:23).

"여호수아가 온 땅, 곧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것과 같았더라."

진멸(헤렘)에 관한 이야기는 문학적인 과장일까? 아니면 이런 끔찍한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일까?

성서를 '글자 그대로' 믿고 해석하는 이들은 여호수아서의 진멸 전쟁을 역사적으로 실행된 행위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호수아가 진멸했다는 족속들이 사사기에 보면 건재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삿 3:5)

단순히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헷 사람 우리아는 다윗의 충복이 되었으며(삼하 11:3), 헤렘되었어야 할 가나안 족속들은 솔로몬의 역군이 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아닌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남아 있는 모든 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않았으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역꾼으로 삼아 오늘에 이르렀으되"(대하 8:7-8).

이렇게 성서 자체도 진멸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가 존재한다. 심지어 여호와의 명령이 있기에 앞서 헤렘이 먼저 시행되고(신 2:34), 나중에 명령되는데(신7:2) 이와 같이 헤렘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점이 적지 않다.

그렇기에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 족속에게 행해진 진멸 명령과 실행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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