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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논쟁, 사실 확인에 더 진지해야
왜곡된 칼뱅의 이슬람 이해
  • 김동문 (yahiya@hanmail.net)
  • 승인 2016.10.0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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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이것을 이렇게 말했다'는 인용은 우리 일상에 일반적인 어법인 것 같다. 누구를 믿으면 그의 말, 그의 주장 때로는 학문적인 주제나 그 특정인이 말한 비전문 분야 이야기나 주장조차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아니 개인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 그의 권위를 빌려 전달하고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글이나 책, 강의나 대화에서 접하게 되는 많은 정보와 지식이 있다. 나는 습관적으로, 이것을 객관화하려고 노력한다. "누가 언제, 어떤 자리, 어떤 글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행동했다"는 식이다. 이런 식의 표현이 특정인 주장이나 관점에 대한 동의 없이 객관화하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최근에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 이름이 자주 언급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칼뱅의 이슬람 이해'라는 주제도 종종 다뤄지는 듯하다. 칼뱅이 이슬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는 식의 글과 마주하면서, 호기심도 적지 않았다. 신학 공부하던 시절 자주 들었던 그 이름, 그러나 졸업 이후 거의 잊고 지냈던 인물 칼뱅. 그동안 거의 읽지 않았던 그의 글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A 학자의 글을 B 교수가 인용했다. 인용하면서 적잖은 해석의 차이, B 교수의 전제가 반영된 듯했다. 이것을 C 목사가 간략하게 축약 인용했다. D 선교사는 이것을 바탕으로 강의했다. 물론 이런 일련의 정보 공유 과정에서 첨삭이 이뤄지기도 했다.

B 교수는 A 학자의 글을 마주하면서 1차 자료를 토대로 A 학자를 객관화할 필요가 있었다. C 목사도 B 교수의 글을 A 학자의 글과 1차 자료를 바탕으로 검토했어야 했다. D 선교사는 C 목사 글을 B 교수의 글을 통해, 그리고 A 학자의 주장을 바탕으로, 무엇보다도 1차 자료를 토대로 객관적으로 읽어야 했다.

아쉬운 것은 이런 정보 전달 과정에서 A 학자가 참고하거나 제기한 주제에 관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화가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A 학자, B 교수, C 목사, D 선교사의 칼뱅이 말한 이슬람에 대한 글에 대해, 1차 자료에 해당하는 칼뱅의 글과 설교, 편지, 주석 등을 바탕으로 다시 읽기를 시작한다.

'칼뱅의 이슬람 이해' 다시 읽기

1. 칼뱅은 이슬람에 관한 그의 견해를 특별한 작품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의 대표적 저서 <기독교강요>에 '터키'라는 단어가 단 한 번(2.6.4) 나온다. 연관되는 개념인 '무슬림'과 '무함마드(Muhammad)/마호메트'는 언급되지 않았다.

→ 그러나 칼뱅의 1536년판이나 1559년 최종판 <기독교강요>에 '무슬림'을 뜻하는 '터키인(들)'이라는 단어는 다섯 번 나온다. 소논문에서 인용하여 언급한 것처럼 2.6.4 외에도, 3.4.21, 3.13.5, 4.2.10, 4.16.24 등이다. 2.6.4. 표기는 칼뱅의 <기독교강요> 최종판 형식이다. 1536년 칼뱅의 <기독교강요> 초판이나 1541년 프랑스어판에서 한 번 나오고 있기는 하다.

1536년 초판의 경우는 제2장 믿음, B. 사도신경 해설(10-34), 넷째 부분(21-34) 28번째 항목에서 '무슬림(터키 사람들)'을 언급(* * 표시 부분)하고 있다.

"And not only those are to be so treated, but also *Turks and Saracens*, and other enemies of religion. Far be it from us to approve those methods by which many until now have tried to force them to our faith, when they forbid them the use of fire and water and the common elements, when they deny to them all offices of humanity, when they pursue them with sword and arms."

1541년 프랑스어판의 경우, 제4장 4.믿음 : 사도신경 해설, 4부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음' 후반부에서 한 번(* * 표시 부분) 언급하고 있다.

"That is why, either they are not churches in this regard, or there re- mains to us no mark to distinguish between the assemblies of the faithful and *the synagogues of the Turks*. Nevertheless we allow that they have the remains and appearance of church, which our Lord has left there since they were broken in pieces. First is God's covenant; the sacrament, being consecrated by the mouth of the Lord, retains its power despite human impiety."

이런 오류는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원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하반기에 나온 '갱신과 부흥' 12호에 번역 게재된 스튜아트 보닝턴(Stuart Bonnington)의 '칼뱅과 이슬람'[원문 - Reformed Theological Review, Vol. 68/2 (August, 2009), 77-87]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슬람에 대한 언급이 1559년 최종판에 단 한 번 나온다. 타락한 인간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바라야 한다는 제목의 마지막 항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의 맨 마지막 문장에서 칼뱅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투르크족은, 비록 한편으로는 소리 높여 하늘과 땅의 창조주는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하지만, 여전히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참하나님의 자리에 우상을 대체시켜 놓았다."

2. 이슬람 교리에 대한 칼뱅의 태도는 그의 주석서들, 설교들 그리고 강의들에 방대하게 실려 있다. 이 자료들 안에 그의 발언이 짧은 문장이나 별스런 표기나 주해 형태로 흩어져 있다.

→ 그러나 칼뱅의 방대한 설교집이나 주석서, 서신 등에 이슬람에 관하여 언급한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the Turks', 'Turks', 'alcoran'(쿠란), 'Mahomet'(마호메트) 등을 중심으로 칼뱅의 저작물을 검토했다. 칼뱅의 주석서 전체에서 무슬림을 표현하는 'Turks' 단어 빈도수는 극히 적다.

칼뱅의 신구약 주석서 전체를 살펴봤다. 신약 주석에서 9번, 구약 주석에서 16번 정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칼뱅의 소책자와 668통의 서신 등을 검토했을 때, 총 10번 정도 언급되고 있다.

2,000편이 넘는 칼뱅의 설교 가운데 자료 확인이 가능한 설교문을 중심으로 살폈다. 칼뱅의 강해 설교 본문 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을 가진 200편의 구약성경 신명기 설교문 220만 개 이상의 단어 중 연관어는 50번 정도 언급되고 있다.

159번의 욥기 설교 중 여섯 번의 설교에서 이슬람에 관련한 8개의 관련어가 포함된 짧은 언급을 했다. (4:12-19, 10:18-22, 20:26-29, 27:5-8, 32:1-3, 33:14-17)

방대한 분량의 그의 구약성경과 신약 성경 전체에 대한 주석서 가운데에도 신약 주석에서 9번, 구약 주석에서 16번 정도 나타날 뿐이다.

"이슬람의 교리에 대한 칼뱅의 태도가 그의 저작들에 방대하게 실려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3. 칼뱅은 데살로니가후서에 관한 주석에서 '죄의 사람'과 배교를 로마교도들과 동일시했다. "변절이 보다 널리 퍼졌도다! 마호메트가 변절자였으므로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그의 추종자에게로, 터키인들에게로 돌아섰다. 마호메트의 분파는 격렬한 홍수와 같은데, 그것의 폭력 안에서 교회의 절반을 떼어 내어 갔다"고 주장했다.

→ 인용문 각주에 따르면, 이 내용은 데살로니가후서 2:3절 주석에 나오는 내용으로 보인다. 데살로니가후서에 대한 칼뱅의 주석에서 이슬람 관련한 언급은 데살로니가 2:3절이 유일하다. 'Mahomet', 'the sect of Mahomet', 'the Turks'로 언급하고 있다. 인용한 본문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칼뱅의 데살로니가후서 2:3절 주석 내용 중 이슬람 관련 부분은 아래와 같이 다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Mahomet'이 배도자가 되어 그의 추종자들인 'the Turks'를 그리스도에게서 따돌리게 되자, 이 배신은 더 넓게 확대되었다. … 이제 나의 독자들은 처음부터 교회를 약화시켜 온 모든 분파들이 진정한 물길에서 물을 끌어가기 시작한 반역의 통로였지만 그중에도 교회의 절반을 폭력으로 쪼개어 간 'the sect of Mahomet'는 마치 격랑과 같았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4. 칼뱅은 신명기에 관한 그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터키인들이 마호메트를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둘 때에 - 하나님께서 자신을 육체 안에서 나타내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이것은 우리 신앙의 중요한 조항 중의 하나인데) -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사람들이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규명해 왔는지? - 만약 그들이 그들 자신을 성경의 범위 안에 굳게 붙들지 아니한다면, 그것들이 그들 자신이 속이고 규정한 귀신들에 불과한 것임에도! 그런고로 우리는 순수한 종교를 붙들어야 한다고 스스로 잘 다짐하여야 한다."

→ 인용한 문장과 관련된 칼뱅의 설교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무슬림들이, (우리 신앙의 중요한 조항 중의 하나인)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마호메트를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둘 때에… :

When the Turks set their Mahomet in the place of Gods son, knowing not that God has manifested himself in the flesh (which is one of the chief articles of our faith): what a dealing is it? So then, how many things so ever men term by the name of God, they be but devils of their own devising and setting up, if they keep not themselves fast enclosed within the bounds of the holy scripture. And therefore let us mark well, that we must hold us to the pure religion; and when we be well assured of that, then must we come to this law whereof Moses speaks here. And whosoever advances himself against it, let him be rooted out."

이 언급이 담긴 칼뱅의 신명기 13장 6-11절 설교는, 칼뱅이 이슬람에 관련하여 언급한 것 가운데, 가장 짧은 본문 안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자료인 것 같다. '터키인들'은 무슬림이라는 표현으로 의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13:6-11 And although the heathen keep still their dotages, although the Jews be willful in maintaining their false exposition of the law, although the Turks hold still their Mahomets alcoran, although the Papists be still entangled in their superstitions: all in one, so they hold fast this principle, that there is a God.

- For otherwise it is but a mocking of all the holy scripture. I shall say I worship God, and in the meantime I worship puppet. And what is my God? It is a fantasy that I have devised in mine own head: it is not the living God, he disclaims all such dealings, and so am I but a forger. For (as Saint Paul speaks of it in the first to the Romans,) such as have wandered away after their own imaginations, have transformed the majesty of GOD, though their intent was to worship the living God, as the Papists do, which protest that they worship God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likewise the Turks, who say the same thing; and so also do the Jews, notwithstanding that they abhor Jesus Christ.

- And it is said in Saint John, that he which believes not in the Son believes not in the Father which sent him. Nay he that turns away from Jesus Christ, does utterly renounce God. For where dwells the fullness of the Godhead but in Jesus Christ? When the Turks set their Mahomet in the place of Gods son, knowing not that God has manifested himself in the flesh (which is one of the chief articles of our faith): what a dealing is it?

- Behold there comes me an hypocrite that would devise a new Religion, as it were to set up a Popedome here again, or to bring in the Alcoran of Mahomet: now ought such a one to be put to death without forbearing, for so hath God ordained. And if any man say, it is cruelty; let him find fault with God for it, and we shall see if he can prevail.

- God as well as Mahomet. All is one, all may be bidden, so the Cardinals be curried, it is well enough, and it does them good to be so registered: whereby a man may see that they not only mock at all religion, but also could find in their hearts to abolish all religion quite and clean."

5. 칼뱅은 욥기에 관한 그의 설교에서 더 명확하게 규정한다.

"악마적인 흥미가 단순히 성경에 의하여 가르침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바로 그 악마적인 흥미 위에 터키인의 종교가 세워져 있다. 마호메트는 자신이야말로 복음 외에 온전한 계시를 가져올 자라고 말하고 있다."

→ 이 표현도 사실과 조금 거리가 느껴진다. 칼뱅은 1554~1555년 사이에 14개월에 걸쳐 159번 욥기 설교를 했다. 그 가운데 여섯 번 설교에서 이슬람에 관련한 짧은 언급을 했다. 4:12-19, 10:18-22, 20:26-29, 27:5-8, 32:1-3, 33:14-17이다. 이 설교에서 '마호메트'가 두 번 언급되고, 'the Turks(les Turcs)'가 6번 언급되었다.

인용한 내용은, 칼뱅의 욥기 4:12-19에 나오는 아래와 같은 내용과 일부 차이가 있다. 특별히 '악마적인 흥미'로 번역한 표현은 아래 본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And this comes of that diabolic curiosity, that they be not contented to be taught simply by the holy Scripture. Behold also whereupon the religion of the Turks is founded. Muhammad said that he was the one who had to bring full revelation in addition to the gospel. And by means there of, they have utterly become brute beasts. And at this day we see, that these poor beast have become dull and insensitive - with things that are foolish and dull. But that is the righteous vengeance of God in turning them in the wrong direction. As much has been done to other fantastical persons (and specially of our days) which have troubled the Church, and wanted to have their visions.

And it was one of the Articles of that cursed creature which is brusle. For he said, that the holy Spirit had not reigned as yet, but that he was too come. That wicked dishonored God, as though the Fathers of old time have had but a shadow of the holy Spirit, and as though that after he had once shade out himself visibly upon the Apostles, he had withdraw forthwith, in such sort as the Church has been destitute of the holy Spirit.

Behold what he did set down: and as in respect of himself, he would have made himself a Muhammad, to have the holy Spirit at his position."

참고했을 아래 논문에는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도 '악마적인 흥미'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표현이 담겨 있지 않다.

"Mahomet has reported himself to be the party that should bring the full revelation — over and besides the Gospel. And by means thereof, they [the Islamic Turks] have utterly become brute beasts. … At this day, we see that those poor beasts busy their heads about as doltish and unsensible things as any can be. But it is the just vengeance of God, Who has given them over to a wilful stubborn mind!"

6. 칼뱅에 의하여 특별히 비판된 쿠란 교리의 또 다른 중요한 요점은 유대주의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이 예수님의 신성과 삼위일체에 관한 기독교적 관점을 부인하는 것이다.

→ 이 주장의 근거 자료로 칼뱅의 <기독교강요> 2.6.4가 각주에 언급되고 있다. 논지는 충분히 동의가 되지만, 그 근거 자료로 아래 <기독교강요> 2.6.4.가 언급되는 것은 조금 아쉽다.

"'The saying of John was always true, 'whosoever denieth the Son, the same has not the Father,' (1 John 2:23). For though in old time there were many who boasted that they worshipped the Supreme Deity,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yet as they had no Mediator, it was impossible for them truly to enjoy the mercy of God, so as to feel persuaded that he was their Father. Not holding the head, that is, Christ, their knowledge of God was evanescent; and hence they at length fell away to gross and foul superstitions betraying their ignorance, just as the Turks in the present day, who, though proclaiming, with full throat, that the Creator of heaven and earth is their God, yet by their rejection of Christ, substitute an idol in his place.'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라고 한 요한의 말은(요일 2:23) 언제든지 옳았다. 천지를 만드신 최고의 존엄하신 분을 경배하노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에게 중보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참으로 맛보지 못했으며, 따라서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믿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자기의 머리로 모시지 않은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그 지식은 잠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또 그 결과로 그들은 유치하고 추악한 미신에 빠져, 자기의 무지를 폭로했다. 현재 the Turks(무슬림들)도 천지의 창조자는 하나님이라고 힘껏 외치지만, 그리스도를 부정하면서 우상으로 진정한 하나님을 대치하고 있다.'"

7. 칼뱅의 신명기에 관한 설교에서, 그는 '교황은 서방의 적그리스도요 이슬람은 동방의 적그리스도'라고 말하면서 그는 이 둘을 '두 뿔'로 언급하였다.

→ 이는 신명기 설교 108번째로, 1555년 11월 27일(수)에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인용문에 가장 근접한 신명기 설교문 단락은 아래와 같다. 칼뱅의 신명기 18장 9-15절 설교 본문에서 "이슬람은 … 동방의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렇게 언급한 A 학자의 연구 논문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슬람은 동방의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찾을 수 없다.

"Moses and all the Prophets are but underlings, to the end that Jesus Christ might speak: and seeing that the son of God is come, is it real that men should put forth their own dreams and dotages and that Jesus Christ should hold his peace? […] (Oh they be the high Mysteries which the Pope devised about the Gospel.) Like as Mahomet says his Alcoran is sovereign wisdoms so says the Pope of his own decrees: for they be the two horns of antichrist. Seth it is so, do we not see that we cannot in any wise cleave to the Pope but by renouncing Jesus Christ?"

칼뱅의 신명기 설교 전체를 검색해 봐도, 칼뱅이 이슬람을 '동방의 적그리스도'라 언급한 대목은 없는 것 같다.

객관화 작업의 중요성

여기서 글을 맺어야 할 것 같다. 언급한 다른 내용들도 원자료로 평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말이다. 저자가 어떤 전제를 갖고 글을 발표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최소한 칼뱅 관련하여 언급하고 인용했던 원자료에 따른다면, 칼뱅이 본 이슬람에 관한 주장은 지나친 면이 적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칼뱅이 말한 것 이상으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언어로 칼뱅의 말이 읽혀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까닭에, 이 글이 이슬람과 무슬림을 혐오하는 이들에게, 악용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누가 무엇을 주장하면, 그 말을 믿을 것인지 안 믿을 것인지를 판단할 것이 아니다. 그 문제 제기에 대해, 내 입장을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수고가 필요한 것 같다. 퍼 나를 필요가 있거나 인용할 이유가 있다면, 1차 자료를 통해 객관화, 사실 확인을 한 이후에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글쓰기에서 말하는 선행 연구 작업 확인은, 1차 자료를 통한 객관화 작업으로 이뤄져야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생각난다. 무비판적인 글 읽기, 말씀 듣기가 정보 공유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류와 왜곡을 낳고 있다고 생각한다. 맹목적인 정보 퍼 나르기가 왜 조심스러운지도 곤혹스럽게 다시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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