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일부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뉴욕 라과디아공항을 출발한 US에어웨이즈 1549편 여객기는 이륙 후 2분 만에 위기에 봉착한다. 버드 스트라이크(새떼와 충돌)로 엔진 2개가 동시에 망가진 것. 고도는 계속 낮아지고 있었고, 회항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기장 체슬리 설리 슐렌버거 3세(톰 행크스 분)는 비상 착수(着水)에 돌입한다.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태운 여객기는 강 위에 불시착한다. 결과는 전원 생존. 2009년 1월 15일 일어난 일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설리'는 '허드슨의 기적'이라 불리는 실화를 다룬다. 이스트우드는 사고 경위를 조사받는 설리의 내면을 파헤치면서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단순히 영웅 서사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사고 경위를 조사하는 공청회 장면. (영화 스틸 컷)

이스트우드는 여객기가 착륙에 성공하지 못했을 '만약의 경우'도 잇달아 보여 준다. 작품 중 설리는 악몽을 꾸고 착시를 겪는다. 낮은 고도로 비행하던 여객기가 뉴욕 시내 고층 빌딩에 부딪혀 폭발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여기에는 9·11 테러 이후 미국에 대한 암시가 담겨 있다. '필요'에 대한 성찰이다. 영화는 내내,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자리에 있었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영화는 '208초'를 수차례 언급하는데, 이는 새떼와 충돌한 뒤 착수를 끝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40년 넘게 조종했지만 단 208초 사이 일로 평가를 받게 되었죠"라는 설리의 말은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먼저는 사회를 지배하는 영웅주의의 헛헛함, 휴머니티를 자극하는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 현실을 보여 준다. 사건 이후 언론이나 사람들로부터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심적 부담을 느끼는 설리와 주변인들 모습이 그려진다.

반대로 이는 설리가 40년간 어떤 자세로 여객기를 운행해 왔는지 드러낸다. 208초에 설리의 40년 세월이 집약돼 있다. 버드 스트라이크 이후 부기장에게 매뉴얼 확인을 지시하고, 침착한 자세로 과업을 수행하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시착 후 설리는 승객이 모두 빠져나간 비행기 안을 두 번 살피는 등 기장으로서 책임감을 보여 준다.

비상 착수에 성공한 기장과 일사불란하게 사고에 대응한 승무원. 24분 만에 구조를 끝낸 1,200명의 구조대원. 한국이라는 거대 서사 앞에 던져진 이 영화의 메시지는 묵직하다.

▲ 충돌에 대비하라고 방송하는 설리(사진 위). 여객기가 불시착한 뒤에도 설리는 승객들의 탈출을 돕는다. (영화 스틸 컷)

아무리 경우가 다르더라도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선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을 반복한 후 승객보다 먼저 빠져나간 선원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속옷 바람으로 나온 선장 등, 더 말해 무엇하겠나.

세월호 참사는 '허드슨의 기적'과 사뭇 대조된다.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불시착 사고는 그날 수습이 끝났지만, 세월호는 2년 6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감감할 뿐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설리'를 보는 내내 부끄럽다. 이 영화는 우리가 세월호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거의 모든 쇼트에서 내내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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