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장 총회 실무를 책임지는 '총무'가 8년 만에 바뀌었다. 배태진 목사의 뒤를 이어 이재천 목사가 당선됐다. 소위 비주류로 분류돼 온 그의 당선을 놓고, 환영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 목사는 소통과 공감으로 총회를 이끌어 가겠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올해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교단 소속 한신대학교 총장 사태부터 직전 총무의 재정 횡령 의혹, 목회자 성 추문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언뜻 보면 개별 사건처럼 보이지만, 교단 인사들은 한 문제로 인식했다. 어느 때보다 교단 개혁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기장 목회자 1,045명은 작년 11월, 한신대와 교단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여론이 형성됐고 9월 101회 총회에서 '결실'을 맺었다. 교단 안에서 '비주류'로 통하는 이재천 목사가 신임 총무에 당선된 것.

학생들 반발을 샀던 한신대 강성영 총장서리는 총장 인준을 받지 못했다. 학교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한 한신학원 이사진에게도 자진 사퇴를 권고했다. '성 윤리 강령 제정 및 교단 내 성폭력 예방과 대책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기로 했다.

응집된 여론의 파급력은 컸다. 무엇보다 5명 후보를 제치고 신임 총무로 당선된 이재천 목사를 향한 교단 내부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교단 개혁을 주창해 온 이건화 목사는 "총회를 향한 불신임이 컸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높았고, 총회에서 표출됐다. 천지개벽하듯 교단이 바뀌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재천) 신임 총무와 총회 임원진이 개교회들과 함께 소통하고 발맞춰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4년 임기를 시작한 이재천 총무를 10월 7일, 서울 종로에 있는 기장 총회 회관에서 만났다. 이 총무는 이전까지 목회와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다. 신학 이론에 정통한 인물로 알려졌지만, 오랫동안 목회 현장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1985년 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에는 미국 뉴욕에서 목회를 했다. 한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비주류가 당선돼 교단 내부 반응이 뜨겁다"는 기자 말에, 이 총무는 "내가 비주류는 맞다. 술을 안 먹는다"며 웃으며 말했다. 이 총무는 교단 구성원의 바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인터뷰 시작부터 끝까지 '공감'과 '소통'을 강조했다. 총회는 개교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 아래 "목회자와 교인을 섬기고, 돕고, 지원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교단을 뜨겁게 달궜던 한신대 사태, 목회자 성 추문, 여권신장 문제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교단 구성원 의견을 적극 수렴해 한신대를 정상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했다. 목회자 성 추문과 여권신장 문제 원인을 남성들의 잘못된 '의식'에서 찾았다. 한국교회는 '여성 리더십'이 필요할 때라며 이와 관련된 여론을 천천히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아래는 이재천 총무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 이재천 총무는 "지금까지 기장 교단을 소수의 사람들이 이끌어 왔다. 소통과 공감으로 불신을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한국기독교장로회)

- 쟁쟁한 후보들을 따돌리고 총무에 당선됐다. 교단 일각에서 "비주류가 당선됐다"며 환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식상한 표현이 되어 버렸지만, 한국교회든 사회든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가 소통의 부재다. 교회와 교단은 형제자매들이 더불어 일하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 교단은 오랜 기간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주도해 왔다. 이걸 바로잡자는 거다. 소통하면서 한마음으로 일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거다.

개교회와 교단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걸 피부로 공감한다. 사회는 개체화·파편화되면서 극단으로 가고 있다. 교회는 이런 흐름에 반하는 집단이어야 한다. 서로의 아픔과 어려움을 살펴야 한다. 공동체로서 서로 손잡고 같이 가야 한다.

나는 큰일 많이 하겠다는 헛된 공약은 세우지 않았다. 나부터, 총회부터 정보가 있으면 함께 공유하고, 일할 기회가 있으면 알리고,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해 가겠다고 다짐했다. 서로의 의식을 공유, 공감하면 서로가 행복할 수 있다.

- 전반적으로 교세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장도 마찬가지다. 전체 교인 수가 26만 4,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교인이 없으면 교회도 존재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성령 운동'과 '신앙 운동'을 펼쳐나가겠다고 했는데, 이는 대형 교단들의 캐치 프레이즈 아닌가. '기장성'을 회복하는 게 먼저 아닌가.

많은 사람이 '기장성'을 사회참여로 생각한다. 그것도 괜찮은 이야기인데, 기장은 근본적으로 신앙 공동체다. 사회참여를 하든 뭘 하든 신앙 공동체가 하는 일로 봐야 한다. 공동체가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고백하건데 '성령'이다. 성령 운동과 신앙 운동이 왜 (기장성과) 반대되거나 배치되어야 하는가. 그 생각 자체는 동의하기 어려운 편협한 사고다.

기장이 기장일 수 있는 건 신앙고백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운동의 역사는 성령이 역사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신앙은 쏙 빼 버리고, 사회참여만 강조하는 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기장의 역사는 곧 성령의 역사다. 사회적 불의가 판치던 상황에서 기장은 신앙고백과 성령 고백으로 불의에 항거했다. 신앙과 성령을 빼놓고, 액션과 행위만 이야기하면 안 된다.

기장 안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성령의 뜨거운 은사 체험을 사모하는 이들도 있고, 하나님의 선교로 일컫는 사회참여에 헌신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고, 복음 선교에 앞장서는 이들도 있다. 다양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기장 공동체라고 고백할 수 있다. 신앙고백 없이 가능할 수 있는 일인가.

한국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기도 한데 "너희들은 이렇다"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게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이는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몰이해는 다른 말로 사랑의 부족이다. 사랑은 열린 마음이기도 하다. 사랑이 있다면 상대방이 뭔 짓을 하든 품어 안을 수 있다. 이게 바로 한국교회를 향해서 기장이 줄 수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죄하거나 시비하지 않는다.

- 출마 당시 사회적 소명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중 '여성 리더십'의 참여를 넓혀 가겠다고 했는데, 여권신장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개인적으로 이번 총회에서 양성평등위원회가 청원한 내용들이 부결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총회 결정에는 나 역시 아쉬움을 느낀다. 다른 한편으로는 운을 띄워 보는 게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회라는 게…교회를 움직이는 건, 어떤 면에서 보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고, 기다림이 요청되기도 한다.

(교회보다) 앞설 때도 있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뒤처질 필요도 있다. (부결됐다고) 낙심하지 말고, 계속 지속적으로 해 나가면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양성이란 말 요즘 안 쓰는 거 다 안다. (양성평등위는 위원회 명칭을 '성정의위원회'로 바꿔 달라고 했지만, 부결됐다. - 기자 주) (하지만) 다수 대중의 인식은 '양성' 용어를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다수가) 인식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우리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왜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 하느냐"고 상대방을 타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 소통이 부족했구나, 보완해 나갈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나는 미래 교회가 요청하는 리더십의 유형은 '여성적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의제가 바로 '생명'이다. 생명 문제를 이야기하는 데 소위 남성이 능한가, 여성이 능한가. 인정할 건 인정하자. 교회는 생명의 자리다. 교회는 곧 생명을 살리는 도구다. 생명을 살리는 교회에 여성적 리더십이 꼭 필요하다. 문제는 역시 공감일 것이다.

▲ 9월 말 열린 기장 101회 총회는 어느 때보다 이슈가 많았다. 한신대 총장 인준, 성 윤리 제정, 여권신장 등 여러 안건을 다뤘다. 이재천 신임 총무는 특히 여권신장과 관련된 굵직한 안건들이 통과되지 못한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다른 교단도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인데, 여성 교역자들이 설 자리가 부족하다. 여기에 대한 대비책은 있는가.

쿼터제를 늘리는 거다. 지속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그렇다고 목사 청빙에 관해 개교회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총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상당히 우회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 최근 목사 성 추문으로 논란이 일었다. 교단 안에서도 이 문제로 시끄러웠다. 이런 차원에서 양성평등위가 요청한 '성 윤리 강령 제정 및 교단 내 성폭력 예방과 대책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로 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성 윤리와 관련해 공유해야 할 기본 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부분이 잘 준비돼 있지 않다. 이건 인정해야 된다. 뒤처져 있고, 미비하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사회적으로 여러 프로그램이 나와 있으니까 함께 공유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기장 지도자들이 진지하게 공부해야 한다. 교단 전반적인 분위기와 행태들은 여전히 남성 중심주의적이고, 윤리적으로 둔감하다. 무의식적으로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떠나서, 타자에 대한 배려와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 점은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신앙 교육 영역이기도 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꼭 필요하다. 이런 교육이 잘 이뤄진다면, 윤리적 의식도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 작년 말부터 시작된 한신대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총회에서 총장 인준이 부결됐고, 이사회 자진 사퇴도 권고했다.

총회가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이 문제에 참여했다고 본다. 지금 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정해져 있다. 다수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수렴해 전달할 계획이다. 학교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겠다.

공약 가운데 은퇴 목회자 중심의 마을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눈에 확 들어온다.
표를 의식하고 내세운 게 아니다.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거다. 교회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분들의 삶을 보장하는 건 당연한 거다. 이 일을 못하면 공교회로서 자격 미달이다. 은퇴 이후에 집도 없이 살아가는 목회자가 절반이 넘는다. 공교회가 교회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분들에게 삶에 대한 기본은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공교회가 그분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지를 공유해야 한다. 공감하고 의지를 공유만 하면 구체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0~20년 길게 보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목회자 마을은 한국사회에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로서 롤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 이 총무는 미래 교회들은 여성적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 쿼터제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독 언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언론이 가진 기능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고백하건데 한국교회 미래가 민족의 미래다.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는 역할도 좋은데, 때려서 세우냐, 보듬어 안아서 세우냐 등 여러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언론이 어떤 기능을 하는 게 좋을지 같이 고민해 보면 좋겠다. 기사는 한 번 나가면 끝이다. 정정 보도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언론은 사람들 의식을 결정하는 정보 전달 매체다. 그 부분에 대한 책임성을 함께 씨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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