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흥미로운 책이다. 요한은 자신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바탕 위에 이 복음서를 기록한다. 요한은 공관복음서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산상수훈, 겟세마네 기도, 성찬식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한다. 반면에 공관복음에는 없는 가나 혼인 잔치, 베데스다 기적, 간음하다 잡힌 여인, 나사로의 부활 등의 이야기를 넣었다.

그렇다고 요한이 공관복음과 상관없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는 빛과 생명과 진리와 영생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복음서의 주제와 다양성을 더욱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그리하여 이 빛과 생명이신 분을 더욱 밝히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이분을 믿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하려 한다.

이 책은 요한복음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신학적인 주제 8가지를 심도 있게 구성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이 서평에서 8가지 아티클을 통해 드러나는 요한복음의 핵심을 4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인생과 공동체를 바꾸시는 예수

▲ <요한복음 새롭게 보기 - 요한복음의 주요 주제들에 대한 심층 분석> / 리처드 보컴 지음 / 문우일 옮김 / 새물결플러스 지음 / 384쪽 / 1만 7,000원

우선, 예수님은 인생과 공동체의 질을 바꾸시는 분이다. 저자는 1장 '개인주의'에서 요한복음이 신자 개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강조한다고 치밀하게 논증한다. 또한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의식이 강조되는 문화 속에서 공동체적으로 읽혀지기 쉬운 요한복음이 이렇게 개인적인 책으로 쓰였다는 특징을 잘 소개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요한복음이 개인적인 관계와 헌신을 위한 책이라는 것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저자는 학풍과 관습을 뛰어넘어 책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필자는 1장에서부터 저자의 질문과 설득에 감탄했다. 실제 요한복음을 봐도 예수님께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그들의 상황과 환경을 파악하고, 그들을 이해하면서 자신과의 관계로 초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다나엘과의 대화, 니고데모, 38년 된 병자, 사마리아 여인, 마르다,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와의 대화 등, 예수님께서는 그들과의 깊은 만남 가운데 참빛을 비추어 주셔서, 그들을 신적 질서와 진리를 따르는 인생으로 바꿔 주신다. 생명을 상실하고 향기도 없고 빛도 없는 인생을 보석같이 빛나는 인생으로 역전시켜 주신다.

2장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체'를 보면 저자는 요한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하나'라는 단어를 통해 유대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과 공동체와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예언서들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과 그 백성들의 통일성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도 개인주의에서 언급되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하나 안에 또 하나"가 강조되면서 세상으로 흘러넘치는 신의 사랑으로 신자들과 공동체가 하나 될 수 있는 통일성과 교회론이 드러난다.

필자는 여기서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주님을 엿볼 수 있었다. 요한복음은 당시 전통과 형식으로 굳어 있는 유대 공동체를 향해 너희가 세운 법이 생명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유일한 생명의 근원이시고 그분을 마음에 모시고 진리를 따를 때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대 공동체는 할례를 행하고 율법과 질서를 철저하게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는데 이 방법은 갈수록 사람을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고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하니 생명이 없고 생수가 될 수 없다.

또한 이런 유대 공동체는 오히려 사람을 계급으로 나누고 차별해서 약자들에게 올무가 된다. 사람이 믿고 따라가고 지킬수록 지치고 메마르게 하는 법과 제도들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기쁨을 줄 수 없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인생의 질을 바꾸실 뿐 아니라 공동체의 자유와 기쁨을 회복시키는 분이라고 소개한다.

사람이 주인 된 공동체는 지체들을 흩어지게 하지만 주님의 공동체는 지체들을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게 만든다. 인간이 높아지는 공동체는 지체들의 불만과 원성이 커져 가는데 주님이 높아지는 공동체는 지체들의 찬양과 감사가 커져 간다.

구조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정의가 실현되는 곳이고, 세상의 질서와 가치관에 의해 사람이 절망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곳이다. 생명이신 분이 주인이 되어서 생명이 존중받고 억압당하지 않도록 공평한 평화가 나타나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 모습은 어떤가.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 앞에 어떤 보호와 치료도 해 주지 못하고 그 가족 모두를 고통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가게 하는 시한부 공동체가 되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가정을 파괴하였음에도 일말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화인 맞은 공동체가 되었다. 그리고 사회 고위 권력층은 국가의 재산과 국민의 혈세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자기의 부하도 자살하게 만드는 동물적 생태계가 되었다.

주님의 공동체는 이런 세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요한은 이런 눈물 나고 한숨뿐인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의 옷을 입고 독생자로 오셨다고 소개한다. 그분은 살아 있는 말씀이시고 죽음도 이기시는 부활이셔서 불가능해 보이는 개인도 바꾸시는 분이고 사람을 사지로 몰아가는 불의한 공동체도 변혁시키는 분이라고 드러낸다. 그래서 필자는 요한복음이 드러내는 개인과 공동체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묵상하며 우리에게 더없이 정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주님이 필요함을 기도하게 되었다.

영광 받으시는 분, 예수

두 번째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다. 책 3장 '영광'에서 저자는 이 영광을 예수님의 사역과 기적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열쇠로 사용한다. 요한은 이 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 영광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나타내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영혼을 살리는 사랑의 본질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특별히 저자는 출애굽기와 이사야를 넘어 독생자이신 분이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게 영광이라고 한다. 또한 십자가는 예수님의 육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최고조로 계시되는 순간이라며 영광과 십자가를 동등하게 여긴다.

4장 '십자가, 부활, 승귀'에서 저자는 사랑, 생명, 영광, 진리를 순서대로 다루면서 이 주제들을 풀어 간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사랑'이라는 부분에서 십자가를 지기까지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연결하는 저자의 설명이 신선했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이나 십자가 위에서도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것을 통해 끝까지 강렬하게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친히 성찬을 주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하였다.

복음서마다 십자가 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강조된다. 그러나 '7장 요한복음의 첫째 주간의 다차원적 의미'에서 저자가 밝히듯이, 책 서론에서부터 나타나는 제자도와 기독론의 모습이 본론과 결론에 이르는 예수님의 수난 사화를 통해 드러난다고 논증한다.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독생자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자로서, 그리스도로서 그려 내어 십자가의 주님을 영광 받으시는 분으로 소개한다. 또한 그분이 십자가로 높여지신다는 것을 세례 요한과 하나님과 성경과 도마 등의 증언을 통해 확증한다.

이렇듯 요한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로 영광 받으시는 분으로 소개한다.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육체를 내어 줌으로 사망을 이기시고 생명을 주신다. 그리고 그 수치와 모욕의 상징의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시고 자신은 하늘로 올라가셔서 보좌에 앉으사 영광을 받으신다.

세상에 속해서 살아가는 남아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하늘 영광을 바라고 누리며 살도록 초청한다. 땅에서는 하늘로 올라갈 방법이 전혀 없으니 이 십자가를 사닥다리 삼아 오를 수 있도록 영광의 길로 인도하시고 종말론적 삶을 살도록 힘을 공급해 주신다.

요한복음에는 7가지 표적과 함께 긴 강화들이 나오는데 우리는 여기에 등장하는 물, 떡, 포도주를 포함하는 이야기들이 성찬을 충분히 반영하기에 요한복음이 성례 신학을 드러낸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5장 '성례전들?'에서 비록 요한복음에 성례를 나타내는 상징이 많이 있어서 2차적으로 해석할 수는 있어도 문맥 속에서 물이라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위로부터 태어나는 거듭남이고 떡과 포도주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에 대한 믿음과 그 십자가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드러낸다. 이렇듯 요한은 자신이 선택하여 사용하는 이야기들이 십자가를 향하도록 조준하고 있다.

순종의 책 요한복음

세 번째는 예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한복음의 특징은 다양한 이원론 개념이다.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 생명과 죽음, 자유와 속박, 영혼과 육체 등이 요한복음을 특이한 책으로 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영지주의적 사고로 인해 이미 전제되어진 두 세계 속에서 살아왔고 요한복음도 그 영향으로 신비적인 지식을 추구하게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저자는 6장 '이원론'에서 불트만의 견해를 이용하여 요한복음이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다 식의 이분법적 사고를 말하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실제 세상이 다른 세상과 대립되는 게 아니라고 증명한다. 우리에게는 여러 개의 이원론 중에서 자신의 결정으로 생명에 이르고 죽음에 이르는 선택권이 있다. 저자는 구원론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 자신이 순종하는 것을 통해 생명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실제 요한복음을 보면, 하늘의 참된 기쁨과 구원의 비밀과 회복의 은혜를 아는 것은 직분과도 상관없고 나이와도 관계없고 신분과도 거리가 멀다. 비싸고 좋은 옷을 차려 입은 사람도 아니며 니고데모 같은 고위 관리도 아니다. 그렇다고 사마리아 여인이 못 받는 것도 아니고 신의 저주받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맹인이라고 제외되는 것도 아니다.

가나의 표적에서 기적의 주인공이 신랑과 신부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하인들만 그 계시와 실제를 보았던 것처럼, 오직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만 구원의 은총이 허락되어져 있다.

이렇듯 요한복음은 순종의 책이다. 우리에게 놓여 있는 하늘과 땅 중에서 십자가를 선택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자에게 구원이 임한다. 이 땅에서 더 예수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더 주님께 붙들려 사는 사람이 이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자신의 전부가 되어 순종함으로 바른 길을 걸으신 것처럼 주님을 나의 전부로 모시며 순종하는 자만이 이 땅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베드로처럼 "나를 떠나소서"라며 자신을 부인하는 자만이 구원의 길을 시작할 수 있다.

빛은 누구인가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당신을 우리에게 7가지로 소개해 주신다. 우리가 잘 알듯,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믿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친히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소개해 준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참포도나무다, 이렇게 7가지다. 이 구절들은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님의 정체성과 본질을 잘 보여 준다.

필자는 끝으로 7가지 중 빛에 대하여 소개하고 글을 맺으려 한다.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께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는데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기록하는데, 구체적으로 이 빛이 누구인지 드러낸다.

이 빛은 구약에서부터 수많은 선지자가 예언했던 것이고 바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엎드리게 했던 것이다.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던 사람을 흔들고 변화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피조물이 비추는 빛만 따라가던 자들이 이제는 이 거룩한 빛에 의해 살아가는 빛의 사람이 된다.

이렇듯 오늘도 뜨고 지는 태양빛은 인생에게 어떤 질적인 변화를 주지 않으며 인생을 거듭나게 하는 빛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빛은 혼돈과 공허와 어둠을 물리치고 질서와 채움과 밝음을 주는 온기이다. 이 빛은 인생의 무질서를 질서로 바꿔 버리는 생명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 책을 빛 되신 주님을 더 경배하기 원하는 자에게 권하고 싶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며, 참빛을 앞에 두고도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으며 주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지만, 이 책을 통해 참빛을 만나 세상을 사랑하는 교만한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기쁨으로 빛을 따라가는 일들이 일어나길 소망해 본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방영민 / 전주서문교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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