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변질는 언제나 성직자의 부패로 시작된다. 그 다음은 가짜가 득세하고 진짜가 밀려난다. 그리하여 일단 교회가 자정 능력을 잃으면 그 시점부터는 가짜들의 세상이 된다. 중세 시대처럼 교회법을 가짜들이 주도하여 제 맘대로 제정하고 운영한다. 그나마 법이 있기는 하나 이름뿐이고 법의 정신은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거룩한 모습의 가짜들

그런데 조용한 교회를 좋아하는 가짜들이 도저히 못 참는 게 하나 있다. 그건 누가 자기 밥상을 건드리는 거다. 담임목사 연봉을 밝히라거나, 교회 장부를 공개하라거나, 십일조 강요에 반대하면 갑자기 얼굴을 바꾸고 난리가 난다. 이를 노골적인 영업 방해로 간주하며 발끈한다.

심하면 점잖던 목사도 본색을 드러내며 자기 교인을 세상 법정에 고소한다. 표절 목사, 성추행 목사, 그리고 헌금 횡령 목사에게 그 무슨 대단한 명예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여튼 툭하면 '명예훼손'이라며 펄펄 뛴다.

한 가지 더 웃지 못할 사실은 이런 가짜들 대부분은 정통 신학을 아주 선호한다는 점이다. 믿음이 대단히 견실해서가 아니다. 신도들을 더 많이 모으고 교인들의 신뢰를 얻는 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짜가 오히려 진짜보다 더 거룩하게 정통 행세를 한다.

따라서 일반 교인들은 자기 목사의 진정한 정체를 잘 모를 경우가 많다. 수십 년 동안이나 대형 교회에서 마치 성자처럼 잘나가던 유명 목사들의 목회 비리가 하루아침에 들통나서 추태를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전형적인 예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는 10배가 남고, 권력을 잡으면 100배 남는 장사이고, 종교는 1000배가 남는 장사이다." 오래전 계룡산 국사봉에 살았던 어느 방외지사가 했다는 말이다. 물건 장사는 수시로 경기를 타서 순식간에 망할 수 있고, 권력 또한 잡았다 해도 10년을 넘기기 힘들지만, 종교 장사는 한번 뿌리를 내리면 대를 이어 50년도 가고 100년도 가기에 나온 말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유독 종교계에 가짜가 많은 실제 이유다.

사실 진짜 사역자를 존경하지 않는 성도는 없다. 진짜 목사는 비신자들도 인정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진짜가 적지 않다고 해서 가짜를 그냥 허용하자는 말은 그거야말로 가짜들의 기만적 전술일 뿐이다. 교회는 사도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진짜와 가짜의 영적 싸움터였다. 그리고 가짜가 교회를 장악한 경우도 아주 많았다.

무속에 찌든 나라

가짜들이 득세한 교회에선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가 세속적 강복을 위한 굿판으로 자주 둔갑한다. 십자가를 높이 내걸고 성경을 손에 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기도로 무당질하고, 설교로 무당질하고, 간증으로 무당질하고, 찬양으로 무당질하고, 축도로 무당질하고, 그리고 봉헌으로 무당질한다.

겉모습은 예수교이지만 십자가 정신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맘몬의 제사장들이 극장식 예배쇼를 연출하며 교인들의 영혼을 훔치고 있을 뿐이다. 이러니 그건 사실 예배가 아니라 그냥 기독교 무늬로 채색한 무당 굿거리다. 그리고 이처럼 기복화한 무당 예배에 질리고 질린 일부 성도들은 '종교 놀음'에 지쳐 끝내 예배당을 떠난다. 현대판 출애굽 현상이다.

바른 교회라면 당장 직면한 반기독교적 부패와 부정을 부지런히 고치고 개선해야 미래가 있는 법인데, 도리어 많은 교회들은 비리는 숨기고 오로지 격려만 하라고 요구한다. 같은 지적도 목사가 말하면 권면이고 장로나 집사가 말하면 비방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분별한 비판이 교회를 망치는 게 아니라, 무비판이 교회를 망치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일부 목회자들만 무당질을 하는 게 아니다. 정치 지도자들과 경제인들도 무당질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평소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 노력은 별로 안 하고 틈만 나면 기복과 점괘를 구하며 점쟁이를 찾거나 산속에 들어가 굿판을 벌린다.

그 덕분에 이 밝고 밝은 첨단 문명 시대에 무당과 점쟁이가 무려 수십만이나 되는 시대착오적인 무속 사회가 되었다. 오죽하면 "한국만큼 종교 장사하기 좋은 나라가 없다"는 수치스러운 말까지 나올까. 정말 '알파고'가 배꼽 잡고 비웃을 일이다.

한국 개신교가 다시 사는 길은 관습적으로 체질화한 종교 영업을 단호히 근절하는 것이다. '성직'이라는 이름으로 특권을 누리고 배를 불리는 사악한 관행과 제도가 조속히 제거되어야 새로운 기회와 희망이 있다. 그러나 다수의 신도들은 이미 교묘히 왜곡된 정보와 맹신으로 세뇌되고 우민화되어 마치 병든 성황당 장승처럼 눈먼 벙어리가 되었다.

이익이 많은 장사

유대교의 제사장들은 예수가 그들의 기득권에 너무나 큰 지장을 주었기에 십자가에 죽게 했다. 신성모독이나 반역죄란 누명은 단지 표면상 명분일 뿐이다. 실제 죄목은 '종교 영업 방해죄'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성전의 잡상인들을 내쫓고, 또한 그 성전을 헐라고 하실 때 저들은 자신들의 철밥통에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유감스럽지만 지금도 상황은 매우 비슷하다. 성도들이 각성해야 한다. 하여튼 입으로 그 무슨 신성한 교리를 말하더라도 교회를 이용하여 사사로이 돈을 챙기는 자들은 조금도 믿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무조건 삯꾼이다.

기독교 진리는 열심히 믿어서 돈벼락을 맞거나 많이 바쳐서 복을 받는 그런 저급한 종교가 아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고귀한 복음은 결코 종교가 아니다. '하나님나라'는 고작 종교라는 진부한 틀에 가둘 수 있는 그런 무속적 이상향이 아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나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복음은 사람을 자유케 하지만 종교는 사람을 속박한다.

진정한 복음은 무당 목사의 사변적 설교처럼 그리 잡다한 게 아니다. 예수가 복음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하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이것만 겸손히 실천해도 이미 충분히 벅차고 또한 넘치는 일이다.

그러니 중세의 부패한 성직자들처럼 온갖 상술을 동원하여 구원을 이익이 많은 장사 대상으로 만들며 종교로 영업하는 자들에게 결코 속지 말아야 한다. '영혼의 구원'은 돈으로 거래하는 게 아니다.

예배도 귀하고, 직분도 귀하고, 그리고 헌신도 매우 귀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양복 입은 무당들의 영업에 이용되는 순간 모두 거짓된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종교가 돈이 되는 시대는 부끄러운 시대다.

"사람들은 교황과 그 전달자들이 아주 노골적으로 자기들을 우롱하는 것, 자기들의 영혼의 구원을 이익이 많은 장사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 구원의 값을 돈 몇 푼으로 계산하는 것, 그리고 값없이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았다." - 장 칼뱅, <기독교강요>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