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사랑하는 딸은 수학여행을 떠난 뒤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아버지는 하필 그 자리에 있어 물대포를 맞고 세상을 달리했다.

우리는 왜 죽음이 그 가족에게 임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단식 중인 유가족 앞에서 치킨을 먹고, 아버지를 보낸 딸 앞에서 "시체 팔이"라고 지껄인다. 그들에게 엄습한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절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 한 개인이 고난 앞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친 기록이 있다. 저자 송인경 전도사가 결혼 2년 반 만에 아내를 떠나보냈다. 그 과정을 모아 <결혼에 울다>(홍성사)라는 고백록을 펴냈다. 이 기록에서 우리는 그가 어떻게 아픔을 헤쳐 나가는지 살펴보며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0년 0개월, 나는 그녀에게 반했다.
1년 3개월, 우린 결혼했다.
1년 8개월, 그녀가 암에 걸렸고 아이를 가졌다.
2년 6개월, 우린 이별했다.
4년 4개월, 나는 아이와 놀이터에 간다.

누구보다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고, 계속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던 송인경 씨. 그런데 하나님은 2년 반 만에 아내를 데려갔다.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아내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임신 3주라는 이야기 또한 들었다.

송인경 씨는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노라 고백했다. 출근하면 아내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고, 아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사랑의 안전 고리'라는 징표를 만들어 행동했다.

비정한 하나님은 그 사랑을 5개월만 허락했다. 의사는 아내가 유방암 3기고, 손쓸 수 없는 상태라고 선고했다. 행복했던 연애 생활과 신혼 생활은 사라지고 거대한 비극만 남았다.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2014년 8월 14일. 아이를 낳은 지 불과 3주 지난 후였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주님…. 살려 주세요…. 살려 주시기만 하면 시키는 건 다 하겠습니다. 거지가 되도 좋고 장애를 가져도 좋으니까 제발 살려만 주세요…." 저자는 절규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 기도가 너무 조건부여서였을까요? 순수하지 못한 제 기도에 기분이 상하신 걸까요? 그분은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저는 계속 기도했지만 아내의 호흡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70쪽)

주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주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하지만, 주님은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내의 코에 새끼손가락을 대보고 그녀의 얼굴에 제 얼굴을 비벼 보기도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73쪽)

하나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더 큰 고난은 이후 엄습했다. 빈 신혼집에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아내와 찍은 웨딩 사진, 아내가 입은 옷들은 보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운전하며 크게 소리를 질러도, 쉬지 않고 먹어도, 어릴 때 좋아하던 컴퓨터게임을 수없이 해도, 책을 수십 권 읽고 성경 말씀에서 답을 찾으려 해도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욥이라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것 같았다. 아이만 생기지 않았더라도 아내가 살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하나뿐인 혈육에게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죽은 걸까?'

한동안 이런 생각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나 때문에 주님이 아내를 데려가신 걸까? 내가 더 잘해 주었으면 지금도 살아 있지 않을까?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아서 아내를 데려가셨나?…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저는 견디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무겁고 차가운 두 개의 철판이 양쪽에서 제 심장을 조여 오는 것만 같았고, 하늘의 커다란 보좌에 앉은 하나님이 차갑고 냉랭한 눈빛으로 저를 내려다보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102쪽)

▲ "이 속에는 믿음도 있고 불순물도 있습니다. 기적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소설이 아닙니다. 제 인생입니다"(책 소개 중)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는 말을 남겼지만, 저자는 회복할 길은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했다. 지인들의 보살핌과 상담이 일상생활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줬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고난을 준 하나님을 통해 고난을 극복한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저자가 할 수 있던 것은 하나님을 찾는 일이었다. 마침내 "하나님은 선한 분이다"라는 고백이 나올 때까지.

"저는 이제야 제 삶의 한계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아주 조금씩 예수님께 저의 한계들을 내어 드리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저를 도와주신다면, 저는 그분과 함께 살다가 그분이 정해 주신 시간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175쪽)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 또한 이제서야 인생의 첫걸음을 떼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야"라고 규정하는 욥의 친구들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욥의 아내가 되어야 할까. 최소한 "하나님이 꽃다운 아이들을 침몰시켜 국민에게 기회를 줬다" 따위의 말을 하는 신앙인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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