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일 대학로에서 백남기 농민 추모 대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4·16세월호참사진상규명및안전사회건설을위한피해자가족협의회에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예은이 아빠이자 백남기 어르신의 아들 유경근입니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백남기 어르신의 딸아들 4만 명이 모였다. 10월 1일 백남기 농민 장례식장이 있는 서울 대학로는 추모 대회에 참석한 시민들로 가득 찼다. 차선 네 개를 막고 앉은 사람 행렬은 수백 미터나 계속됐다.

스스로를 '백남기 농민의 아들'이라고 소개한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 집행위원장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유경근 위원장은 평소답지 않게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지금 당장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일갈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저 뒤에 끝도 없이 많은 분이 함께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세월호에서 희생당한 아이들의 아빠 엄마들 맞습니까! 그리고 백남기 어르신의 아들딸들 맞습니까! 오늘 어떤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백남기 어르신, 이렇게 외롭게 서럽게 돌아가신 그 길에 그저 추모의 눈물 한 방울 보태고자 오신 것은 아니지요?

슬픈 일입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슬픔의 눈물을 분노의 행동으로 연대의 행동으로 승화해야겠습니다. 바꿔야 합니다! 이러다가는 이제 곧 얼마 안 있어 추모하기 위해 이렇게 모일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로 내가 세월호에서 죽을 수 있고, 바로 내가 물대포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이 현실에서, 그렇게 하나둘 슬픔의 눈물만 흘리고 있다가 다 쓰러져 가면 도대체 어느 누가 또 추모할 것이고, 어느 누가 또 이 자리에 모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당장 바꿔야 합니다. 더 이상 세월호에서, 물대포에서 죽어 가는 사람이 없도록, 희생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이 세상을 지금 당장 바꿔야겠습니다.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대통령이 합니까, 국회의원이 합니까.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바로 나! 바로 우리! 맞습니까! 지금 저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백남기 어르신을 향해 오늘 모인 우리들의 마음을, 의지를 소리 높여 외치겠습니다."

분노와 결기가 담긴 함성이 대학로에 쩌렁쩌렁 울렸다.

"내가 바꾸겠습니다! 우리가 바꾸겠습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우리가 함께하겠습니다!"

▲ 백민주화 씨는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백남기 농민의 딸 백민주화 씨도 발언대에 올랐다. 부검에 반대하는 뜻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했다.

"아직도 저희 아버지 빈소에 끊임없이 조문 와 주시고, 또 이렇게 많은 분이 추모해 주셔서 저희 아버지 가시는 길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고통받으시던 아버지께서 떠나셨습니다. 자식으로서 못해 드린 것도 많고, 풀어 드려야 할 억울함도 아직 그대로 쌓여 있어서 죄송할 뿐입니다. 진실을 숨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아주 많은 거짓들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돼서 끝내 무너질 것이고, 변치 않고 그 자리에 있는 진실만이 더 빛나게 될 것입니다.

비록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건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또한 이 암울한 시대의 몫인 것 같습니다. 지치지 않고 저희 몫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는 힘은, 저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국민 여러분입니다.

'물대포로 인한 사망이 분명하다면 왜 부검에 동의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술 직후 뇌사 상태와 거의 비슷하다고 했던 주치의는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표기하고, 표기 실수는 인정하나 수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사인의 증거가 넘쳐나는데, 어느 자식이 아버지 시신을 또다시 수술대에 올려 정치적인 손에 훼손시키고 싶겠습니까. 저희는 절대로 아버지를 두 번 세 번 죽이지 못하게 할 겁니다.

강신명이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준법. 법보다 더 위에 있는 게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입니다. 저는 그 기본 정신도 갖추지 못한 개념 없고 무자비한 경찰의 물대포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또 이 같은 끔찍한 희생이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면, 양심 있는 경찰 여러분께서는 오늘 이곳 집회 참가자들을 끝까지 잘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 사는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백민주화 씨의 떨리는 말투에 시민들도 눈물을 훔쳤다. 백남기투쟁본부와 연대해 온 세월호 유가족들도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우리가 백남기다!"라고 쓰인 종이를 꽉 잡고 있었다.

▲ 세월호 유가족들은 백남기 농민 유가족의 말을 듣고 울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300m 앞이 백남기 농민 쓰러진 곳인데…

추모 대회 후 행진이 이어졌다. 수백 미터 긴 행렬이 "살인 진압 규탄한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부검 말고 특검 하라!", "백남기를 살려 내라!", "국가 폭력 끝장내자!"를 외치며 걸었다. 청년 수십 명이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백남기 농민의 사진을 들고 오열을 맞춰 걷는 모습은 경건함을 불러일으켰다.

▲ 4만 여 시민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백남기투쟁본부는 앞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포를 맞고 쓰러진 종로1가 르메에르빌딩 앞까지 행진해 헌화한 후, 부검 시도를 규탄하기 위해 경찰청 앞까지 가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아침, "주요 도로"라는 이유를 들어 추모 행진 금지를 통보했다.

투쟁본부는 "3개월 전 똑같은 구간 행진은 허락하더니 이번엔 막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행진 금지를 통보한다고 막을 수 있는 추모 행렬이 아니고, 경찰을 향한 규탄의 목소리 또한 잠재울 수 없음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결국 우려했던 충돌이 벌어졌다. 종로1가가 가까워 오자 경찰들이 폴리스 라인을 치고 막아섰다. 시민들이 길을 열라고 요구했고 경찰은 해산 명령을 내렸다. 백남기투쟁본부는 "300m 앞이 백남기 농민이 물포를 맞고 쓰러진 곳이다. 그곳에 헌화하려고 하는데 왜 막느냐"고 대항했다. 시민들이 경찰들을 밀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방패를 들고 무장한 경찰들이 앞을 막아섰다.

시민들은 1차 저지선은 뚫었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표창원·이재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나서 "경찰의 이런 태도가 시위대를 더 격앙시킨다"며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곳에 헌화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은 결국 길을 트지 않았다.

▲ 시민들은 분필로 바닥에 메시지를 남겼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시민들은 고착되었지만 가만있지 않았다. 경찰 앞에 임시 분향소를 설치하고 헌화하며 백남기 농민을 추모했다. 또 다른 시민들은 분필로 아스팔트 바닥에 여러 구호를 쓰고, 백남기 농민과 벼를 그렸다. "농부가 살아야 쌀이 있지. 쌀이 있어야 나와 당신이 여기 있지. 사랑하고 이야기하지."

백남기 농민 추모 대회 및 행진 라이브 영상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