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백남기 선생의 삶을 알게 되면서였다. 삶과 죽음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남겨진 의미의 무게는 동일할 수 없다.

그날 현장에 함께 있었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캡사이신이 포함된 물이 하늘에서 분사되자 일제히 자리를 피하기에 급급했지만, 백남기 선생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이제 그만 쏘라"는 말을 외치며 경찰들이 설치한 벽 앞으로 걸어가다가 직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후 의식불명 상태로 317일을 병상에서 버티다가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된 그의 비범한 삶은 왜 그에게 '이런' 죽음이 찾아왔는지, 왜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던 사람이 그분이었는지를 어느 정도 설명해 주었다.

'해석'이라는 과제 앞에 놓여 있는 백남기 선생의 죽음

칼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저서에서 "철학자들은 단지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전제로서 해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들린다. 한편으로는 '충분하고', '올바른' 해석의 중요성을 내포하는 말이기도 하다.

청년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프랑스 혁명을 자유를 향한 세계사의 새로운 시작으로, 나폴레옹이라는 개인을 '세계정신'의 표상으로 해석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혁명과 전쟁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했듯이,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해석과 실천은 우리가 피해 갈 수 없는 책임이다. 이것은 우선 날마다 현상과 본질 사이에서 씨름하는 지식인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에서 이런 문제들과 맞닿으며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성경적' 관점이라는 것이, 미래의 추상성을 제외하면, 적어도 오늘날에 있어 현실적 측면에서 이러한 '시민적 상식'과 얼마나 차별화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교회 역시 분명하게 이러한 해석의 과제 앞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시대로의 굴절이 일어났던 역사상 분명한 신적인 개입의 시간(카이로스)에 대해서도 아직 교회 또는 신학의 동성(同聲)의 해석을 들어보지 못했다. 여전히 박정희 시대, 5·18, 6·10, 세월호 등은 해석이 금지된 기호들이다.

백남기 선생의 죽음 역시 이대로 두면 '불법 시위의 희생자' vs. '숭고한 농민운동의 표상'의 대립 형식으로 기억 뒤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카테고리로 말하자면, 어떤 '다양한 해석'이나 '세계의 변화'도 낳지 못한다.

우선 나는 백남기 선생의 죽음 이후 사체 부검을 놓고 벌어지는 긴장을 보면서 정치적 해석과 도덕적 해석의 긴장을 목격한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1792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치정 살인 사건에 대한 어떤 재판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것은 아마도 유럽 최초로 피고의 정신 상태에 대한 감정이 고려되기 시작한 재판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변호사는 '애인의 부정 현장을 목격한 피고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성에 의해 행동이 인도되는 것이 불가능했던 그녀를 사형에 처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폈다. 재판정에서는 치정 문제가 도덕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피고가 정념에 사로잡혀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었는지에 따라 죄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러한 피고의 정신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의학적, 심리학적 고찰이다.

오늘날에도 온전하지 못한 정신 상태(술이나 마약에 취했을 경우, 또는 정신이상이 있는 경우)에서 벌어진 범죄의 경우에는 정상참작이 이루어지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이때부터 유럽에서는 심리학, (정신)의학 권력이 법적, 정치적 권력과 함께 움직이게 된다. 범죄자들은 광인으로 치부되고, 그들의 언어는 봉인되며, 오직 전문적 지식을 가진 매개자들(의사, 종교인, 심리학자, 교사, 법조인, 비평가)의 해석에 의해 보편적 이성을 가진 자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이전에는 의사들이 왕진 가방을 들고 가정에 누워 있는 환자를 치료하러 다녔지만, 의학 권력이 법적, 정치적 힘을 얻게 되면서 환자들을 특정한 장소로 오도록 만들었고, 더 나아가 환자를 치료할 뿐 아니라, 전문 의료인을 양성하고, 환자의 이력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모두 한곳에 갖추어 지게 된다. 근대 병원이 탄생하는 것이다. '질병'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공간의 통합이 일어난다.

여기서는 어떤 도덕적 해석도 목격되지 않는다. 우리는 백남기 선생의 죽음 이후 일부 제도 권력과 의학 권력이 정치 권력의 시녀로 복무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상관 없고, 오로지 사인(死因)을 자기들의 입장에서 규명하여 의학적 해석을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체 부검을 시도하는 당국의 행태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 목적이나 의도의 치졸함이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다. 하지만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 시대의 도덕은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한다.

의학적 해석에 의존하는 사법 체계는, 정의의 문제, 당사자들이 살아온 삶, 사건의 맥락, 남겨진 이들의 슬픔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사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대부분이 도덕적 해석의 부재를 규탄하며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고통과 고통의 연대

사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은 바로 '고통'에 관한 것이다. 고통은 언어를 넘어선 전인(全人)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우리 의식 범주에서 해석되지 않는다. 정치와 도덕의 대립 속에서 고통은 숨겨진다. 심지어 부채를 양산하는 자본 시스템이 '신용'이라는 도덕적 용어를 차용하는 것을 비난했던 마르크스의 경우처럼, 오늘날 도덕은 정치권력과 경제 담론에 복속되어 기준을 잃고 제각각 사용되는 상대적 개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사이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은 망각되고 정치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소비된다. 현재 시민들에게 해석되는 세월호 유족들은, 진상 규명을 통해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들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하는 숭고한 시민들인가, 아니면 단순 사고로 죽은 아이들을 이용해서 더 많은 것을 얻어 내려는 이기적인 모리배들인가.

36년이 지난 5·18 항쟁 희생자 유가족들이나, 수많은 군대 의문사 유가족들의 고통은 사실 우리의 시선으로부터 철저하게 숨겨져 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에 대해 우리가 침묵하는 이유는 그 고통이 해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과관계에 대한 세련된 관점인 구조주의는 이 세계에서 구조의 우위를 설명하고자 인간의 의식을 언어에 종속되는 것으로 상정한다. 그러나 이성을 넘어가는 것, 의식이 포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의식과 비의식(경험)이 공존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정치와 도덕의 대립을 넘어갈 수 있다. 자기의 경험 바깥에 있는 것은 결국 언어라는 기호를 통해 인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도르노의 말대로[<계몽의 변증법>(문학과지성사, 63쪽)], '자연에 대항하고 지배하고자 결심한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삶의 고통'을 자기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이라는 '접근 불가능성'에 작은 구멍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고통은 직접적이기도 하면서 구조적이기도 하다. 기호에 점령된 이 세계의 구조는 우리를 꼼짝도 못하게 얽어매고 타인을 돌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끝없는 고통을 벗어나야 한다는 '불가능성'의 과제에는, 길이 보일 때까지 함께 걸어가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는 기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새로운 창발적 가능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 불가능성을 넘어가게 된다. 이것이 (언어가 아닌) 공감, 기억, 연대, 체험, 비의식, 공동체다. 그것이 불법 시위였는지, 권력의 대응이 '인간으로서 어찌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한 정치적, 도덕적 판단 이전에 우리는 모두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의 공감과 연대를 보여 줄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을 회피한다면 우리는 공멸하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 고통에서 연대를 찾을 수 없는 당사자인 권력은 필시 가장 외로운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당시로서는 기득권을 가지고 안락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조건들을 포기하고, 독재에 억압된 타인들과, 고통받는 농민을 위해 스스로 농민이 되어 살아온 백남기 선생의 삶을 보면, 그가 도전했던 것도 역시 고통의 연대를 통해 불가능성의 벽을 허무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의 죽음이 많은 사람을 각성시키고, 시민을 다시 결집시키며, 세월호와 연계되고, 전태일을 호명하게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광기의 해석학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광기의 해석학을 만난다. 코제브(A. Kojeve)는 <헤겔 독해 입문>에서 헤겔의 '부정성'을 언급하면서, 인간이 자연과 구분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끊임없는 '추상화' 작업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자기를 분리하여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본디 창조란 신으로부터 받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던가.

일부 현대 의학이 질병을 '몸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한 부분이 희생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을 제시하듯이, 헤겔도 질병을 '유기체가 그 조직 혹은 기관 중 하나가 비유기적인 힘과의 투쟁 속에서 자극을 받고 그로 인해 자기를 철저하게 자립된 것으로서 견지하고 자기 자신의 특수한 활동을 고집하여 전체의 활동에 대적하는' 것으로 설명한다[<자연철학>(나남, 371쪽)]. 푸코는 그것을 고고학적으로 추적하여 '광기'라고 이름 붙였다.

사회는 존립을 위해 항상 고유의 배제 장치를 개발하고 구성원들의 상상력에 특정한 배제의 체계를 심어 준다. 그것이 그 시대의 '역사적' 이성이고, 합리성이며, 상식이자 '자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 시스템에서 배제된 것, 즉 그 시대의 광기는 실체가 아니며, 항상 사회 속에서, 이성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광기는 이성의 체제를 부정하고, 이성은 광기를 감금하고 해체시킨다. 과연 광인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그들이 해석한 세계는 무엇이며, 그들의 주장은 왜 침묵의 언어, 병리학적 증상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는가. 이성은 광기의 실체화를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

동물의 질병, 인간의 광기로 표현되는 부정성은 기본적으로 저항성이다. 푸코는 광기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열쇠라고 믿었다. 질병을 통해 우리가 비로소 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듯이, 인간은 광기를 통해 자기의 존재 방식을 파악하게 되고, 사회 역시 저항과 억압을 통해 다시 새로운 사회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헤겔은 극단적으로 <법철학 강의>에서, 인간은 사회가 정한 법을 부수는 범죄 행위를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의 일원이 되고, 고차원적인 자유를 행사하게 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광기가 없었다면 인간은 동물과 같이 자연의 일부로 여겨질 뿐, 인문학이나 자기 성찰의 방식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푸코가 정신분석을 비판하는 것은 그 성찰의 방식의 오로지 욕망이나 도착된 모습으로만 그려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사회 시스템이 배제하는 이들, 또는 그것에 저항하는 이들이야말로 그 사회를 살아 있게 하고,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하는 경계인들이다. 예수도 당시의 상식에 저항하고, 사회 시스템을 부끄럽게 만들고, 비폭력적 혁명의 씨앗을 심어 준 광인이었다. 광인의 운명은 죽음 외에는 없다. 그러나 그 죽음은 반드시 새로운 길을 열게 되어 있다.

'불가능성'을 향한 화해의 손짓

나는 백남기 선생을 이 시대의 광인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루소의 말대로, 문명(의 언어)로부터 자유로운, 본래의 자연 상태에 가까운 존재다. 그래서 보장된 삶을 버리고 저항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불의를 보았기에 저항하고, 고통당하는 이웃이 있기에 함께하는 것, 그것이 순수한 인간이자 광인이 보는 세상이다.

그의 삶을 보면 우리는 아무나 결심한다고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무언가에 미쳐 있지 않은 사람은 그런 운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의 존재는 물대포를 쏘아 대는 경찰과 그것을 명령하고 책임지지 않는 권력의 귀에는 침묵의 언어였겠지만, 모두가 자리를 피하는 그 자리에 홀로 남아 "그만 쏘라"고 손을 내밀었던 그의 걸음은 바로 '불가능성'에 대한 화해의 손이었다.

십자가 위에서 "저들은 자기가 행하는 죄를 알지 못하니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이다. 그것은 광인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무모함이다. 또 한 명의 광인인 스데반이 죽는 순간에 보좌의 주님을 목격하듯이,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진리를 보고, 다음에 열릴, 우리에게 오고 있는 그 세상을 보는 것이다.

선생은 우리의 역사를 진보시켰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자기희생의 삶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울분과 추모 속에 마침내 세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불가능성에 새로운 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곤경과 분열에 처하게 한, 다시 말해 우리가 '정상' 또는 '이성'이라고 부르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일탈시킨 신의 아들 예수를 '괴물'이라고 불렀던 지젝의 표현은 광기의 운명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부정하고 저항하는 광인이나 괴물이 되어야만, 이 사회를 깨우고 새로운 세계를 도래케 할 수 있는 현실이 바로 우리 모두가 잠자고 있는 '매트릭스'의 세계다.

우리는 최소한의 법적 형식만 지키면서 온갖 꼼수로 일관하는 권력의 개입을 보면서 도덕적 분노를 느낀다. 경찰은 살수차 사용 매뉴얼을 전혀 지키지 않았고, 선생의 상해와 죽음에 대해 아직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 사인도 조작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우리는 사탄이 모세의 시체로 어떤 음모를 꾸미고자 천사장 미카엘과 논쟁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유다서1:9)].

사자의 삶의 무게를 지닌 시체는 분명 살아 있는 자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장도 하지 않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또다시 무력 충돌을 야기하여 물타기와 여론 몰이를 해 갈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계급 체제 속에서 책임의 분산이 만들어 낸 아이히만 식 '양심의 부재'를 도덕적으로 질타하는 방식은 장기적인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권력은 여전히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더 나아가 고통을 공감하는 해석학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좇아 그것을 먼저 실천하는 이들의 광기의 해석학,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죽음과 부활의 해석학이 필요하다. 죽음을 통해 이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창조이자 부활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세월호와 백남기와 우리가 모두 만난다. 우리가 예수를 이런 방식으로 만나지 못하고, 값싼 대가만을 치른 채, 단지 언어적으로, 교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만난 것이 한국교회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최규창 /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주)포리토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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