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기 농민 사망 3일째, 검찰은 다시 한 번 부검 영장을 청구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검찰이 9월 26일 밤 11시 30분경 법원에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을 재청구했다. 검찰은 백남기 농민에 대한 서울대병원의 의무 기록지를 모두 압수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사인을 특정할 수 있느냐고 의뢰한 뒤, 그 의견서를 토대로 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이번에는 곧장 반려하지 않고 추가 자료를 제출하라고 검찰에 명령한 상태다.

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난 지 3일째 되는 9월 27일, 서울대병원장례식장에서 유가족과 백남기투쟁본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백남기변호인단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다시 한 번 백남기 농민의 사인은 경찰의 직사 살수에 의한 외상성 뇌출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검찰의 부검 영장 청구를 반려해 달라고 법원에 촉구했다.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는 사건 당일 응급실에서 들은 의사 말을 되새겼다.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뇌 사진을 보여 주셨는데 제가 보기에도 정말 출혈이 컸다. 선생님이 '이 정도의 부상이라면 수술 자체가 의미가 없다. 아버님이 살아나시기는 힘들 것 같고 수술도 어렵다. 이 정도 부상인 상태에서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의사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수술을 한다고 해서 소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생명 연장 정도일 뿐이고 수술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 대뇌가 50% 이상 손상되고 뇌뿌리가 손상됐기 때문에 의식이 돌아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또 '만약 신장이 나쁘다면 약을 쓰는 데 제약이 있겠지만 아버님 같은 경우는 신장이 워낙 튼튼하시기 때문에 모든 약을 제한 없이 쓸 수 있다'고 했다. 질병에 의해 돌아가셨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된다. 저희 아버지는 평상시에 드신 약도 없다."

▲ 백도라지 씨의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인의협 공동대표 우석균 의사는 "장기간 와병 상태일 경우 급성신부전이 온다. 암 환자가 마지막에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해도 그 사람의 사인을 폐렴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입원하다가 장기부전으로 사망한 경우에도 사인을 장기부전이라고 하지 않는다. 백남기 농민의 원사인은 경찰의 물포로 인한 외상성 뇌출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백남기 농민의 사인은 의학적 논쟁 대상이 아니다. 왜 의사들이 기자회견에 나와서 이야기해야 하는지 화가 난다. 백남기 농민은 직사 살수를 당하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실 수도 있었다. 다만 현대 의학 기술로 연명해 온 것이다. 논쟁거리가 전혀 없다. 이렇게 의사들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마치 또 다른 원인이 있는 것처럼 의학적 논쟁으로 끌고 가는 경찰의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고 강하게 피력했다.

민변 백남기변호인단장 이정일 변호사는 "만약 지금 여기서 어떤 사람이 칼로 누구를 찔러 죽였다고 치자. 영상도 있고 증인도 많다. 법률적 사인이 명확하다. 그런데 경찰은 사인을 파악하겠다며 부검하겠다는 꼴이다. 부검 외에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원인 규명할 수 있는데 또 영장을 청구했다"며 규탄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가해자 경찰이 면책거리를 찾기 위해 부검을 신청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백남기투쟁본부 박석운 공동대표는 "의사들도 백남기 농민 사인에 궁금증이 없다고 하는데, 경찰이 자꾸 이러는 걸 보면, 창조적 조작을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이유는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 사인을 조작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판사님께

판사님, 저희는 작년 11월 14일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나서 병원 중환자실에서 317일간 투병 생활을 이어 가다 돌아가신 농민 백남기의 가족입니다.

가해자로 저희에게 형사고발을 당한 경찰이 저희 아버지, 남편의 시신에 대한 부검 영장을 거듭 신청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희는 아버지, 남편을 고이 보내 드릴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경찰 때문에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부터 경찰이 서울대병원을 에워쌌고, 돌아가신 후에도 경찰의 방해하에 시신을 중환자실에서 영안실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장이 발부되기도 전에 그리고 서울대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시설 보호 요청을 하지 않았음을 밝혔는데도 병원 주변에 경찰차 수십 대와 경찰 수백 명을 배치해 유족들과 대책위, 소식을 듣고 찾아오신 시민들께 불필요한 긴장을 일으켰고, 무력으로 시신을 탈취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법원에서 부검 영장을 기각했는데도 재신청한 것을 보면 저희의 의심이 사실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영안실로 옮기고 나서는 사건 담당 검사님이 오셔서 가족의 뜻에 반하는 부검 같은 건 없다, 하시며 국과수 법의학자들과 함께 검시를 하고 가겠습니다. 또한 10개월간의 의료 기록이 이미 있고, 이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이미 경찰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거라면 충분히 고인의 사인을 규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왜 거듭 부검 영장을 신청하는지 유족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절대로 닿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유족으로서의 도리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런 패륜, 불효를 저지르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존경하는 판사님께서 유족들의 뜻을 받아 주시고, 부검 영장 발부블 반려해 주시길 눈물로 호소드립니다.

2016년 9월 27일
유가족 일동 드립니다.
처 박순례
딸 백도라지
아들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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