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필리핀에서의 선교지 탐방 여행을 마치고 미국에 있는 두 딸아이와 만나기 위해서다. 중국을 거쳐 갈아타고 가는 비행기 속에서 한 6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복도 건너편으로 4명의 동양인 가족이 앉을 걸로 보아, 처음에 나는 아마도 이 아이는 그 가족의 일원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반대편에 또 한 명의 남자아이가 혼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6식구 대가족의 미국 여행인가? 정말 행복한 가족이구나 생각할 때, 내 옆에 앉은 아이가 훌쩍훌쩍 우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 아이는 혼자서 여행하는 아이였다. 중국에 있는 아빠가 딸아이를 혼자 미국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는 중이었다.

그 아이는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웠는지 아니면 슬펐는지 계속 울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달래 주고 싶었는데 그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내가 중국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좋아할 만한 만화영화를 틀어 주고 헤드폰으로 들으라고 권고했지만, 그 아이는 만화영화를 보려고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내가 도와주려고 하면 할수록 어떤 낯선 남자 어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말하는 것이 오히려 그 아이를 두려움 속으로 더 이끄는 것 같아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스튜어디스들이 와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아이를 달래려고 했다. 장난감도 주고 과자도 주고 아이에게 말을 걸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했건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난감했다. 이제 기내 모든 사람이 아이를 어떻게 해서든 달래 보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 어떤 것도 그 아이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울다 잠이 들었고 깨어나면 다시 울었다. 그렇게 13시간 정도가 흘렀다.

나중에 짐을 찾아 나오는 길에 그 여자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은 그 아이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과자가 아니었다. 재미있는 장난감이나 만화영화도 아니었다. 그 아이에겐 엄마가 곁에 있어 주는 것이 가장 필요했다. 과자나 장난감이나 만화영화는 엄마와 함께하는 한에서만 좋은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몇 년 전에 한국에서 목회한다고 아직 많은 사랑이 필요했던 아이들을 미국에 남겨 두고 훌쩍 떠나 버렸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비행기 안에서 혼자 여행하던 그 어린아이에 비하면 이미 클 대로 커 버린 우리 아이들은 형편이 훨씬 나았겠지만, 언제나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게 우리 인생이 아니던가. 이번 미국 여행으로 그동안 미안했던 것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을까? 미안한 마음과 오랜만에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설렘이 교차했다.

큰아이의 집으로 가는 길에 그 아이의 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버려짐, 외로움, 충격, 공포와 같은 단어들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안식과 기쁨을 줄 수 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가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때라야만 의미가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세상의 것들을 채워도 또 채워도 허전한 것이다. 아무리 많은 과자나 장난감이나 만화영화가 그 여자아이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리 많은 물질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평안함과 참된 안식을 얻을 수는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성경은 천국을 묘사하면서 천국이 얼마나 풍족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가를 말하지 않는다. 천국에 가면 이 세상에서 누리지 못했던 금은보화를 갖게 될 것이고, 아주 큰 맨션 주택을 가지게 될 것이고, 생전에 보지 못했던 산해진미를 먹게 될 것이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천국은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하셔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라고 묘사한다(계 21:1-4). 그렇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천국이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기쁨과 안식이다.

오늘 아침 나는 오랜만에 엄마 아빠와 함께 곤하게 잠든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평온해 보이는 그 얼굴을 보면서 왜 그리 행복한지 모르겠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내가 천국에서 누리게 될 모습이겠지. 더 이상 그 시시한 과자나 장난감 때문에 목숨 걸 필요가 없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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