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호흡을 들이마셨으면 이제 숨을 천천히 뱉으세요. 단전에 힘을 집중하고 소리를 내면서 내쉬어야 합니다. 눈을 감고 속에 있는 근심을 밖으로 내보낸다고 생각하세요."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23일 오전 8시 전북 전주 풍남문 앞. 20여 명이 모여 단전호흡을 배운다. '제2회 세계 종교 문화 축제' 기간 중 아침마다 열리는 '종교의 깊이 체험' 시간이다. 4대 종단이 매일 돌아가며 진행한다. 이날은 박대성 교무가 원불교 수련법 '마음공부'를 소개했다. 개신교는 명상 기도, 불교는 선 요가, 천주교는 참살이 영성 피정을 준비했다.

참석자들은 각자 종교가 달랐다. 이날은 원불교 성직자가 주관했던 터라, 참석한 대다수가 원불교인이었지만, 기독교인도 있었다. 다른 종교 성직자가 가르치는 명상이라 거부감도 들 텐데, 앞에서 시키는 대로 웃으며 잘 따라한다. 박대성 교무는 "다른 종교에서 온 사람들도 있어 원불교 교리는 빼고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명상법 위주로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 '종교의 깊이 체험' 시간. 참석자들이 단전호흡을 배우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세계 종교 평화 축제는 20일 풍남문 앞에서 개막했다. 이 축제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4대 종단이 모여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종교를 소개하고 알리는 행사다. 서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해를 넓히자는 취지다. 20일부터 24일까지 풍남문광장 앞과 전라북도에 산재한 종교 사적지를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지역 시민, 관광객 누구나 쉽게 접하는 이웃 종교

풍남문광장에 종교별로 부스가 설치됐다. 각 종교의 성물, 성화, 음식, 복식 등을 소개하는 부스다. 자원봉사자가 각 종교 문화를 안내한다. 광장 주변에 경기전, 전동성당 같은 유명 관광지가 있어, 사람들이 늘 붐빈다. 이들은 광장에서 각기 다른 종교 문화를 동시에 접할 수 있다.

저녁에는 풍남문 앞 무대에서 음악 공연, 영화 상영회가 열린다. 개신교·천주교·불교·원불교는 각각 사랑의 날, 평화의 날, 자비의 날, 은혜의 날이라는 주제로 문화 행사를 진행했다. 개신교는 전남 신안군 일대를 복음화한 문준경 전도사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을 공연했다.

전라북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4대 종교 사적지가 많다. 호남 개신교 선교의 문을 연 예수병원·신흥고등학교·서문교회. 천주교 최초 순교자 김대건 신부가 머물던 나바위성당. 원불교중앙총부가 있는 익산 성지, 불교 미륵성지 금산사가 그 예다. 세계종교평화협의회는 축제 기간 동안 종교 지도자와 함께 사적지를 탐방하며 종교 역사를 배우는 시간을 마련했다.

세계 종교 문화 축제는 전라북도가 주최하고 세계종교평화협의회(회장 백남운 목사)가 주관하는 지역 단위 행사다. 협의회에는 몇몇 개신교 교회, 원불교전북교구, 천주교전주교구, 대한불교조계종제17교구 등이 참여한다.

규모가 있는 연합 기관이 주관하는 큰 행사는 아니나, 마토코(Firmin Edouard Matoko) 사무총장보가 참석할 정도로 유네스코에서 관심을 갖는다. 여러 종교가 한데 어우러져 진행하는 평화 축제이기 때문이다.

마토코 사무총장보는 개막식에서 "오늘 세계에서는 종교 갈등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키며 나라가 분열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다른 종교가 모여 평화로운 축제를 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 시민들은 풍남문광장 앞에 설치된 부스에서 각 종교를 접할 수 있다(위). 부스에는 각 종교의 성화, 성물 등이 비치돼 있다(아래). ⓒ뉴스앤조이 박요셉

'단어' 하나로 갈등했던 종교 대회

올해 2회째를 맞는 세계 종교 평화 축제는 처음부터 순항이었던 것은 아니다. 전북 지역 4대 종단은 2014년까지 세계 순례 대회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행사를 7년 동안 개최해 왔다. 전라북도에 산재한 각 종교 사적지를 돌며 참가자들에게 종교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대회다.

이 대회는 2014년 불교계가 불참하기로 결의하면서 파행으로 끝났다. 불교계는 '순례'라는 단어를 문제시했다. 기독교 색채가 강하다는 지적이었다. 대회 코스도 기독교 사적지 위주고, 대회 내내 기독교계 위인만 강조되는 점도 문제 삼았다.

4대 종단은 대책위를 세워 세계종교평화협의회를 2015년 조직했다. 각 종단이 추천한 대표자를 공동집행위원장로 세우고 매년 종단별로 행사를 준비하기로 협의했다. 1회는 불교계, 올해는 개신교계가 주관해 세계 종교 문화 축제를 준비했다.

올해 대회는 개신교가 주관하니 주변 교회 지원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동집행위원장 상임대표 이광익 목사에게 교계에서 얼마나 참여하는지 물었다. 교계까지는 아니고 몇몇 목사만 참석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독교 안에는 목사가 다른 종교 지도자와 함께 있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1회 축제에 참석했던 한 목사는 한 교인에게 "지금 하는 거 혼합주의 아닌가요. 그거 당장 그만하세요"라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런 시각 때문인지 교구 단위로 축제를 지원하는 3개 종교와 달리 개신교에서는 개교회 일부 목사가 행사를 돕고 있다.

이광익 목사는 "4대 종교가 한자리에 모이는 이유는 서로 이해하자는 취지다"고 말했다. "종교 일치나 혼합주의가 아니다. 우리가 서로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잘못된 선입관을 버리자는 거다. 종교가 다르다고 싸워야 하나. 상대에게 있는 좋은 점을 배우고, 차이를 인정하는 게 이번 축제 목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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