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홍대 주변에는 특별한 책방이 많다. 독립 출판물을 파는 곳도 있고, 요리 서적만 파는 곳도 있다. 커피와 함께 책을 판매하는 카페도 있다. 번화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아주 작은 동네 책방도 있다. 올해 3월 초 문을 연 '초록책방'도 그중 하나다.

1평 남짓한 공간에 여러 종류의 책이 켜켜이 쌓여 있다. ISBN 코드가 없는 책, 페미니즘 관련 책,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책, 시집,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 등이 꽂혀 있다.

▲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동네 책방인 '협동조합 초록책방'. 없는 책 빼고 다 있다. 원하는 책을 주문하면 책방지기 심상욱 씨가 직접 구매해 놓는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9월 20일 저녁 초록책방에서 책방지기 심상욱 씨를 만났다. 초록책방은 기독교 NGO 러빙핸즈가 운영하는 초록리본도서관과 한 공간을 쓰고 있다. 러빙핸즈 자원봉사자 두세 명이 만든 협동조합이라 러빙핸즈 한쪽에 자리 잡았다. 현재는 12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2년간 협동조합을 공부하다가 사업 콘텐츠로 '책'을 선택했다.

공간은 작지만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책방지기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신간을 확인하고 필요한 책을 구매한다. 구매할 때는 조합원들 이야기를 수렴한다. 책을 보는 견문이 아직 부족해 주변 사람들 추천을 받아 발품을 판다. 손님이 책을 주문했는데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그 한 사람을 위해 직접 도서를 구입하기도 한다.

책은 인터넷으로도 신청할 수 있고 책방지기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서 살 수도 있다. 책방 한쪽에는 손님들이 구매 후 아직 가져가지 않은 책들이 꽂혀 있다. 책방지기가 출근하지 않는 낮에 방문했을 때는 메시지를 남기고 자기가 산 책을 가져간다.

책만 파는 건 아닙니다

이름은 책방이지만 책만 팔지는 않는다. 모임을 주최하는 사랑방 역할도 한다. 사람들 반응이 좋다. 정기적으로는 한 달에 두 번 책 모임을 하는데, 지금까지 매회 15~20명 정도 찾아왔다. 예상보다 오는 사람이 많아서 두 그룹으로 나누어 모임을 진행한다. 며칠 전에는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낭독하는 시간도 가졌다.

책 모임에는 다양한 사람이 온다. 수차례 참가한 사람, 처음 온 사람, 기독교인, 비기독교인이 고루 모인다. 참가하는 데 특별한 기준이 있진 않다.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이다.

두꺼운 철학책, 신학 서적만 읽는 건 아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기도 하고 만화책을 보기도 한다. 9월 초에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이봄)라는 만화책을 읽고 만났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났으니 어색할 법도 하지만 금세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 한 달에 한 번꼴로 저자와의 모임을 진행한다. 평소 좋아하던 저자의 이야기를 아주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 지금까지 정희진·목수정·박총 작가와 래퍼 허클베리피가 초대됐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처음부터 이렇게 모일 생각은 아니었다. 초반에 잘 팔리던 책이 시간이 지나고 판매가 주춤하자 책 모임을 기회로 책방을 홍보할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책이 좀 팔렸어요. 오픈한 뒤 SNS에 올리니까 사람들이 사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책이 안 팔리고, 제가 할 일이 없어졌어요.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 가는 날도 많았죠. 어차피 도서관은 저녁에는 안 쓰니 여기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모임이라는 어플에 책 모임 하자고 올렸는데 20명 넘게 사람이 왔어요. 깜짝 놀랐죠. 사람 안 오면 어쩌나 했는데, 많이 오더라고요."

책 모임과 함께 월 1회 저자와의 만남도 추진하고 있다. 이 역시 책을 소개하고 판매할 마음에서 시작했다. 올해에만 작가 4명을 초대했다.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정희진 작가, <야성의 사랑학>(웅진지식하우스) 목수정 작가, <욕쟁이 예수>(살림) 박총 작가, 래퍼 허클베리피가 왔다. 허클베리피는 책을 내지는 않았지만 그가 낸 신보가 작품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초대했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는 조금 특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색깔로 심리를 살펴보는 색채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었다. 모집 한 시간 만에 인원이 찼다. 이 역시 작은 책방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다.

초록책방의 도전은 진행형이다. 책방지기 심상욱 씨는 초록책방이 더 신나고 재미난 공간이 되길 꿈꾸고 있다. 책만 많이 파는 그런 책방이 아니라, 대화와 웃음이 넘치는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46-17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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