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9월 10일, 한별 씨(20)는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숨과쉼 공동체에 짐을 풀었다. 부모님과 함께 방을 둘러보고 공동체 식구들과 인사를 나눴다. 한별 씨는 올해 제천에 있는 대안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살 곳을 찾던 중 지인 소개로 숨과쉼 공동체를 알게 됐다.

입주하기 전 세 차례 입주민들을 만나 숨과쉼 공동체가 어떤 곳인지 설명을 들었다. 처음에는 기독교 공동체라는 점에서 종교 생활을 강요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한별 씨는 무교다.

걱정은 기우였다. 아침마다 기도 시간이 있긴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기도문을 함께 읽고 묵상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라면 자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입주민 언니, 오빠들이 좋은 사람 같았고 분위기가 자유롭고 편안했다.

한별 씨를 끝으로 숨과쉼 식구들 7명이 모두 입주했다. 9월 10일, 숨과쉼 공동체는 집들이를 열어 지인들을 초대했다. 기자를 포함해 교회 친구, 직장 동료, 광진구 이웃 등 10여 명이 함께했다.

▲집들이에 오니 음식이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손님들이 다 같이 저녁을 준비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넓고 쾌적한 환경, 저렴한 월세

숨과쉼은 대한성공회 희년교회 김홍일 신부가 만든 청년 주거 공동체다. 원래 지역사회를 돌보는 선교 센터로 운영하기 위해 가정집을 개조해 시작했다. 지역 선교를 시작하기도 전에 오갈 데 없는 청년들이 이곳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김홍일 신부는 선교 센터로 찾아오는 청년들과 대화하면서 부모와 갈등, 취업 문제, 주거 부담 등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알게 됐다. TV에서 떠들던 'N포세대'가 눈앞에 있었다. 이들을 위해 주거, 생활, 영성 공동체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청년들이 정서적, 신앙적 안정을 누리는 가운데 사회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코자 공동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광진구 자양동에서 김홍일 신부를 포함 남자 셋이 살았다. 숨과쉼 입주를 희망하는 청년이 점점 늘어나면서 집을 옮겼다. 올해 구의동에 빌라 두 개 층을 전세로 얻었다. 지금은 남자 셋, 여자 넷 총 일곱 명이 숨과쉼에 거주한다.

방 넓이에 비해 매달 부담하는 돈이 저렴해 부담이 적은 편이다. 직장인은 18만 원, 대학생과 구직자는 12만 원이다. 서울에서 방 하나 얻으려면 30만 원 넘는 건 이제는 예삿일이다. 관리비에 공과금을 더하면 4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이와 비교하면 숨과쉼 입주금은 절반 수준이다.

작년 7월부터 숨과쉼에 거주한 성승현 씨는 "한 사람이 거주하는 데 필요한 최소 비용이 얼마나 될지 입주민끼리 고민하고 결정한 금액이다. 입주금으로 수익을 내지 않으니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입주금은 매년 초 입주민들이 논의해 다시 결정한다.

김홍일 신부는 청년들이 신앙적 안정을 누리는 가운데 사회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코자 공동체를 시작했다. 위 사진은 숨과쉼 식구들 모습. 두 사람은 지방에 가고 없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성세대가 청년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유럽형 시민 은행 모델 제안

생활비를 제한 입주금은 모두 대출금 이자를 갚는 데 쓰인다. 김홍일 신부는 새 공간을 마련하면서 3억 5,000만 원을 재단법인 한국사회투자에서 융자받았다. 1억 원은 은행과 교인들에게 빌렸다.

빌린 돈만 수억이다. 다 갚을 수 있기는 할까. 김홍일 신부는 유럽에 있는 시민 은행 모델을 적용하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교회나 개인에게 무이자로 출자금을 확보하는 식이다. 요즘처럼 저금리 시대에 꿈꿀 수 있는 방식이다.

숨과쉼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하는 교회나 개인이 1~2년 안에 사용할 계획이 없는 목돈을 무이자로 출자하면, 숨과쉼 공동체는 이 출자금으로 대출금을 일부 상환할 수 있다. 지불하는 이자가 줄어드니 남는 입주금으로 공동체 기금을 마련할 수 있다.

출자금은 다시는 못 받는 돈이 아니다. 필요하면 다시 받을 수 있다. 물론, 공동체 기금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회수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출자 시 회수 가능 시점을 출자 후 1~2년 뒤로 정하는 이유다.

출자금이 증가해 공동체 기금이 충분히 마련되면 안정된 출자 – 회수 구조가 갖춰진다. 숨과쉼은 주거 공간을 더 확보할 수 있고 청년들에게는 적은 비용으로 살 수 있는 주거 환경이 마련된다. 김홍일 신부는 "교회와 기성세대가 청년 문제에 공감하고 나서 준다면,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희망을 담아 말했다.

▲매일 오전 6시 30분 숨과쉼 공동체는 다 같이 기도 모임을 연다. 너무 이른 거 아니냐고 물으니,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에게 맞추려고 이른 시간으로 잡았다고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까탈스러운 네 모습 그대로 존중해"

함께 살면 비용이 적게 들고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내 방이 커진다고 내 삶이 바로 여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같이 살면 보이지 않는 불편이 있기 때문이다. 숨과쉼도 그렇지 않을까.

기독교 공동체라 까다로운 규칙이 많을 것 같지만 두세 개밖에 없다. 까다롭지도 않다. 매달 입주금 꼬박꼬박 낸다는 규칙을 빼면 입주민에게 요구되는 건 두 개밖에 없다. 매일 아침 기도하고, 매주 한 번 공동체 성찰 모임에 참석하는 거다.

아침 기도 모임은 매일 6시 30분 남자들이 사는 집 거실에서 열린다. 가장 먼저 출근하는 입주민에게 맞춰 시간을 정했다. 15분 동안 말씀을 묵상하거나 기도문을 읽고 침묵으로 기도한다.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니다. 늦잠 자서 빠져도 누구도 무어라 잔소리하지 않는다.

같이 사는 7명 중 3명은 기독교인이 아니다. 김홍일 신부는 "종교가 다르더라도 이들이 크게 저항감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도문을 읽고 묵상하고 대화하는 방식이라 부담이 적다는 것이다.

성찰 모임에서는 입주민들이 지난 한 주를 돌아본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묵상하고 직장이나 학교, 공동체에서 보낸 삶을 성찰한다. 지난 한 주 동안 겪은 일이나 고민을 나눈다. 같이 살며 불편했던 감정을 고백하고, 서로 몰랐던 부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 혼자 사는 걸 좋아했던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려서 산다. 이들은 함께 지내면서 자신이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지금 숨과쉼 구성원 중에는 한별 씨처럼 이제 막 입주한 이도 있지만 1~2년 지낸 이도 있다. 이들에게 공동체 생활이 어떤지 물었다.

2014년부터 김홍일 신부와 함께 지낸 김광천 씨는 "개인주의자였던 내가 많이 달라졌다. 남이 내 물건을 만지는 걸 싫어할 정도로 까탈스러웠다. 내 공간, 시간, 물건을 중요하게 여겼다. 함께 살면서 이런 내 모습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먼저 내 모습을 존중해 주니 나도 내 경계를 허물더라. 요즘은 이전보다 남에게 관심을 보이고 내 것을 나눈다"고 했다.

올해로 공동체 생활 1년째인 성승현 씨는 "나는 원래 혼자 사는 걸 좋아했다. 재작년 신부님이 같이 살자고 했을 때도 바로 거절했다. 그런데 혼자 살며 외로움이 커지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힘들더라. 예수원에서 3개월 지내면서 공동체 생활이 갖는 의미를 깨닫고 숨과쉼에 들어왔다. 정서도 신앙도 안정을 되찾고 광천이와 매일 재밌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막상 큰 기대를 갖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지만 중간에 마음이 바뀔 수 있다. 숨과쉼은 새로 입주하는 이에게 3개월 동안 적응 기간을 갖게 한다. 이후 계속 거주하길 원하면 6개월 단위로 기간을 갱신한다.

▲숨과쉼 공동체는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열어 지인들을 초대한다. 개신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공동체 기본 정신은 환대

숨과쉼이 기본으로 지향하는 가치는 환대다. 빈자든 죄인이든 누구든지 기쁘게 맞이했던 예수를 닯으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숨과쉼 공동체를 찾는 손님이 많다.

어느 날 입주민의 지인이 트렁크 두 개를 들고 밤에 갑자기 찾아왔다. 다들 무슨 일이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온 청년은 6개월 가까이 숨과쉼에서 지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와 다퉈서 왔다.

김홍일 신부는 "짧게는 1~2주, 길게는 반년까지 지내다 가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입주자들은 괜찮다고 말한다. 김광천 씨는 "예수님의 구원은 환대에서 온다. 입주민들 사이에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을 받아 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숨과쉼은 한 달에 한 번 전체 모임을 열어, 종교와 상관없이 지인과 이웃들을 초대한다.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교제를 나눈다. 옥상에서 기타를 치며 함께 가요를 부르기도 한다. 작년에는 홍대에서 장소를 빌려 공연을 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9월 10일 집들이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웃 주민도 놀러왔다. 이날 초대받아 집들이에 온 이나리 씨에게 소감을 물었다.

"기독교인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어울리고 쓰는 말도 달랐다. 그런데 숨과쉼이 타 종교인과 관계를 갖는 모습을 보며 편견이 깨졌다. 교회 다니라는 지루한 말만 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유쾌하고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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