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2004년, 로넬 차크마 나니 씨(45)는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 받았다. 2년 만의 일이었다. 방글라데시 줌머족 로넬 씨는 벵갈족의 핍박을 피해 2000년 한국에 왔다. 지금은 김포시 양촌읍에서 동포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지낸다. 10명도 안 됐던 공동체는 이제 100여 명으로 늘었다.

1971년, 방글라데시 정부를 세운 벵갈족은 줌머족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줌머족은 벵갈족이 독립을 위해 파키스탄과 싸울 때 벵갈족을 지원했다. 자치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원하던 독립을 얻었지만 벵갈족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줌머족이 사는 치타공 산악 지대로 벵갈족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군과 경찰을 파견했다. 줌머족 토지를 빼앗고 마을을 불태웠다.

줌머족은 치타공 산악 지대에 사는 소수민족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다. 주로 화전 농사를 짓는다. 줌머족은 벵갈족과 다른 점이 많다. 인종은 몽골계고 종교는 불교다. 벵갈족은 대부분 무슬림이다. 로넬 씨는 화전 농사를 짓는 줌머족이 한국 농부처럼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 2004년 난민 지위 인정을 받은 좀머인 로넬 씨. 지금은 이주민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일을 돕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난민 신청자에서 이주민 도우미로

로넬 씨는 1994년 처음 한국에 왔다. 방글라데시 정부군에 대항하던 게릴라 부대 간부들과 함께 태국으로 피신했다가 한국으로 넘어왔다. 한국에서 지내다 1년 만에 방글라데시로 돌아갔다. 줌머족 게릴라 부대가 정부와 평화협정을 체결해 핍박이 그쳤을 거라 생각했다.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인권침해는 여전했고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로넬 씨는 다시 고향을 떠났다.

"모든 게 막막했습니다. 낯선 땅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 한국어는 1년 정도 지낸 경험이 있어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어요. 가구 공장, 콘크리트 공장에서 일하면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어요."

지금도 난민 지위를 받는 게 쉽지 않지만, 당시는 더 어려웠다. 난민 개념조차 희미했다. 관련 제도도 제대로 갖춰 있지 않았다. 난민 신청을 하러 법무부에 갔을 때, 범죄자 취급을 받는 기분이었다. 난민 자격 심사도 요즘처럼 난민 연구 조사관이 아닌, 출입국관리소 조사관이 진행했다. 조사관들은 로넬 씨 말을 도통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언론이 로넬 씨가 처한 상황을 조명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난민을 신청한 지 2년 만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로넬 씨는 "저는 그래도 많이 나은 편이에요. 6년, 8년이 지나서야 겨우 인정받은 사람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 김포시외국인지원센터는 지역 내 이주민들이 겪는 여러 불편과 어려움을 돕는다. 마을 안에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재들이 마련되어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요즘 로넬 씨는 김포시외국인지원센터로 출근한다. 이곳은 김포시가 비영리단체 국경없는마을에 위탁해 운영하는 공공 기관이다. 로넬 씨는 전문 통역가로 근무 중이다. 이주민들이 공공 기관에 서류를 신청하거나 경찰에게 조사를 받을 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통역을 한다.

공동체지원팀에서 김포시에 사는 각 공동체를 돕는 일도 한다. 김포시에는 파키스탄, 태국, 몽골 등 출신 국가별 공동체가 꾸려져 있다. 각 공동체가 진행하는 문화 행사에 예산 등을 지원한다.

"이주민들 대다수가 노동자에요. 먹고 일하는 것 외에 특별히 다른 문화 활동을 즐길 기회가 없어요. 그러면 스트레스가 누적될 수밖에 없어요. 스트레스는 결국 여러 가지 갈등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죠.

김포시외국인지원센터는 각 공동체가 다양한 문화 활동을 누리도록 돕고 있어요. 방글라데시·파키스탄 공동체는 크리켓 대회를, 몽골 공동체는 농구 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요.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네팔 공동체는 문화제를 열고요. 센터는 이들을 위해 장소를 섭외하거나 예산을 지원하고 있어요."

다문화 사회는 언제 올까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에 상주하는 외국인 수는 약 137만 명이다(2015년 5월 기준). 추이를 보면 앞으로 더 증가할 전망이다. 언론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고 말한다.

로넬 씨에게 한국에 처음 왔던 1994년과 지금을 비교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주민들 상황이 그래도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기대를 품고.

"정부나 시민단체는 이주민을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하지만 시민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거 같아요.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 안에 같은 시민으로 동화되지 못하고 있어요. 한국 사회는 이주민을 노동자로만 보는 것 같아요.

한국인 고용주가 대표적인 예에요. 이주민 노동자가 국내로 들어온 지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계 부속품으로 여겨요. 복지, 근무 환경 등 이주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에 관심이 없어요."

로넬 씨에게는 고등학생 아들이 있다. 아들의 장래 희망은 경찰이 되는 것이다. 로넬 씨 지인 아들은 의사가 꿈이라고 한다. 로넬 씨 지인은 콩고에서 왔다. 줌머족 경찰에게 치안을 맡기고 흑인 의사에게 건강을 맡기는 사회. 로넬 씨는 그런 사회가 진정한 다문화 사회 아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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