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여는집에서 운영하는 무료탁아소의 아이들 ⓒ뉴스앤조이 김승범

'노숙자로 오신 아기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고 누가복음은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길거리를 헤맸고 마침 그 아내는 임산부였습니다. 하마터면 길에서 아이를 낳을 뻔했는데 숙소를 찾다찾다 마구간에 가서 아이를 낳았던 쓸쓸한 노숙자 가족! 그 이야기가 바로 크리스마스입니다.' (송명희 시인의 기도문 '노숙자로 오신 예수님')

2천년 전 베들레헴의 쓸쓸한 노숙자 가족 이야기는 지금 이 땅에서 현실로 재현되고 있다. 서울의 어느 쉼터 풍경은 더욱 암울한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다가 도산한 뒤 살 길이 없어 가족 쉼터를 찾은 김씨. 아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병을 앓고 있고 두 아이는 어린이 보호시설에서 공부한 뒤 저녁에 가족 쉼터로 돌아온다.

김씨는 아내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비 1천5백만원을 마련하기가 막막하다. 주민등록증도 없고 의료보험도 안 된다. 생활보호대상자 신고를 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동사무소에 신고해야 하는데, 채무자를 피해 있는 입장이어서 신분을 노출하기가 두렵다. 자신이야 구치소에 수감되면 그뿐이지만 병든 아내와 두 아이 걱정에 그럴 수도 없다.(<내일을 여는 집> 21호)


실직자들이 늘면서 노숙자 숫자도 다시 늘어났다. 많게는 5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통계도 나온다. 두 평도 안 되는 쪽방에서 하루 7∼8천원씩 일세를 지불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도 여전히 희망 한 자락이 남아 있을까.

인천시 계양구 계산2동, 해인교회를 배경으로 마련된 '내일을 여는 집'은 올해 다시 늘어난 노숙자들에 대한 대책으로 인천시 중구 인현동 쪽방(78세대)과 계암구 효성1동 쪽방(45세대)에 사무실 공간을 마련했다.

▲쪽방 상담소 ⓒ뉴스앤조이 김승범
주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노숙자들의 삶 한가운데로 직접 찾아가 그들의 자활 의지를 키워주고, 생활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사무실에는 공동 세탁시설의 일환으로 대형 세탁기를 설치하고, 텔레비전도 갖다 놓았다. 의료기관과 협의해 의료서비스도 정기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다.

내일을여는집은 1998년 음식을 타기 위해 100m 넘게 늘어선 노숙자들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한 사업이었다. IMF 시절 교회 성도들 가운데도 실직자들이 생기면서 교회를 실직자들을 위한 쉼터로 열었다. 그해 여름 공식으로 자활의 집으로 인정받으면서 25평 규모의 공간은 노숙자 20명으로 금세 꽉 차버렸다.

아내와 아이들이 딸린 노숙자 가족이 들어오면서 여성들을 위한 임시 처소로 기도실을 개방하다가 숫자가 늘자 그해 겨울 여성 및 가족들의 쉼터를 열었다. 인천 지역의 쉼터 다섯 곳 가운데 두 곳을 여기서 열었으며, 그후 40∼50명 선이 계속 유지되어 왔다. 노숙자 자녀들을 위해서도 탁아방이나 공부방을 열었다. 이 시설은 주민들 가운데 결식 아동과 맞벌이 부부들에게도 개방했다.

푸드뱅크 사업을 시작한 것은 노숙자뿐 아니라 먹거리 문제로 고민하는 실직자들, 노숙자 쉼터를 거쳐 월세라도 얻어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먹는 문제라도 해결해주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노숙자로 나앉는 것을 예방하고 쉼터를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노숙자도 막았다. 최근에는 쪽방까지 찾아가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1999년까지는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분노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금전을 관리하는 법과 알코올 중독을 치료했다. 그러나 이들이 거리를 다니다가 다시 쉼터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자활 프로그램으로 전환했다. 버려진 가전제품을 수리해서 되파는 재활용센터 사업을 통해 1천1백만원의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계양구청의 협조 속에서 가전제품의 재활용을 전담했으며, 가전회사의 도움으로 수리 기술을 교육받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 벌이만을 놓고 보면 막노동판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떠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 내년에도 꾸준히 이 사업을 확장해 자활 기능을 해볼 생각이다.

▲해인교회 이준모 목사 ⓒ뉴스앤조이 김승범
이제 이 목사는 여성 노숙자 문제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정부의 노숙자 대책에서 여성들과 그 자녀에 대한 부분은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 노숙자들이 발생하는 과정은 대개 네 가지 유형을 따른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남편이 장기 실업자로 빠지면서 알코올 중독 증세를 갖고 가정 폭력을 행사하거나 노숙자가 되어 가정이 해체된 경우이다. 이 경우 여성들은 자녀들만이라도 살려보자는 심정으로 직업 전선에 뛰어들지만 월세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노숙자가 되고 만다.

두 번째는 남편이 사업을 하다 망해서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다. 이 경우 채무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남편과 불가피하게 법적으로 이혼한 상태에서 채무자들을 피해 다니는 유형이다.

세 번째는 가정 폭력으로 해체된 가정이 IMF를 만나 거리로 나앉는 경우가 있고 정신병원에 입원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가족들로부터 쫓겨난 정신질환자들 역시 수용시설에서는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노숙자의 대열에 서게 된다.



노숙자 사업, 법적 근거 없어 사각지대로 방치

그러나 현재 노숙자 사업은 법적 근거가 없는 임시 사업의 형태로 5년간 흘러왔다. 노숙자라는 특수한 계층에 대한 법령을 정비한다는 것에 사치스럽기까지 한 관계 당국의 부담과 여야 정쟁의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법령에 의한 복지시설이 아니면 사실상 임의단체에 불과하며 이 때문에 행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가령 정부가 법령에 의해 지정한 사회복지시설은 보건소를 정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또한 의료재정을 정부가 부담하여 지원한다. 뿐만 아니라 노숙인 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주관단체의 민관 협력 체계나 종사자들의 처우가 현격하게 다르다.

현재 노숙인 쉼터에 종사하는 상담원이나 관리자들은 일당제로 고용되어 있다. 하루 평균 8시간 근무하고 장기 고용일 경우 일당제 운용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이 불법을 앞서 행하는 꼴이다. 일당제 직원은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다. 결국 사회복지사들은 관계 법령조차 없는 일당제 사업장을 회피하게 되며, 전문성이 결여된 종사자들이 노숙자 사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이준모 목사).


노숙자들과 함께 한지 4년째. 내일을여는집은 공부방·푸드뱅크·싹싹공동체·점심 무료급식·노숙자 쉼터·계양구 재활용센터·쪽방상담소·가정폭력상담소 등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줄기보다 오히려 늘어나는 노숙자들을 보며 그들은 스스로 내일은 올 것인가를 거듭 질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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