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한때 '전도사'였다. 20대 중반부터 30세까지 여러 교회에서 재밌게 사역했다. 청소년들과 함께일 때 좋았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듯 설교하고 직접 만든 '복음 여권'에 도장을 찍어 줬다. 아이들은 여권에 빼곡히 찍힌 도장을 재밌어했다. 모두들 교회학교가 어렵다고 말하던 때, '부흥'을 맛봤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 교육부에 들어가 교재 만드는 일도 했다.

그렇게 6년을 사역하다 홀연히 전도사직을 내려놨다. 동기들이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고 목사 안수를 받을 때 홀로 교육심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전도사가 아닌 '선생님'으로 불린다. 협동조합 학습 공동체 '아카데미쿱'에서 부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직접 만든 수업 프로그램으로 주 3회 아이들을 만난다. 한 달에 한 번은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 박대건 씨는 20대 중반 꾸준히 교회학교 사역을 해 왔다. 그러다 홀연히 전도사직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기독교 대안 교육에 눈뜨다

더위가 한풀 꺾인 9월 6일, 아카데미쿱 사무실이 있는 불광동에서 박대건 씨(32)를 만났다. 전도사였던 그는 신학교에서 '기독교 대안 교육' 수업을 들으며 교육에 눈떴다. 간디학교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수업을 들으며 마음이 흔들렸다. 쌍방향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이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서로 정답을 찾아가는 점도 좋았다. 학생들을 옆에서 도와주고 응원해 준다는 가치가 흥미로웠다.

고민이 됐다. 신학대학원을 갈지, 교육심리학을 배울지 혼란스러웠다. 결국 일반대학원을 선택했다. 교회 안팎에서 계속 학생들과 만나게 될 텐데, 제대로 배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전도사 때는 전문 지식이 없으니 아이들 심리나 상태를 추측해서 접근했다. 이상행동이 보여도 어떻게 할지 잘 몰랐다.

교회 밖에서 예수 정신을 전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교회 다녀라" 말로 하는 전도도 중요하지만 비기독교인에게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고 약한 사람을 일으켜 주는 예수님 성품을 삶으로 전하고 싶었다. 교육심리학을 더욱 공부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회 사역 대신 '교육 협동조합'에 들어갔다. 생긴 지 3개월쯤 된 신생 단체였다. 협동조합이 3년이면 오래 버텼다고 이야기하던 때지만 선택에 망설임이 없었다. 성적 대신 성품을 기르고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인격적 내구성을 배양한다는 모토가 좋았다.

▲ 박 씨는 아카데미쿱에서 부이사장 겸 선생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름, 겨울에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캠프를 떠난다. (사진 제공 박대건)

현재 수업에는 15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각 반마다 5~8명 정도로 주 1회 3시간씩 밀도 있게 만났다. 선생은 12명 정도 된다. 한 사람당 3~4반을 맡는다. 동학년끼리 묶지 않고 초등학교 저학년, 고학년, 중학생으로 나누어 수업한다. 박 씨도 주 3회 4개의 수업을 한다.

본격적인 수업을 하기 전 박 씨는 아이들과 30분 정도 수다를 떤다. 사소한 일부터 학교에서 따돌림받은 이야기까지 나온다. 마음이 붕 떠 있던 아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후 초등학교 저학년들은 구연동화를 듣는다. 고학년들은 한문으로 인성 교육을 하고, 수학과 과학을 융합한 자연 교육을 배운다. 중학생들은 인문학을 통한 글쓰기, 고전 강독, 자연반 과정 수업을 한다.

"한자를 활용한 인성 수업이 있어요. 주로 단어의 의미를 풀이하면서 아이들 생각을 물어봐요. 이런 식이에요. 미련이라는 단어 뜻에는 미련하다란 말이 있고, 아직 연복을 입을 때가 아니다라는 뜻이 있어요. 옛날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렀잖아요. 죽은 지 1년 만에 드리는 제사인 소상에 입는 옷이 연복이에요.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어요. '연복을 차마 입지 못하는 사람 심정이 어떨까' 하면 아이들이 자기에게 미련이 남는 일을 하나씩 꺼내 놔요."

일은 많아도 아이들과 부대끼는 게 참 좋다

수업할 때 질문을 던지고 한 명씩 이야기를 듣는다. 한번은 수업에서 규칙을 정하는데 한 아이가 쓸 때 없는 소리 안 하기, 조용하기를 의견으로 내놓은 적이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실컷 해도 괜찮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각 사람이 말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수업 자체가 진행되지 않지만 아카데미쿱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학부모와 직접 만나는 시간도 있다. 이때 아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다. 한 달간 칭찬할 점과 부족한 점을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박 씨와 상담하다가 우는 부모도 있다. 전도사였을 때는 아이에 대해 직접 피드백하는 게 어려웠다. 전도사-부모가 아니라 전도사-직분자였기 때문에 입을 여는 게 조심스러웠던 것. 지금은 자연스럽게 아이에 대해 부모와 이야기 나누고 해결책을 함께 찾아간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은 인터넷에서 소통한다. 매 수업마다 다섯 페이지가량 되는 보고서를 올린다. 어떤 수업을 진행했고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꺼냈고 학생들 반응은 어땠는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학부모는 박 씨가 올린 보고서를 보고 "몰랐던 생각이었다", "도움이 됐다" 등 피드백을 적는다. 품이 많이 들지만, 부모가 학생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 한 달에 한 번은 학부모들과 만난다. 상담도 하고 수업 및 아이들에 대해 깊게 이야기를 나눈다. (사진 제공 박대건)

수업 준비 및 부이사장으로 행정 업무까지 하는 박대건 씨는 늘 바쁘다. 그래도 3년간 많은 걸 배웠다. 조금씩 변하는 아이들이 가장 큰 보람이다. 6개월에서 1년가량 지나면 신뢰 관계가 생기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3년간 가르친 한 여학생. 처음에는 "물 좀 먹고 오겠다" 말도 못했다. 엄마는 아이가 낯선 사람과 이야기만 해도 좋을 거 같다고 박 씨에게 호소했다. 3년이 지나자 지금은 먼저 인사도 건네고 스스럼없이 자기 고민을 이야기한다. 새로 들어오는 학생을 챙기며 선생 역할도 도맡고 있다.

학교에서 문제아로 불리는 아이도 있다. 엄마가 한 달에 한 번 반성문 쓰러 학교에 갈 정도다. 또래보다 힘이 센 편이라 싸움이 붙으면 문제가 커진다. 수업 중이나 게임 시간에 종종 박 씨를 때린다. 장난이라며 등을 때리는데, 소리가 크게 나 아이도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을 아는 부모는 한 달에 한 번 박 씨를 보러 올 때마다 "미안하다"고 말을 건다. 상담을 받아야 하느냐 묻기도 한다. 박대건 씨는 "아들을 믿어 주라"고 조언하고 격려했다. 느리더라도 아이가 신뢰를 받으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가 저도 가끔 때려요. 등을 쳤는데 소리가 크게 나니까 자기가 놀란 거에요. 고의가 아니고 실수였으면 괜찮다고 말했어요. 여기 있으면서 화를 내거나 혼낸 적이 거의 없는 거 같아요. 그런데 갑자기 애가 순해진 거에요. 신기해서 물어봤어요. 왜 그렇게 착하게 구냐고. 그 애가 '선생님은 저를 착한 사람으로 알잖아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마음이 찡했어요. 자신을 그렇게 믿어 주니까 실제로 변한 거예요. 신기한 일이죠."

▲ 교회와 교육계를 모두 경험한 그에게 교회 사역하면서 아쉬운 점을 물었다. 그는 학부모들과 아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하지 못하는 점을 꼽았다. 아이들이 주중에도 교회에 오고 전도사가 이들을 맞이할 수 있도록 교회가 교육과 지원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보살피고 설교하는 게 다가 아니다

교회와 협동조합을 모두 경험한 박대건 씨는 교회에 아쉬운 마음이 있다. 교회가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곳이 아니라 주중에도 즐겁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도사가 주일에만 아이들을 보살피고 설교하는 게 아니라 주중에 상담도 하고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고 본다. 또 교회에서도 열정을 가진 전도사들을 위한 교육과 지원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실제 그가 만난 교회 청소년 중에도 대학을 가야 하는지, 나중에 뭘 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는 경우가 많았다. 20대에 교회를 떠나는 친구도 많다. 교회가 이런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다는 게 박대건 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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