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갈등도 '돈'으로 해결되는 것일까. 분쟁을 겪던 교회는 교단 실력자들에게 검은돈을 전달하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조용히 묻힐 뻔했던 한 교회 비자금 장부가 공개됐다. 장부에는 노회와 총회 실력자들에게 돈을 전달한 날짜, 액수, 전달자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검은돈은 교계 언론사로도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교회 통장에서 비자금이 빠져나갔던 시기는 교회가 둘로 갈려 싸우던 어지러운 때였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봉천교회 이야기다.

로비 내역을 담은 장부는 2014년 5월 초 발견됐다. 몇몇 교인이 교회 컴퓨터 외장 하드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장부 파일을 발견했다. '예비 자금 운영에 관한 내역'이라는 제목의 엑셀 파일에는 2012년 6월부터 2013년 2월까지 8개월치 돈 흐름이 기록돼 있었다. 이때 교회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은 3억 9,000만 원에 달했다. 4억에 가까운 교인 헌금이 교인 모르게 사용된 것이다.

재정은 원로목사 측근 장로 2명이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부가 발견됐을 당시 교회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재정 감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자, 원로 측 장로들은 "누군가에 의해 장부가 위조·변작됐다"고 주장했다. 재정 로비 문제 제기에 맞서 장부 '위조·변작'으로 프레임을 전환했다. 원로 측 주장은 먹혀들었고, 그렇게 장부는 기억에서 잊혀지는 듯했다. 최근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비자금 장부에 이름 오른 총회 재판국장, 헌법위원장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8월 17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전 총회 재판국장 오 아무개 목사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죄목은 배임수재. 오 목사는 "재판을 잘 봐 달라"는 봉천교회 원로 측 장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300만 원을 받았다. 오 목사는 장부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엑셀 파일이 위조·변작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 디지털수사과에 의뢰했고, 조사 결과 손댄 흔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재판부가 장부의 신빙성을 인정한 것이다. 로비 장부에는 오 목사 외에도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2012년 당시 총회 재판국장이었던 장 아무개 목사는 7~9월, 여섯 차례에 걸쳐 1,1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나왔다. 재판국 서기였던 전 아무개 목사는 6~9월, 네 차례에 걸쳐 760만 원을, 재판국 회계였던 엄 아무개 장로는 150만 원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재판국원 외에도 총회 헌법위원회 관계자들에게도 돈이 흘러간 것으로 나왔다. 당시 헌법위원장 김 아무개 목사는 2012년 7~12월, 세 차례에 걸쳐 37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나왔다. 헌법위원회 전문위원 최 아무개 목사도 7~8월, 두 번에 걸쳐 2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기록됐다. 교단 재판 관련자에게 흘러간 로비 자금은 총 3,000만 원에 이른다.

▲ 봉천교회 원로목사 측이 작성한 예비 자금 장부. 법원은 엑셀 파일 최종 저장 일자가 고발인이 해당 자료를 획득하기 이전이며, 파일을 저장한 이도 원로 측 장로라고 판단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봉천교회 원로 측 장로들은 재판국원을 대상으로 왜 로비를 했을까. 앞서 언급했듯 당시 봉천교회는 둘로 나뉜 채 갈등하고 있었다. 원로목사는 2010년 12월, 장로 22명 중 13명에게 출교·면직·정직·견책 처분을 내렸다. 후임 목사 청빙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장로들을 무더기로 징계한 것.

장로들은 반발했다. 당회원 절반에 해당하는 장로 13명을 치리할 수 없고, 기소위원회와 재판국도 꾸리지 않는 등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회와 총회에 재판을 제기했지만 장로들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총회 재판국은 2012년 4월 "절차상 하자가 있더라도 봉천교회를 살려야 한다"며 원로목사 손을 들어 줬다.

총회 재판국 판결에 반발한 장로들은 법원에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같은 해 7월, 본안 소송 전까지 총회 재판국 판결을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사회 법정이 교단과 다른 판결을 내리자, 원로목사 측은 대책을 강구했다. 교단 헌법해석위원회를 거쳐 총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징계를 받은 피고가 아닌 원고가 재심을 요청한 다소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징계받은 장로들은 "사회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 "재심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총회 재판국은 일방적으로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 결과 정직 11월 2명, 시무해임 10월 2명, 해벌 3명으로 나왔다. 이전 판결보다 징계 수위가 완화됐다.

피고가 요청하지도 않은 재심을 총회 재판국이 집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재심 판결을 받은 박의관 장로는 "총회 재판국 판결이 법원에서 뒤집어질 것 같으니까 서둘러 재심한 것이다. 만일 법원이 총회 재판국 판결이 무효라고 판결을 내리면, 재심 결과를 가지고 우리를 옥죄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당시 헌법위원회는 재심이 가능하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고, 총회 재판국은 법원 가처분 판결이 나온 지 두 달도 안 돼 재심 판결을 내렸다. 박 장로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상황 속에서 총회 실력자들은 검은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장부는 진짜지만, 돈 주고받은 사람은 없다?

장부에 기록된 당사자들은 금품을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뉴스앤조이>는 관련자들과 통화를 시도했다. 장부에 돈을 받았다고 적혀 있는 5명 중 3명만 연결 됐고, 나머지 2명은 닿지 않았다. 당시 총회 재판국장이던 장 아무개 목사는 돈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총회 안에서 돈이 오간 내용은 잘 모른다. 우리가 재판한 내용은 총회가 만장일치로 보고를 받을 정도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로비 문제는) 나와 뒤떨어진 이야기니까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봉천교회 장로들을) 만나긴 했지만 금전이 오가지 않았다. 나로서는 아주 황당하다."

총회 재판국 회계였던 엄 아무개 장로는 "전혀 받은 적 없다. 그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장부를 작성한 거다. 연락은 몇 번 왔지만 잘 안 만났다"고 짧게 해명했다. 당시 헌법위원회 전문위원이었던 최 아무개 목사는 "오래돼서 봉천교회 일은 잘 기억 못 한다"고 답했다.

돈을 건넨 원로목사 측 관계자들은 뭐라고 이야기할까. 이 아무개 장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개된 장부는 원로목사가 빌려준 돈을 쓴 내역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자기가 배달을 하지도 않았고 장부의 진위 여부도 모르겠다는 주장이다. 법원이 장부가 조작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하자 "그건 판사의 판단일 뿐이다. 그만 잊어버리라"고 말했다. 백 아무개 장로는 "판결과 상관없이 돈을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징계를 받고 교회를 떠난 박의관 장로는 이번 일과 관련해 허탈하다는 듯 말했다.

"보통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회법으로 가지 말고 교단법으로 해결하라고 한다. 우리는 억울하니까 당연히 그렇게 했다. 총회 재판국은 '억울한 건 알지만 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상소를 기각했다. 세상에 이런 판결이 어딨는가. 그리고 요청하지도 않은 재심까지 했다. 돈이 오가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로 드러나니 허탈하다. 공정한 판결을 내려 달라며 쫓아다닌 우리만 바보됐다…어찌 됐든 지금은 교회를 떠난 상황이고, 이것도 하나님의 방법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용역비‧변호사비‧선물비…언론사 로비까지?

장부를 보면 돈은 재판국원 외에도 여기저기로 흘러들어갔다. 가장 큰 액수는 용역비다. 원로 측은 반대 측 장로와 교인들이 예배당을 점거하자 용역 100여 명을 투입했다. 여기에 들어간 돈만 8,070만 원에 달했다. 교인이 낸 헌금이 교인을 쫓아내는 일에 쓰인 것이다.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수임 비용으로 3,260만 원을 지출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지만 당시 노회장과 재판국장 앞으로 수십만 원에 이르는 한우 세트도 선물한 것으로 나왔다.

눈에 띄는 항목도 있다. 기독교계 언론사 앞으로 670만 원이 흘러한 것. 2012년 10월~2013년 1월까지 12회에 걸쳐 돈이 전달된 것으로 나왔다. 이 언론사는 교회 분쟁 당시 원로목사에 우호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해당 관계자는 9월 2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돈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배달 사고가 난 것으로 안다. 이00 장로가 돈을 배달한 것으로 아는데, 나한테 돈이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당사자 이 장로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당분간 통화할 수 없다는 안내 음성만 나왔다.

▲ 봉천교회는 5년 만에 분쟁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원로목사 측 장로들은 "분쟁도 끝났고 잘 지내고 있다. (로비 사건은) 잊어버리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4억에 가까운 돈은 원로목사 은퇴비에서 차입한 것으로 확인했다. 2010년 은퇴한 원로목사는 은퇴비로 8억 원을 받기로 했다. 원로목사 은퇴비를 미리 당겨서 로비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원로 측 장로들은 로비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로비 자금을 관리해 온 백 아무개 장로에게 관련 사항을 질문했다. 백 장로는 "이번 주 일요일이 교회 50주년이다. 와서 취재하고 좋은 기사나 써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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