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6일 저녁 참사 해역. 뉴스에서는 해경의 구조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안에 가족을 남겨 둔 사람들은 진도로 향했다. 그동안 전원 구조 보도가 오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생존자가 몇 명 나왔다. 가족들은 무너지려는 가슴을 간신히 부여잡고 팽목항으로, 진도 체육관으로 내려갔다.

정확한 정보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이 있었지만 그들도 몰랐다. 뉴스에는 헬기가 동원되고 구조하는 영상이 반복됐다. 경찰에게 구조 현장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배와 헬기를 내주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말을 바꿨다. 결국 가족들은 민간 어선을 불러 참사 해역으로 갔다.

3차 청문회 둘째 날 9월 1일, 첫 번째 주제는 경찰의 역할을 묻는 시간이었다. 김석균 전 해경청장, 정순도 전 전남지방경찰청장, 이춘재 전 해경 경비안전국장, 강신명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관계자 8명이 증인으로 지명됐지만 아무도 출석하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 5명이 참고인 자격으로 자리에 앉았다.

성호 엄마 정혜숙 씨는 "해경이 나중에 하는 수 없이 배를 내주어 가족들이 타고 갔다. 일부러 KBS·YTN 기자를 한 명씩 태웠다. 배 안에 TV에서는 해경과 해군이 대대적인 구조를 벌이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전혀 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봤다. 왜 구조를 안 하냐고 했더니 해경이 '정조 시간이 아니어서 구조 못 한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정혜숙 씨는 "함께 간 기자들에게 말했다. '제발 이 구조하지 않는 현실을 보도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고, 그들은 약속했다. 그런데 돌아와서 뉴스를 보니 현장과는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은 현장에 있는 기자들과 열심히 인터뷰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가족들이 울고 쓰러지고 이런 모습만 찍어서 내보냈다"고 말했다.

▲ 경찰도 사복으로 근무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TBS 생중계 갈무리)

세월호 가족들이 원한 것은 '정확한 정보'였다. 아이들의 생사, 구조 가능성, 현재 작업 상황을 알고 싶었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정혜숙 씨는 "해경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래서 '현장에 가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가 보지 않았다'고 했다. 현장에도 가 보지 않고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얘기였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가족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고, 그렇다고 가족들을 보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그들을 감시하며 프락치처럼 행동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유가족들은 "사복경찰이 많았다. 처음에는 다 가족인 줄 알았다. 그런데 행동하는 게 이상했다. 단원고는 2학년 10반까지밖에 없는데 '2학년 12반 누구다' 이런 식으로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찰이었다"라고 말했다.

특조위 권영빈 진상규명소위원장은 "참사 당시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문건에는 경찰에게 '사복 근무'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참사 현장에서 왜 사복을 입고 근무하나. 가족들을 보호하려고 했으면 정복을 입고 경찰이라는 것을 알리는 게 낫지 않은가"라고 했다.

권영빈 소위원장은 "경찰청 내부 문건을 보면 이유가 나온다. 경찰들의 보고 내용은 '가족 대표 13명 중 강성 시위 전담자도 있는 것으로 추정', '(장례식장에서) 사고 관련 정부 비방 발언 등 특이 동향 없음', '강성 단체, 불순 세력과의 연계 차단 위해 예방 정보활동 강화' 이런 것들이다. 이게 대한민국 경찰이다"라며 비판했다.

▲ 특조위가 공개한 경찰 내부 문건. 

4월 20일, 세월호 가족과 경찰의 첫 번째 충돌이 일어났다. 참사 6일째,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해경에 분노해 가족들은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에게 직접 이야기하겠다며 진도대교 쪽으로 걸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을 둘러싸고 가뒀다. 비키라는 말에도, 왜 막느냐는 항의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이후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숙 농성, 1주기 시위, 그리고 지금까지 경찰은 계속해서 세월호 가족들을 막고 가두고 진압했다. 1주기 시위 때는 유가족의 얼굴에 직접 캡사이신을 뿌리고 유가족 십수 명을 연행했다. 지난 6월 유가족들이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시위할 때는 경찰들이 은박지롤을 들고 도망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참고인으로 나온 찬호 아빠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운영위원장은 "경찰은 주기적으로 내 휴대폰 통화 내역 등을 떼 보더라. 지금까지 그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혜숙 씨는 "진도에서 아이들 시신 수습했던 사람, 배에서 아이들 꺼내 준 사람, 가족들 옆에서 함께 울어 주고 하소연을 들어 준 사람들은 모두 민간, 시민이었다.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 때 경찰은 유가족의 얼굴에도 캡사이신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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