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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새로 쓰는 민주주의
마을 축제 같은 집회…깃발·행진 없는 운동
  • 박요셉 기자 (josef@newsnjoy.or.kr)
  • 승인 2016.08.29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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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6시 30분이 되면, 성주 군민들이 성주군청 앞으로 하나둘씩 모인다. 사드 배치 반대 촛불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촛불 문화제는 40여 일째 계속돼 왔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저녁 6시 30분 성주군청 앞. 해가 거의 저문 하늘은 새벽녘처럼 푸르스름하다. 군청 앞 도로로 전조등을 켠 차들이 줄지어 모여든다. 인도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수다를 떨며 청사 앞으로 걸어온다. 곧 시작할 촛불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노인들이 가득한 집회장. 낯설다.

집회에 많이 참석한 것도, 오래 산 것도 아니라 이런 표현을 쓰는 게 다소 민망하지만, 그동안 집회에서 낯선 광경과 마주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종로에서 열린 촛불 집회. 주한미군 장갑차에 목숨을 잃은 고 신효순·심미선 양을 추모하는 집회였다. 미국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기도 했다. 수천 명이 종이컵으로 감싼 초를 들고 집회에 참석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엄숙하고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두 번째는, 2008년 광우병 반대 집회. 서울시청 앞에 커다란 무대가 설치됐다. 보통 집회 때마다 무슨 위원장, 무슨 단체장이 나와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고함을 지르곤 했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다. 그중에는 주부, 중·고등학생도 있었다.

일반인들이 수만 명 청중 앞에서 자유롭게 발언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당시 언론에서도 직접민주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논조로 이를 조명했다. 집회 문화 변화로 많은 사람이 정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리라 생각했다. 더 나은 사회가 될 거라고 기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순진했던 기대 같지만.

낯선 광경은 여기까지다. 2002년이나 2008년이나 앞에 있는 공식 순서가 끝나면 비슷한 모습이 펼쳐쳤다. 각 단체들이 깃발을 올리고 대열을 정리해 청와대를 향해 외친다. "돌격, 앞으로"

   
   
▲ 촛불 문화제는 마치 마을 축제 같다. 노래하고 춤추고 자유롭게 얘기하는 등 성주 군민들이 서로 교제하는 장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7월 13일 이후 성주군청 앞에는 군민들이 매일 같이 모인다. 사드 배치 철회를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서다. 많게는 수천 명, 적게는 수백 명이 자리를 지킨다. 촛불 집회가 40여 일째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일각에서는 성주에서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가 쓰이고 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집회를 했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재밌는 풍경이 많다. 집회를 주관하는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투쟁위)는 누구나 원하면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한다. 유쾌하고 논리 정연하게 사드 배치 철회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래나 악기 연주로 주민들 마음을 달래는 이도 있다.

모임이 끝날 무렵이면 극단 평사단이 앞으로 나와 참가자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율동체조를 한다. 1시간 30분 동안 그렇게 놀다가 집회가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투쟁위 한 간부는 "집회가 마치 마을 축제 같다"고 말한다.

발언자가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면 바로 야유가 쏟아진다. 국방부 강사였다던 한 남성이 사드의 위험성을 강의했다. 어려운 용어, 이론이 쏟아지자 앞에 앉은 할머니들이 아우성친다.

솔직하고 투박한 사람들. 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니, 때론 내부에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해가 풀리면 다시 동지가 된다. 꾸미거나 숨기는 것 없이 날것 그대로 모습으로 서로 부딪혀 가며 하나의 공론을,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바로 이곳 성주 사람들이다.

   
▲ 성주 군민들은 국방부 항의 방문, 새누리당 장례식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드 배치 철회 운동을 해 왔다. 위 사진은 7월 13일 국방부에 항의 방문한 성주 군민들. ⓒ뉴스앤조이 이용필

투쟁위를 구성하는 단체는 이렇다. 양봉협회, 이장 모임인 상록회, 학부모협회, 해병대전우회, 농민회, 청년회 등. '투쟁'이라는 단어만 빼면 성주군민위원회다. 그럼에도, 이슈 선점은 여느 베테랑 단체 못지 않다. 국방부 항의 방문, 새누리당 장례식 퍼포먼스, 908명 단체 삭발식, 2.6km 인간 띠 잇기 등. 대부분 전날 갑자기 나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후다닥 준비한 퍼포먼스란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이제 '사드 배치 결사 반대'는 성주 군민만의 구호가 아니다. 지난 주말에는 전국 50여 개 지역에서 '사드 배치 반대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전 국민이 성주 군민을 따라가고 있다. 사실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성주가 보여 준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될지 괜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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