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이 할머니의 통곡

8월 20일 단원고 기억 교실을 안산교육지청으로 임시 이전하는 날, 그날은 토요일이라 주일예배를 위한 준비로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마음은 단원고 교정에 가 있었다. 제대로 준비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쫓겨나는 듯이 유품을 옮겨야 하는 유족들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니 마음 둘 데가 없었다.

오후 1시쯤 되었을까, 딸에게 차를 태워 달라고 하여 단원고에 갔다. 마침 안홍택 목사님(고기교회)이 계셔서 안 목사님과 4·16희망목공소 아버지들 몇이 함께 대화했다. 그러던 중, 딸이 나에게 와서는 "저기 이세자 장로님이 계신다"며 나무 그늘 한쪽을 가리켰다.

예은이 할머니(이세자 장로)가 통곡을 하고 있었다. 예은이 엄마 박은희 전도사는 통곡하는 어머니를 껴안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드리워 있었다.

충격이었다. 광화문에서도, 거의 매주 오시는 안산 분향소 주일 오후 예배 시간에도 품위를 잃지 않고 절제하시던 분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 넘게 통곡하고 있었다고 한다. 온몸은 땀투성이, 목은 쉬어 있었다. 얼른 뛰어가 손 잡아 드리고, 더워서 아니 그보다도 안타까워서 흘러내리는 내 얼굴의 땀을 닦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곁에서 어떤 점잖게 생긴 젊어 보이는 남성이 "어머니, 생활지도 교육 선생 방에 가서 잠깐이라도 좀 쉬세요" 하면서 권면하고 있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박은희 전도사에게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재정 교육감을 도와서 도교육청에서 일하는 목사님"이라고 하였다. 이 교육감 옆에서 돕는 목사가 여럿이라고 하였다.

그가 또다시 우리에게 오자, 박 전도사가 그에게 "우리 교회 목사님"이라고 나를 소개하였다. 그가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재정 교육감은 뭣하는 사람입니까? 그렇게 해서 도지사 출마한답니까? 대통령 출마해요? 교육감 이전에 목사(성공회 신부) 아닌가?" 하는 좀 심한 말이 튀어나왔다.

이재정 교육감에게 걸었던 기대가 무너진 데서 오는 배신감, 교육감 주변에 목사가 여럿이라면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가 하는 분노 때문이었다. 교육감이 의지를 가지고 행동했다면 얼마든지 교실을 존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듣고 본 바에 의하면, 교육감 스스로가 정치인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유족들과 재학생 부모 간 갈등이 생겼다면 그 갈등 해소를 위해 행동하고, 설득하는 것이 지도자의 의무일 것이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그때마다 "서로 협의를 잘하라"는 식으로 방치하였다.

중립은 없다. 억울한 일을 당한 자, 아파하는 자 편을 드는 것이 정의 아닌가. 유가족과 일부 재학생 부모,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엄정한 중립을 지켜 준다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유족들과 재학생 부모 간 싸움을 시킨 것 아닌가.

예은이 할머니는 이재정 교육감에게 "교육감님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면서 통곡했다. 이재정 교육감이 그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다. 유다 민족이 바사 제국의 간신 하만의 간계로 멸절 위기에 봉착했을 때, 모르드개가 바사의 왕후가 되어 있는 에스더에게 한 말을 2,500년 전 흘러간 말로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들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 4:13-14)

내가 함부로 남을 평가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사회정의를 말하고 약자들의 편에 선다던 운동권 출신들 중 여러 사람이 제도권 높은 자리로 들어가 오히려 민중들에게 절망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예은이 할머니가 통곡하며 되뇌던 말이 내 말문을 콱 막아 버렸다. "목사님, 다른 사람들은 다 '세월호 지겹다. 그만해라' 해도 단원고 교장, 경기도교육감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단원고 교장과 경기도교육감에게 섭섭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지만, 나는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나는 예은이네 교회 목사 아닌가. 그냥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 기억 교실에 있던 아이들 책상과 물품들은 상자에 담겨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임시 이전됐다. 옮겨지기 전 기억 교실 사진. ⓒ뉴스앤조이 구권효

예은이 아빠의 사생결단식

"사생결단의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다"는 예은이 아빠 글을 보는 순간, '어떡하지? 난감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사생결단의 단식을 결심한 우리 교인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다.

나도 세월호에 대해 분노하고 진상 규명을 바라는 마음이 열화와 같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유족들의 그것과 비교해서 만분의 일이라도 될 것인가. 나는 지금 당장 우리 교인 예은이 아빠의 건강과 안녕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이기적인 생각 아닌가.

예은이 아빠는 평소 과묵하여 주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스타일이지만, 누구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정과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할 줄 모르고 얌전하던 예은이 아빠가 이렇게 사생결단의 단식을 결심하게 되기까지 우리 사회의 무개념과 무관심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사생결단을 하는 예은이 아빠와 수많은 엄마·아빠 마음은 지금 타들어 간다. 국민들이 야당 의원을 많이 뽑아 줬는데도 세월호를 위해 뭔가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야당을 보면서 유족들 마음은 더 절망적일 것이다.

목회를 하면서 제일 힘든 것은 아직 어리거나 젊은 나이에 사고와 병으로 죽은 교인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어려운 것은 어려움당하는 교인을 속 시원히 도울 능력이 없어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을 때 겪는 마음의 아픔이다.

예배 시간에 교인들에게 "또다시 단식에 들어간 예은이 아빠를 위해 기도하고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더 관심 가지고 기도하자"고 말하였지만, 이것 또한 자칫 의례적인 것이 될까 봐 마음 한편이 편치 않다.

말로 하는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기도'만 한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오늘 새벽 변함없이 기도하였다. "주님, 예은이 아빠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이 나라 백성이 깨어나게 하셔서 세월호 진상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게 해 주옵소서" 하고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장하고 슬픈 사진

광화문에 들렀던 딸이 사진 한 장을 찍어서 보내 주었다. 예은 할머니와 그 며느리인 예은이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가 피켓 시위를 하는 사진이었다. 며느리는 피켓을 들고 서 있고 시어머니는 앉아서 피켓을 받치고 있다. 연세도 연세지만 오랫동안 서 있을 만큼 건강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호소하려고 앉아서라도 피켓을 받치고 있는 그 모습이 비장하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하였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뒤에서는 예은이 아빠가 죽기 살기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아, 어쩌다 이 나라가 아이를 잃은 아버지는 단식을 하고 그의 늙으신 어머니와 연약한 아내는 섭씨 35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서 단식하고 피케팅할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되었단 말인가.

"손녀를 구하러 간 국가는 구경만 하다 가 버리고, 국회는 특조위 하나 못 지켜서 내 아들은 죽음을 건 단식, 이 늙은 부모 마음 타들어 갑니다."

예은이 할머니가 들고 있는 피켓 내용이다. 그것은 억울하게 쫓겨나서 광야를 헤매다 이제 목이 말라 죽어 가는 아들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면서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울던 하갈의 통곡(창세기 21:16) 아니던가.

▲ 피켓 시위하고 있는 예은 할머니 모습. ⓒ뉴스앤조이 구권효

성경을 읽어 보니 하갈의 통곡을 들으신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부르며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창세기21:17-18) 그리고 하나님이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나님은 하갈의 눈을 밝혀 샘물을 발견케 하셔서 하갈과 그의 아들은 살 길을 얻었다.

버림받은 이방 여인 하갈의 통곡을 외면하지 않으신 하나님이 예은이 할머니의 통곡 소리에 응답하시리라 믿는다. 그 아들의 통곡 소리를 이미 들으셨기 때문이다.

예은이

우리 교회 학생회장 하던 예은이, 
학생부 교사인 나의 딸을 유난히 잘 따르던 예은이, 
"예은이는 보면 볼수록 예쁜 아이"라며 나의 딸이 그렇게 칭찬하던 예은이, 
얌전하면서도 명랑하고 
조용한 것 같으면서도 적극적이었던 예은이가 
"목사니임, 안녕하세요?"
하며 지금 당장이라도 내 뒤에서 큰 소리로 인사하며 뛰어올 것 같다.

시간이 지나도 예은이의 그 상냥한 얼굴이 흐려지지 않는다. 다니던 교회 목사 마음이 이러한데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예은이가 떠난 후 말수가 적어진 자매들 마음은….

"주님, 구조하지 않았으며 지금껏 진상 조사를 방해하기에 급급한 그 악한 놈들을 그냥 두지 마십시오."
"주님, 아직까지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유족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예은이네 교회 목사 아닙니까?"

박인환 / 안산 화정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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