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5월 28일, 구의역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19살 김 군이 사망했다. 시민들은 '개인의 죽음이 아닌 사회적 죽음'이라며 스크린 도어에 추모를 담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한 달 뒤 53개 단체가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을 만들어 사고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8월 25일, 2개월간 조사를 마친 시민대책위가 서울시청에서 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조사단장인 권영국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를 포함한 조사단과 박원순 서울시장, 관계 부처 공무원이 참여했다.

▲ 구의역 사고 시민대책위가 원인과 대책을 알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더 이상 개인 문제가 아니다

구의역 사고가 일어나기 전 유사 사건이 두 차례 발생했다. 성수역, 강남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고치던 직원이 사고를 당한 것. 당시 언론은 2인 1조 업무 원칙을 지키지 않고 홀로 현장에 갔다 변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언론 보도와 달리 권영국 변호사는 현 시스템의 문제점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하게 노동자의 실수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경영 구조 빈틈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말이다. 이를 무시한 채 노동자에게만 원인을 돌리면 실효성 없는 대책이 나온다고 했다.

스크린 도어는 자살·안전 사고를 방지할 목적으로 2009년 8월부터 설치되기 시작했다. 도입 후 고장 접수는 매년 8,000~17,000건에 달했다. 2009년에만 1,943건 접수됐다. 역 평균 고장이 113건~214건 발생한 셈이다.

고장이 빈번한 이유는 뭘까. 시민대책위는 스크린 도어를 도입하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애초 스크린 도어에 관한 설계 기준이 없었다. 기준이 없으니 장비 성능이나 품질도 확인할 수 없다. 설치 공사 낙찰도 최저가를 써낸 기업이 받았다. 권 변호사는 스크린 도어 기준이 최저가를 쓴 시공사에 맡겨진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준공 전 직접 시험 운행하는 '현차 시험'도 거치지 않았다. 오세훈 시장이 준공 일정을 1년 앞당기면서 따로 시험하지 않았다. 열차 문 위치가 스크린 도어와 제대로 맞는지, 문이 잘 열리는지 확인 절차가 없었다. 최근 들어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인천 지하철도 현차 시험이 없었다. 권 변호사는 현차 시험 없는 스크린 도어는 부실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실공사를 숨기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도시철도건설규칙에 따르면, 지하철 출입문과 스크린 도어 간격은 10cm가 넘으면 안 된다. 건설 후 확인해 보니 10cm가 넘었다.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가리기 위해 건설 규칙을 바꿨다.

▲ 조사단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구의역 사고는 노동자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외주화를 한 시스템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비용 절감하려 외주화…안전은 관심 밖

권영국 변호사는 외주 문제도 지적했다. 외주화는 '공공 부문 경영 효율화'를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가 주도했다. 서울메트로가 은성PSD에 외주를 맡겼고, 이 과정에서 필요 인력을 적게 산정했다.

인원이 적으니 강남역 사고 이후 2인 1조 업무를 강화했지만 안전 수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 군이 사망했을 때도 휴무 5명을 제외한 6명이 근무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고장 신고가 6건 정도 접수되었다.

"현장 인력은 줄이고 안전과 거리가 먼 본사 인원은 늘렸다. 2002년 706명에서 2013년 1,118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업 인구를 줄이면서 안전이 취약해졌다."

이명박 정부 때 지하철을 새벽 1시까지 연장해서 운행했다. 연장 운행으로 야간 정비 시간이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었다. 실제 정비 가능한 시간을 계산해 보니 2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정비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니 안전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시민대책위는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책임을 추궁하는 문화는 사고 원인을 은폐하게 만든다고 했다. 원인을 규명하는 쪽으로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장 인력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서울메트로와 도시 철도를 통합할 수도 있고, 외주화 대신 직접 고용하는 방법도 내놨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대책위 발표 후 입을 열었다. 그는 "대중교통에서 1조 원 정도 적자가 생기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안전이 중요하다.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겠다. 무게감을 가지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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