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가 지났다. 식구들은 모두 잠자리로 향하는데, 아버지만 책상을 떠나지 못한다. 언제 주무실 거냐고 물어도 별 대답이 없으시다. 매일 저녁 아버지는 그렇게 다음날 새벽 예배 설교를 준비하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캠퍼스 선교 단체에서 얼마간 간사 생활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전체 모임이 있었는데, 그때 설교를 맡았다. 모임 전날 밤이 되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책상머리를 붙들고 밤을 보냈다.

작년 초 '설교 학교'를 준비하는 기획 회의가 열렸다. 밤마다 설교 준비하느라 불 밝히는 분들에게 어떤 도움을 드리면 좋을까 고심했다. 1년 동안 총 13번 강좌를 열었고, 관심과 참여도가 두루 높았다.

올해는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두 차례 열기로 했다. 1년에 두 번 여는 모임이니 때마다 핵심이 될 만한 주제를 골라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몇 차례 회의 끝에 주제를 정했다. '설교자의 일주일'.

8월 18일(목) 서울영동교회에서 김영봉 목사(와싱톤사귐의교회)와 함께하는 설교 학교를 열었다. 아침, 점심, 저녁 2시간씩 총 3강, 6시간 연속 강의를 진행했다. 전국에서 목회자 200여 명이 모였다.

▲ 목회멘토링사역원(유기성 원장) 주최 '김영봉 목사와 함께하는 설교 학교'가 '설교자의 일주일'이라는 주제로 8월 18일(목) 서울영동교회(정현구 목사)에서 열렸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 이날 설교 학교는 3강으로 나눠 진행됐다. △에토스-설교자와 말씀 사이, △파토스-설교자와 회중 사이, △로고스-설교와 본문 사이.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설교란 무엇인가

'설교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강의를 열었다. 잠시 후 질문을 뒤집어 봤다. '무엇이 설교가 아닌가?'. 강의, 훈화, 에세이, 잔소리, 넋두리, 선전, 선동, 만담 등 설교가 아닌데 설교로 둔갑한 것들을 하나씩 살폈다. 회중에 대한 존중감이 없을 때 설교는 잔소리나 넋두리로 흐르고, 교회의 사역적 목표나 목회자의 야심이 두드러질 때 설교는 선전, 선동으로 왜곡된다고 짚었다. 김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교는 두 가지 기초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전해 받았기에 전해줄 수밖에 없는 소식.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구원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설교는 이 복음의 기초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케리그마입니다. 전하는 자에게 그것은 화급하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메시지이며, 듣는 이에게는 토론과 질문이 아닌 응답과 결단이 요청되는 메시지입니다."

설교의 기초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설교를 잘하려고 하는 것일까? 다시 질문을 뒤집어 봤다. 설교를 잘하려 하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되는 것들에는 뭐가 있을까? 대표적인 이유 세 가지를 꼽았다. 교회 성장을 위해, 회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좋은 설교자로 인정받기 위해 설교를 잘하려는 경우가 빈번하다. 김 목사는 이런 이유로 설교가 오염된다고 말했다. 오염된 설교는 교회를 오염시킨다.

설교자의 정체성에 관한 탐구가 이어졌다. 김 목사는 "설교자들은 '비밀'을 맡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성경은 '비밀'과 '신비'로 가득하다. '하나님나라의 비밀(마13:11)',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고전4:1)', '그리스도의 비밀(엡3:4)', '비밀의 경륜(엡3:9)',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골2:2)'. 이를 깨우치고 전하기 위해서는 '고되게 노력하고(코피아노), 씨름해야(아고니조마이)'(골 1:29)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설교자는 이 비밀을 조금이라도 더 깨닫고 조금이라도 잘 전하기 위해 절치부심 애써야 한다. 설교자의 보람이란 무엇이겠나.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 부질없다는 걸 곧 깨달을 것이다. 설교자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깨우칠 때 기쁨을 느끼고, 그 깨우친 비밀을 교인들에게 전할 때 보람을 느낀다. 설교자는 교인들을 자신의 진리 탐구 과정으로 초청할 때 진정한 보람을 느낀다."

▲ 김영봉 목사는 설교가 두 가지 기초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전해 받아서 전해 줄 수밖에 없는 복음, 다른 하나는 이것이 화급하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메시지라는 사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에토스-설교자와 말씀 사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나오는 세 가지 개념이 강의 본론을 구성했다. 수사학은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 개념을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순으로 정립한다. 말하는 사람 인격과 성품이 제일 먼저 나오고, 발화 상황을 둘러싼 감정이나 정서 교감이 그 뒤를 잇고, 말의 내용은 가장 마지막에 배치됐다. 김영봉 목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꼭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중요도 순서로 이 배열을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영성, 인격, 성품, 인상, 가치관, 생활 습관, 태도, 표정, 몸짓 등의 요소들이 합하여 에토스를 형성한다. 설교에 대한 관심은 자주 로고스에 대한 관심과 동일화되지만 실은 그것은 가장 나중 문제다. 설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설교자의 에토스이며, 좋은 에토스의 형성에는 수십 년이 걸린다. '한 사람이 망가지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한 사람이 형성되는 것은 수십 년 걸린다'는 말도 있다."

"오늘 30대, 40대 사역자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지금 자신의 영성과 인격과 성품이 5년, 10년이 지나도 변함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매일 매일 거룩한 에토스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에토스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설교자의 에토스는 퇴색할 수도 있고 더욱 선명해질 수도 있다. 설교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교자의 준비다"

강의는 원론 접근과 실제 지침이 어우러져 진행됐다. 어떻게 설교자의 거룩한 에토스를 형성해 갈 것인가 하는 실제적인 지침과 권면이 이어졌다. 생각하고 따져보고 질문하는 습관(프로네오), 검토하고 분별하고 시험해 보는 태도(도키마조), 기도, 관조적 생활, 독경, 독서, 영성 생활, 여가, 육체적 건강, 건강한 관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에토스 형성 과정에 대한 지침과 권면을 나눴다.

1강을 마치면서 김영봉 목사는 설교자로서 보내는 자신의 일주일 삶을 나눴다. 시간을 어떻게 나누고, 일을 어떻게 배분하는지, 설교 준비를 위한 일주일 생활 패턴은 어떻게 조율하는지 등 선배 설교자가 보내는 일주일 생활을 면밀히 살필 수 있는 기회였다. 김 목사는 "어떤 것도 정답이나 원칙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습관·취미·지각의 회심을 위해 힘쓰고, 마음의 변화만이 아니라 몸의 변화, 즉 생활 습관이나 돈 씀씀이, 사람 대하는 것 하나하나에 이르는 변화를 추구하면서, 결국 마음과 영혼과 육신이 통합해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영봉 목사는 한 사람의 설교자가 형성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고 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파토스-설교자와 회중 사이

설교자의 감정 사용을 놓고 양극단의 입장이 있다. 하나는 감정에 대한 자극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은 하나님 체험의 가장 중요한 통로라는 것이다. 김 목사는 두 극단 중간에 진리가 있다고 했다. 감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 중 하나이므로 억압할 대상이 아니라 이용할 대상이라는 것, 하지만 감정 과잉은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으므로 이성이 마비될 지경에까지 감정을 과잉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양극단 중간에서 얻을 수 있는 진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복음적 파토스'에 관해 설명했다. 복음의 은혜 안에 늘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내풍기는 독특한 파토스를 가리켜 '복음적 파토스'라고 명명했다. 특징은 다음 7가지로 나타날 수 있는데, 가짓수는 얼마든지 더 많아질 수 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의 설레임, 영원한 것을 믿는 사람의 자신감, 자신의 존재를 아는 사람의 겸손, 진리 안에서의 자유함, 든든한 반석 위에 선 사람의 견고함, 은혜가 만들어 내는 유연함,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간절함이 그것이다.

복음적 파토스 못지않게 회중들과의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김 목사는 토마스 롱(Thmas Long)이 "설교자는 회중석에서 설교단에 나와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설교자는 회중의 한 사람으로서 설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설교자가 회중의 정서를 공감하지 못하면 그 설교는 허공을 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자신의 목회 초기 이야기도 나눴다. 학교에서 가르치다가 설교 사역에 돌입한 처음 몇 해 동안은 자신도 허공을 치는 설교자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회중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2년 넘게 하면서 설교에 변화가 찾아온 것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김영봉 목사는 "감정은 전염되기 마련이다. 설교 단상에 오른 목회자의 표정만 보아도, 첫 마디만 들어도 회중들은 그 설교자의 파토스를 눈치챈다"고 하면서 "설교자가 선포되는 메시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설교자 자신은 얼마나 확신하고 있는가? 이 메시지를 오늘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믿음이 있는가? 이 메시지를 받아들였을 때 회중에게 일어날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가? 김 목사는 이러한 파토스가 설교자 안에 있을 때 설교는 불이 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중간중간 강의 내용에 대한 참석자들 질문이 있었고, 한 토막 강의가 끝나면 성찰과 나눔의 시간도 주어졌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 김영봉 목사는 설교자에게는 복음적 파토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비밀을 아는 설레임, 영원한 것을 믿는 사람의 자신감, 진리 안에서의 자유함, 은혜가 만들어 내는 유연함.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로고스-설교와 본문 사이

마지막 로고스 편에서는 설교자들이 무심코 저지르고 있는 '본문 무시'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종종 설교자들이 본문을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 위한 근거로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본문을 피상적으로 다루기 일쑤다. 설교를 통해 본문이 말하도록 해야 하는데, 본문을 통해 자기 의견을 말하는 행위이다. 터무니없이 본문을 오역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김 목사는 이것을 두고 '본문에 대한 폭행'이라고 했다. 이어서 설교자는 본문에 대한 존경의 태도를 지녀야 하고 자기가 먼저 본문의 메시지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말했다.

본문은 본문이고 설교는 설교라는 생각이 위험한 이유는 뭘까? 설교가 반드시 본문을 담지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김영봉 목사는 설교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를 지닌다고 보지 않았다. 설교도 로고스라고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the) 로고스를 위한 (a) 로고스라고 했다. 설교가 담지하려는 것은 설교 내용 자체라기보다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로고스(The Logos)이다. 설교는 '(the) 로고스'를 위해 존재하고, '(the) 로고스'는 설교를 통해 역사한다. 설교가 본문을 무시한다는 것은 설교 자체만으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다. 설교 본연의 역할을 내팽개치는 꼴이 되고 만다.

이어진 강의에서는 본문을 어떻게 묵상하고 연구할 것인지에 관한 실제적인 제안들을 나누었고, 또 이 모든 과정이 어떻게 설교로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살펴 봤다. 본문 정하기부터 읽기와 묵상과 해석으로 이어지는 연구의 실제, 설교문을 어떻게 구성하고 작성할지에 관한 문제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추려 보는 것으로 공부의 주된 흐름을 잡았다. 더불어 인터넷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표절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표현과 수사의 다양한 방식과 예화나 유머 사용 원칙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관한 간단한 언급들도 나왔다.

▲ 참석자들은 목회자들 설교 횟수, 준비에 들어가는 노력, 일주일 생활 패턴, 사회적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등을 질문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 김영봉 목사는 설교자가 본문을 무시하는 태도가 가진 위험성을 지적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하루 강의를 모두 마치며 김영봉 목사는 "설교는 설교자에게 있어서 무거운 영예"라고 했다. 김영봉 목사가 참석자들과 나눈 마지막 담화를 아래에 싣는다.

"설교는 인간이 언어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사역이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가장 중요한 언어 사건이다. 하지만 언어만이 아니라 전 인격과 영성을 다 동원해야 하는 일이다. 설교자로의 고귀한 부름을 기억하라. 한 눈으로는 성도들의 삶을, 다른 한 눈으로는 하나님나라를 보자. 성장을 목표로 삼지 말고, 성실과 진실을 목표로 삼자. 말씀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현실로써 말씀을 읽는 일을 계속하자. 현실이 제아무리 척박하더라도 우리가 설교의 품위와 품격을 지켜 나가자."

▲ "설교는 설교자에게 있어서 무거운 영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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