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75만 6,574원입니다. 법원이 인정하는 기준은 이보다 높은 264만 4,861원입니다. 지인들은 어느 때보다 먹고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봉급은 오르지 않고, 물가만 뛴다고 아우성입니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신앙만큼 중요한 게 먹고사는 문제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노후를 대비해 적더라도 저축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기 저축과 담쌓고 사는 남자가 있습니다. 최대한 돈을 아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대출을 해 줍니다.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 직접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8월 18일 서울 청파동 <뉴스앤조이> 사무실에서 했습니다. – 기자 주

▲ 김대은 매니저는 의료 폐기물을 처리하는 회사에 다닌다. 한 달에 200만 원을 번다. 네 식구가 살아가기에 빠듯한 수입이다. 돈을 악착같이 아껴서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있다. 2012년 시작한 '희망 씨앗 대출 서비스'는 60회 차를 맞았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여기 한 달에 200만 원을 버는 40대 초반 가장이 있다. 십일조를 뗀 180만 원으로 아내와 고3, 초4 아들과 함께 한 달을 산다. 산다는 표현보다 버틴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그는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힘들게 모은 돈은 통장에 입금하지 않는다.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대출을 해 준다.

'세상을아름답게만드는이야기'(세아이) 김대은 매니저 이야기다. 세아이 직원은 김 매니저 혼자다. 회사 대표를 하늘에 계신 '분'으로 정하고,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김 매니저는 2012년 '희망 씨앗 대출 서비스'(희망 대출)를 시작했다. 현재 60회 차를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55명이 대출을 받았다. 대출해 준 금액은 4,000만 원이 넘는다.

아무래도 혼자 하다 보니 빌려주는 액수는 많지 않다. 적게는 20만 원부터 많게는 100만 원에 이른다. 누군가에게는 얼마 안 되는 돈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는 생명과도 같다. 단돈 30만 원이 없어 목숨을 끊으려 했던 한 여성은 희망 대출을 받고 삶을 이어 가고 있다.

보통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재직 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 소득 내역서 등 여러 서류를 갖춰야 한다. 서류를 준비해도 심사가 통과되지 않으면 돈을 빌릴 수 없다. 그러나 희망 대출은 다르다. 우선 계약서가 없다. 모든 거래는 구두로 진행한다. 대출을 신청한 순서대로 돈을 받을 수 있다. 상환 기한도 대중없다. 죽기 전에 갚겠다고 해도 받아 준다. 정해진 이자도 없다.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했는데…'

김대은 매니저는 전도사 출신이다. 호남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PK(목회자 자녀) 출신인 그는 매사에 열심이었다. 남들에게 뒤처지는 게 싫어, 학업에 열중했다. 방학 때는 용산에서 떼 온 컴퓨터 부품을 팔아 수익을 올렸다. 김 매니저는 남들처럼 전도사를 거쳐 목사가 될 줄 알았다. 한 사건을 겪으면서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큰아이가 4살일 때 동해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바다를 본 아이가 뛰어가더니 양손에 바닷물을 담아 왔다. 아이가 말했다. "아빠, 내 손에 바다가 있어." 웃으며 지나칠 법한 상황에서 김 매니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광대한 바다를 어떻게 손 안에 담을 수 있겠어요. 한 움큼 정도 되는 바닷물을 바다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제 자신이 떠올랐어요. 공부깨나 했던 저는 남들보다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죠. 손 안에 담긴 바닷물을 바다라고 표현하는 아이의 모습이 꼭 저 같았어요. 더 광대하신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절망감이 밀려오면서 강대상에 설 자신감도 사라졌어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교회로 돌아온 김 매니저는 설교 시간 교인들에게 고백했다. 그동안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에서 말씀을 선포했다며 사과했다. 더 이상 설교를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매니저가 입으로 전한 마지막 설교였다. 예배가 끝난 뒤 담임목사가 그를 불렀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는데 그렇게 말하면 나머지 사역자는 뭐가 되냐고 질책했다. 그 길로 전도사를 그만뒀다.

▲ 그동안 도움의 손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 매니저는 후원이나 적지 않은 금액을 제안하는 이들에게 자신처럼 희망 대출을 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작은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면 사회가 밝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왜 입으로만 설교하려고 하니?"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쓸모없는 존재인가'. 기도하던 중 음성이 들렸다. "왜 입으로만 설교하려고 하니?" 김 매니저는 삶으로 설교하기로 했다. 성경을 읽는데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는 말씀이었어요.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새롭게 다가왔어요. 미래가 걱정돼 아등바등 저축하며 살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장 하나님이 부르시면 통장에 있는 돈은 아무 쓸모없죠. 통장에 돈을 쌓아 둘 바에야 차라리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자고 생각했어요. 딱 1,500만 원이 있었는데, 형편이 어려운 사람 3명에게 500만 원씩 나눠 줬죠. '희망 씨앗 대출 서비스'의 비공식 1호 대출이었어요."(웃음)

김대은 매니저 생각에 아내도 적극 지지했다. 대출 서비스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한번은 유명 목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희망 대출을 홍보했는데 관련 문의가 빗발쳤다. 어떻게 하면 사역을 도울 수 있느냐는 이야기보다 "나 좀 도와 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희망 대출은 계약서, 차용증 없이 이뤄지는 거래다. 지금까지 걱정할 만한 일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원금을 갚은 사람도 있고, 자발적으로 이자를 내는 사람도 있다. 소위 말하는 '먹튀'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고 김 매니저는 말했다.

남들이 노후 자금 또는 자녀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저축할 때 김대은 매니저 가족은 대출을 해 주기 위해 돈을 아끼고 모은다. 두 자녀도 아빠가 하는 사역을 적극 지지한다. 이런 유별난 가족을 향해 김 매니저 조카가 언젠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나중에 삼촌이 늙어서 70살 됐는데 남는 게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돈도 안 갚고 먹튀할 수 있잖아요."

"이 질문을 받은 조카에게 네 말이 '맞다'고 이야기해 줬어요. 아마 그런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실패자, 낙오자'라고 말하겠죠. '그렇게 만류했는데 결국 저런 신세가 됐다'고 불쌍하게 바라보겠죠. 그런데 하나님도 과연 똑같이 '실패자, 낙오자'라고 생각하실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이해하고 인정해 주실 거예요. 물론 오늘 밤 당장 하나님이 데려갈 수도 아니면 70살이 넘어도 내버려 둘 수도 있죠. 저는 살아있는 순간 (어려운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역이자, 삶의 자리에서 몸으로 하는 설교예요."

희망 대출 취지에 공감한 한 개척 교회는 세아이 앞으로 500만 원을 기탁했다. 김 매니저는 이 돈을 장신대 신대원에 다시 기탁했다. 가난한 신학생들에게 30만 원씩 대출해 줬다. 기탁금은 김 매니저가 아닌 신대원생들이 관리한다.

김 매니저는 목회자들이 교회 울타리 안에서 '희망 대출'을 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희망 대출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면 사회도 밝아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통장에 몇 천만 원 넣어도 이자는 얼마 안 붙어요.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돈을 모으는 분들이 있는데, 차라리 어려운 이웃들과 나눠 보는 것은 어떨까요. 성경이 말하는 삶을 살아서 좋고, 보람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희망 대출은 신앙과 맞닿아 있다. 노후 자금을 모으는 대신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는 것이야말로 '성경적'이고 '신앙적'이라고 믿는다. 인터뷰 도중 김대은 매니저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최승현

삶의 자리에서 몸으로 설교하다

김대은 매니저가 희망 대출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사역이 있다. 그는 '친환경나눔발전소'를 만들어 환경 운동을 벌이고 있다. 다음 세대인 자녀들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물려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본다. 특히 자칫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는 핵 발전소 줄이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김 매니저는 핵 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태양광발전을 들었다. 전력을 아끼기 위해 '태양광발전' 패널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10년간 모은 십일조로 영등포 쪽방촌에 있는 요셉의원에 패널을 설치했다. 요셉의원은 매달 전기료 30~40만 원을 아낄 수 있게 됐다.

김대은 매니저가 하는 사역은 다양하다. 청년 단체를 지원하는 '퍼스트 스텝', 목회자를 위한 '비전 처치 컨설팅'도 한다. 하는 사역이 많아진 이유는 고민과 맞닿아 있다. 김 매니저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나라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그리고 실천으로 옮긴다. 그는 입으로 설교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매일 '삶의 자리'에서 몸으로 설교한다.

▲ 희망 대출 원리를 보여 주는 도식표. (사진 제공 세상을아름답게만드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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