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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목사 피해자 A에게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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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16 10:31

A의 편지에 대한 J의 답신입니다. J는 영성심리 상담가,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 목회자의 배우자입니다. - 편집자 주

A에게.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 있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그 익숙한 이름으로 불리며 무더운 일상을 살아갈 A. 당신의 이름을 잠시 상상해 봅니다. 생김새와 성품에 걸맞은 이름을 가졌겠지요. 이름 대신 A라 불리고, A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올렸던 당신을 생각하며 저도 제 이름 대신 J라 소개하겠습니다.

이동현 목사 관련 기사에서 A 님 당사자로 시작해 주변인이 I까지 등장했더군요. 그렇다면 저는 그 다음의 반경에 있는 사람 J, 특히 여성입니다. A로부터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 J가 있습니다. 심정적인 방어를 풀면 A의 자리에 가 앉을 수도, 모르쇠로 외면하자면 Z에 갈 수도 있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자 사람입니다. '이동현 목사 피해자 A가 드리는 편지'의 수신자 중 한 사람이고, 이 글은 그 편지에 대한 답장입니다.

'유명 청소년 단체 목사의 두 얼굴'로 시작하는 기사엔 처음부터 관심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목회자의 성범죄 하루 이틀 일인가?' 싶었고, 이어지는 기사의 사건 분석과 방향 제시, 성찰, 회개, 회개의 촉구 등은 안 읽어도 알 것 같았습니다. 미안하지만 피로감이었습니다. 피로감. 이 얼마나 객관적이며, 거리감 있고, 연루되지 않아도 되는 속 편한 말입니까. 반응하지 않을 자유를 득하는 합리화의 근거입니까. 그러나 뉴스 목록에 있는 '이동현 목사 피해자 A가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은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A 님의 글을 읽은 다음 날 <뉴스앤조이>로부터 글을 하나 쓰면 어떻겠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사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고, 이런 일에 객관적일 수 없어서 쓸 수 없다"는 말이 툭 하고 나왔습니다. '피로감'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할 때는 언제고, 객관적일 수 없어서 쓸 수 없다니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전화를 끊고 자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A 님 편지의 시작과 끝입니다.

"보복 의도 없이 2007년 있었던 유럽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저와 같이 외로움 속에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아이가 있는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인터뷰 요청에 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혹시라도 과거에 성직자와 성관계를 한 후 '주의 종을 죄에 빠지게 한 내가 죄인'이라는 수치심과 죄책감과 괴로움에 혼자 고문당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지금 혹시라도 목사 이름과 명예에 해를 끼치면 하나님나라에,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될까 두려워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알아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외롭더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의 아픔을 이해합니다."

긴 세월 외로움 속에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웠던 A의 시간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자기 고통에 매몰되어 더 깊은 외로움에 갇히지 않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마음의 힘을 길렀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아픔이 없어서가 아니라, 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보다 더 아프고 더 외로울 '아이'를 위해 두렵지만 용기를 냈구나 싶었습니다.

아프지만 더 아픈 사람을 위해 손 내미는 사람을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부릅니다. 참된 치유와 정화는 더 약한 자의 손을 잡는 연약한 손의 연대에 있다고 믿기에 A의 용기가 고맙습니다. 마음을 담아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글에서 여러 해결책을 제안하셨습니다. 그것들이 어떻게든 교회와 선교 단체 사역 일선에 실질적으로 녹아들기 바랍니다.

그러나 용기 내어 인터뷰에 응하고, 글로 생각을 밝힌 용기 있는 발설 그 자체가 이미 큰 해결을 위한 행동입니다. 저는 여자라서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를요.

늦은 밤 골목길에서 혼자 걷는 여자를 따라 걸어야 했던 남자의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앞선 여자를 안심시키려 빨리 걸어 앞지르려 했답니다. 빨리 걸을수록 여자의 걸음도 빨라지더니 급기야 가방을 안고 뛰더라고요.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만, 기분 나쁘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계단을 오를 때도 앞에 여성이 불편할까 시간만 된다면 기다렸다 오른다고요. 지하철에서 여성 옆에 앉으면 '쩍벌'이 되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쓴다면서 이런 남자의 심정도 알아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름대로 여자 편인데, 심정적으로 페미니스트인데 싸잡아 늑대로 치부되는 심정을 아느냐면서요. 여자들의 과도한 태도는 같은 편이 되고자 하는 남자까지 잃게 만든다고도 했습니다.

여성을 조수석에 태우지 않는 배려, 사진 찍으며 여자의 어깨를 터치하지 않는 매너 손, 단둘이 있게 되면 문을 살짝 열어 두는 센스. 고맙습니다. 여성의 불리한 입장을 헤아리는 것 자체가 남성으로서 기득권을 일정 정도 포기해야 하는 것임을 압니다. 그러니 더욱 고맙습니다.

헌데 자기편이 되어 주는 사람조차 믿지 못하는 오래된, 아주 오래된 피해자와 약자로서의 여자의 삶이 있습니다. 그 맥락에서 A가 뒤늦게 이 일을 폭로하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짚어 보고 싶습니다. A와 저, 그리고 우리 편이 되어 주는 남자들에게 확인시키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골목길을 앞서 걸어가는 여성이 단지 여자 사람의 몸을 가졌기에 어떤 경험을 끌어안고 평생 살아가는지, 그 여자는 길에서 만난 어떤 여자가 아니라 아내이며 누나이며 여동생이며 엄마일 수 있음을요.

여성의 몸을 가졌다는 것은 그대로 아주 취약한 조건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광고의 배경과 소재가 잘빠진 여성의 몸인 이 시대에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옛날과 지금, 상류계급 여인과 신분이 낮은 여인, 많이 배우고 똑똑한 여자와 그렇지 못한 여자, 나이 많은 여자와 젊은 여자를 막론합니다.

남자들이 사춘기가 되어 남자로서의 자기 몸을 인식하는 것과 달리 많은 여성이 어릴 적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기 몸을 인식합니다. 친척 오빠, 동네 오빠, 교회 오빠. 가까이 있는 친절하며 나쁘지 않은 남자 어른들의 못된 손으로 여자인 자기 몸을 인식합니다. 어리기 때문에 세상을 총체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힘이 없고, 쉽게 도움을 구할 수 없어서 이 폭력적인 경험은 묻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들에게 어린 시절 '성추행의 기억'은 흔한 일입니다. 발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애써 발설한다 해도 도움을 받아야 할 어른에 의해서 다시 묻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 못된 짓이 왜 발설되지 못하는지, 더 큰 어른에 의해 묻히고야 마는지. 이 지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A를 두 번 울리며 올가미에 가둔 가해자의 말, 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이런 식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네 인생은 망한다."
"너 나랑 이래 놓고 이제 시집 어떻게 갈래."
"네가 입을 뻥긋하면 사탄이 그 말을 이용해서 우리 사역을 망친다. 그러니 고통스러운 걸 참아라. 너 한 명만 참고 견디면 성령을 훼방하지 않게 된다."

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릴 적 교회 전도사님의 못된 손에 걸려든 일이 있습니다. 주일마다 재밌는 설교를 해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담임목사의 딸이어서 우리 아버지와 전도사님의 관계, 은근한 갑을 관계를 충분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알려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엄마가 알면 아버지가 알 것이고 아버지가 알면 이 (천하에 못된 손을 가졌으나) 착한 전도사님이 쫓겨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이분의 (생계) 목숨 줄이 우리 아버지 손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의 모든 상황이 두려웠지만 엄마에게 발설했습니다. 온 집안과 교회가 발칵 뒤집히고 난리가 날 줄 알았던 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발설은 제게서 끝나고 엄마는 아버지에게조차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 지금 쓰다 보니 제가 모르는 방식의 은밀한 발설과 조처가 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습니다. 어쨌든 인간의 상처라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대한 기억입니다.

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내게 일어난 이 어마어마한 일을 듣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 이 기억은 제게 무언의 메시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여자아이들이 이런 방식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몸이 되어 갑니다.

'전도사님이 한 일이 큰 잘못은 아닐지 몰라. 원래 남자는 여자아이를 마음대로 만져도 되는 건가 봐. 그게 잘못이라면 내가 화를 내거나 거절했어야지. 내 잘못이네.'

이후로도 동네 오빠, 교회 오빠에게 몇 차례 더 추행을 경험했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의 저편에 묻어 버렸습니다. 여자의 몸에 대한 내면화된 목소리만 남았습니다.

어른이 되고 관련 공부를 하던 중에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왜 내 말을 듣고도 못 들을 것처럼 가만히 있었느냐고요. 엄마는 별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뜬금없는 고백을 했습니다. "부흥강사 ○○○ 목사 알지?" 하면서요.

예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씩 꼭 부흥회를 했습니다. 부흥회 기간 강사 목사님은 우리 집에서 숙식했고, 우리 집 부엌은 끼니마다 온갖 요리를 만드는 집사님, 권사님들로 북적였습니다. 귀빈 대접이었지요. 저녁 집회를 마친 후 엄마는 저녁 간식을 가지고 강사 ○○○ 목사가 기거하던 방에 들어갔고, 그 (신령한) 목사의 (더러운) 손이 엄마의 몸을 더듬었답니다. 아버지에게 얘기하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답니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나 하나 참고 견디면 모처럼 은혜로운 부흥회를, 교회를, 가정을, 부흥강사의 사역을 지켜 내게 된다. 그렇게 참고 덮어 둔 '나 하나'인 여성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때의 고백 이후로 엄마는 밑도 끝도 없이, 앞뒤 설명도 없이 이 얘기를 꺼내곤 합니다. 연세가 많아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져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는 요즘에도 반복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유명한 부흥강사 ○○○ 목사의 못된 손 이야기입니다.

제게는 무력한 아이를 돕지 않은 무지하고 무책임한 엄마가 분명한데, 이 엄마 역시 도움받지 못한 무력한 여자였으니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여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잠재적인 성적 피해자일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한 증언조차 할 수 없도록 길들여집니다. 교회의 여자라면 거기에 성령 훼방죄, 사역자를 시험에 들게 한 죄까지 뒤집어쓰게 되니 이중 삼중의 올가미입니다.

부모에게 학대나 폭력을 당하는 아이는 가해하는 어른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 때문에 가해자의 힘과 권력에 철저하게 굴복하여 자신이 당하는 학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심지어 자기를 학대하는 부모를 좋은 부모로 각색하고 부모의 죄를 자신이 뒤집어쓴다고 합니다. 종교 권력을 가진 목회자나 사역자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한 청소년이나 청년들도 비슷합니다. 영적인 권위를 가진, 존경하는 지도자는 부모 그 이상, 하나님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목사님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옷매무시를 고치고, 가장 좋은 과일을 대접하고, 심방 감사 봉투를 챙기는 저희 엄마가 신령한 부흥강사의 범죄를 범죄로 보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이것은 수천 년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살아온 여성의 몸에 새겨진 흔적이고, 거기에 가부장적인 종교의 굴레까지 뒤집어쓴 여자의 자기 인식입니다.

여성이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대상과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니오'라고 당당히 말하라고 합니다. 수천 년 새겨진 대상으로서의 몸을 지닌 여성이며, 거기에 아담을 유혹하여 실낙원을 유발한 하와의 후예로서 종교적인 굴레까지 뒤집어쓴 교회 여자가 어떻게 주체로 설 수 있겠습니까.

맹목적으로 추앙하던 지도자들에게 이양했던 우리의 힘을 되찾아 올 일입니다. '주의 종'이라 우러르며 이양하고 포기한 우리의 힘을 되돌려 받는 것은 자아 팽창으로 상식적인 판단력마저 잃은 지도자들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추앙이 후광이 되고 후광이 과도한 권력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더럽히는 지도자가 난무하는 시대. '나 하나 참고 덮어 주자'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 내 발로 서자'할 때, 맹목적인 추앙과 허황된 후광 사이 악순환의 고리에 작은 충격이라도 가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강해지고 온전히 치유되는 날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아직 두렵고 여전히 아프지만 그것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며, 상처 입은 치유자입니다. 무력한 피해자로 남아 있지 않고 치유하고 힘을 기른 A가 되어 다행입니다. '일상을 건강하게 사는' 어른이 되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러도록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강 건너 Z로 살아서 미안합니다.

A가 내민 손을 비슷한 고통으로 외로워하고 있는 교회 동생들이 잡을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꽃뱀, 마귀 사탄이라 불리며 흘린 눈물 위에 연거푸 피눈물 흘리는 자매들이 힘을 얻을 것입니다. 발설하고 도움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손 내밀어 주어 고맙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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