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새벽, 최승현 기자가 옥바라지 취재를 나갔다고 보고를 받았다. 갑자기 용역 깡패들이 현장에 들이닥쳤다는 내용이었다. 철거를 반대하는 입주자가 교인들이었고 신학생을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철거 반대 운동에 참여했기에 <뉴스앤조이>도 비중 있게 다룬 이슈였다.

용산 참사 이후 다양한 철거 현장을 보면서 분노가 쌓여 있던 참이다. 철거 현장은 항상 강자와 약자의 구도였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역사적 가치까지 매몰될 위기라는 명분도 있었다. 구도는 명확했고 우리가 기사를 쓰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9시 즈음 도착한 현장 분위기는 차분했다. 새벽의 소동은 이미 과거 일이 된 것처럼. 길 한편에서는 신학생들이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감신, 총신, 한신, 장신… 다양한 신학교 출신이 모였다. 현장에서 하나님나라를 찾겠다고 부르짖는 신학생이 반갑기도 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같이 길바닥에 앉아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던 중에 길을 통과하겠다는 짐차와 시비가 붙었다.

시위 현장에서 길러진 오지랖이 발동해 활동가들과 운전자의 시비를 막느라 고생 좀 했다. 사실 작은 트럭을 운전하는 분들도 생계를 이어 가는 것이 힘들 텐데 안타까웠다. '현장의 정의'는 책상 앞에서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 와중에 언론사들이 취재를 나왔다. 신문사는 물론이고 방송 3사 중 한 곳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길 한가운데 누워 있는 철거민들이 카메라 앵글에 기가 막히게 잡혔다. 시위 현장은 이내 박원순 시장 성토장이 돼 버렸다. 사실 그날 오후 늦게 철거민들과 박원순 시장의 면담이 잡혀 있었다. 면담을 잡아 놓고 바로 그날 새벽 기습 철거를 강행한 것이다. 그러니 박원순 시장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아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박원순 시장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전화를 돌렸다. 그러다가 박원순 시장에게 옥바라지 현장 소식이 들어간 듯했다. 급하게 박 시장이 현장에 나온다는 정황을 파악했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이었는데 다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시장은 벌써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공교롭게도 용역 깡패들이 머무는 재건축 조합 사무실은 '아름다운가게' 매장이었다. 아직도 간판이 붙어 있었다. 박 시장 눈에 그 간판이 들어오지 않을 리 없었다. 거기에다 용역 깡패들은 시장 앞에서도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서울시장이 한가하네"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뱉었다.

이미 화가 난 듯한 박 시장은 저녁 면담이 잡혀 있는 새벽에 기습 철거를 단행한 조합 관계자와 담당 공무원을 상당히 강한 톤으로 질책했다. 그리고 서울시가 손해를 보더라도 이 철거를 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현장에 있던 활동가와 철거민들은 환호했고 눈물을 흘렸다. 이 모든 과정이 드라마 같았다. 정의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뉴스앤조이>도 이 사건 덕분에 많은 조회 수를 올렸다. 우리가 찍은 동영상을 50만 명 이상이 보았고, 기사 클릭 수도 상당했다.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뉴스앤조이>가 취재해야 할 이슈인지에 대해서도 내부 논란이 있었다. 그래도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시간이 흘렀다. 옥바라지 현장은 여전히 갈등 상태에 있었지만 강제 철거하지 않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공언도 있고 해서 지지부진하긴 해도 협상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문제가 되는 구본장 여관이 성매매 장소였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론의 반응은 불을 보듯 뻔했다. 여론의 향방을 걱정하기 전에 나 스스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봐야 하는지 헷갈렸다.

구본장여관이 성매매 현장이었다는 의혹은 현장 활동가들에게 힘 빠지는 소식일 것이다.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그 정보가 사실이라 해도 활동가들의 노고를 헛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철거 현장에서의 투쟁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무자비한 철거 방식에 대한 항거이기도 하다.

박원순 시장이 용역 깡패와 직접 대면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옥바라지 사태를 통해 서울시는 용역 깡패를 확실히 정리하고 가겠다는 입장이다. 박원순 시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용역 깡패 문제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것은 열심히 투쟁한 현장 운동가들이 거둔 성과다.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이 두 질문 사이를 메우는 팽팽한 긴장감 위에서 균형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어떻게 기사를 써야 할지도 고민이 되었다. 옥바라지 사건과 관련해 <뉴스앤조이>는 지금까지 6개의 기사를 내보냈다. 모두 약자(?) 입장에서 쓴 기사였다. 사건 초기, 구본장여관과 관련하여 알박기 의혹이 있다는 정보도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았고 사건 구도를 흔들 정보는 아니라는 판단으로 기사화하지는 않았다. 그때 더 깊이 취재해야 했다는 반성도 하게 된다.

구본장여관이 정말로 성매매 장소였는지는 여전히 의혹 단계에 있다. 당사자는 강하게 부인했고, 경찰도 확인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한 의혹 차원으로 남겨 두기에는 성매매 사이트에 올라온 후기들에 담긴 정황이 워낙 자세하기 때문에 기사를 쓰기로 했고, 당사자와 경찰 입장까지 모두 반영했다.

정의는 무엇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현장 운동가들은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송곳'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오." 옥바라지 현장에서 상처받은 분들이 시시한 약자라는 것이 아니다. 싸움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고민이다.

'현장의 정의'는 책상에 앉아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언론사가 어떤 자세로 사건과 이슈를 바라봐야 하는지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시각은 여전히 약자를 향하고 있다. 옥바라지 현장에서 함께 땀 흘린 한 신학생은 그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해 준 이유는 강도 만난 사람이 의인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고민에 공감한다. 그 고민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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