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명 남짓 중고생들이 한방에 둘러 서 있다. 어제 처음 만난 사이라 그런지 아직 서로를 대하는 게 자연스럽지 못하다. 앞에 선 선생님이 짝을 지어 보라고도 하고 놀이를 제안하기도 하는데, 몸은 굼뜨고 입술은 삐죽하다.

'목회자 가족 수련회' 둘째 날(8월 9일). 첫날부터 마음 문을 활짝 연 부모 방과 달리 자녀들 방에는 아직도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차라리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하면 좋겠는데, 어제와 같이 줄곧 놀고 또 놀자고 하니 힘에 부친 표정이다.

▲ 목회멘토링사역원(원장 유기성 목사) '목회자 가족 수련회' 둘째 날입니다. 자녀들은 오늘도 놉니다. 계속 이렇게 놀아도 될까?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개중에는 입을 꼭 다물고 무표정인 채 잠자코 있는 친구도 보인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또래 친구들이 없었다. 중고등부 상황도 마찬가지다. 여름 성경 학교나 수련회에서 또래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같이한다는 게 낯설기만 하다.

수련회 전체 진행을 맡은 김세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목회자 자녀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경직'이고, 다른 하나는 '말 없음'이다. 여기 온 친구들도 대부분 둘 중 하나, 아니면 둘 모두를 자기 방어기제로 사용할 것이다."

부모들 얼굴이 굳는다. 그렇다고 김 교수의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녀들 얘기를 꺼내자면 할 말이 많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자녀들에게 책임 물을 일도 아닌 탓에 어쩐지 말투에 자신이 없다.

▲ 자녀들 방은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게임이 이렇게 많았나? 다양한 몸 놀이를 함께합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김 교수 인도에 따라 본격적인 목회자 부모 관계 훈련에 들어갔다. 둘씩 짝을 지었다. 한 명이 눈을 감는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 이름을 생각해 낸다. 그러고는 마주 앉은 사람에게 그 떠올린 사람과의 일화를 털어놓는다. 대부분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마주 앉은 사람은 잠자코 듣고만 있는다. 어떤 제스처도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도 삼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만 있는다. 얘기가 다 끝나고 나면 들었던 그 이야기를 그대로 되돌려 말해 준다. 이제 말한 사람이 들을 차례. 자기 상처를 상대방을 통해 듣는다.

주거니 받거니 자기 상처를 말하고 남의 상처를 듣는다. 이때 해석은 금물이다. 풀이하고 가르치고 선도하려는 모든 시도를 멈춘다. 경험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기 감정을 전할 뿐이다. 들은 얘기는 어느 것 하나 덧붙이거나 덜어 내지 않고 그대로 상대방에서 전달한다.

김세준 교수는 이것이 목회자들에게는 생소한 체험일 것이라고 했다. 목회자들일수록 자기 얘기 하는 걸 꺼려 한다. 누구 얘기를 잠자코 듣는 경우도 거의 없다. 말하는 훈련, 경청하는 훈련은 관계 맺기의 기본 과정인데 목회자들이 오히려 무디고 서툴다.

▲ 부모들은 본격적인 관계 맺기 훈련에 들어갔다. 자기 이야기 꺼내기, 남의 이야기 경청하기. 관계 맺기의 첫걸음을 연습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다음으로 바닥에 종이를 여러 장 놓았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들이 적혀 있다. '과대적 자아', '낮은 자존감', '보살핌', '방관/유기', '경직성', '충동성', '희생양', '감정 차단', '과도한 기능', '밀착'. 0세부터 10세까지의 자기 경험과 가장 맞닿아 있는 단어들을 찾아간다. 거기에서 '동아리'를 만난다. 동아리 친구들과 어린 시절 서로의 경험을 나누다가,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 40대 남성들끼리 두 손을 마주 부딪치면서 좋아한다.

이제 자신들이 힘들어하는 유형이 누구인지 밝힌다. 서로 일어서서 상대 동아리를 향해 "너는 어떻고, 나는 어떻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풀리는 게 있는지 손동작이 커지고 목소리 톤도 높아진다. 가려운 곳을 신나게 긁고 났더니 스트레스가 풀린다고들 한다. 나와 상대의 행동 패턴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김 교수는 '자녀들' 이야기를 꺼냈다. 자녀들도 이런 다양한 유형의 성장 배경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이 그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일방향으로 인생 행보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다양한 성장 배경과 그로 인한 기질 차이를 몸으로 부딪치면서 느낀다. 같은 동아리 친구들과 공감대를 넓히고, 나와 다른 이들에게는 내 느낌과 의견을 건넨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부모들은 수련회 둘째 날 관계 맺음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태도를 배웠다. 하나는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끄집어낼 수 있는 자발성, 다른 하나는 여러 성향과 유형을 고려한 다층적이고 유연한 자세다. 이는 자기에게 적용해야 하는 것인 동시에 자녀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갖추어야 하는 태도라는 걸 배웠다.

저녁 순서까지 모두 마쳤는데 부모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자녀들을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 더 얘기를 하자고 모였다. 서로 자기 가정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로서 자녀들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털어놨다. 자녀들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감추지 않고 나눴다. 혼자서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 교수는 혼자가 아닌 함께, 우리의 자녀들을 같이 책임지고 키워 가는 시도가 지금 시대에 더욱 필요하다고 했다. 수련회가 끝나더라도 그런 마음을 공유하는 분들이 모여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목회자 가족 수련회가 전체 순서의 반절을 지났다. 내일(8월 10일)부터는 후반을 맞이한다. 셋째 날 오전에는 목회자 배우자들만을 위한 특별 강좌가 열리고, 오후에는 체육 활동이 있고, 저녁에는 마지막 강의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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