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 강사 정신실 씨가 목회자 아내의 삶을 글로 풀어낸 <나의 성소 싱크대 앞>(죠이북스). '성도도 목회자도 아닌' 사모의 이야기를 읽는 맛이 쏠쏠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중·고등학생 시절 나의 신앙은 뜨거웠다.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았고, 전도도 열심히 했다. 당시 내게 교회에서 담임목사님만큼 중요한 분이 있었다. 바로 사모님이다.

인품과 찬양은 물론 미모도 상당하셨다. 전도한 친구들이 "사모님이 너무 예쁘시다"고 말할 때면 어깨가 저절로 으쓱거렸다. 머리에 피가 마르지 않던 시절, 다른 교회 사모님도 우리 교회 사모님 같은 줄 알았다. 사모님 때문에 목회자 가정은 언제나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목회자 아내에 대한 판타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도 울고, 화내고, 분노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알게 됐다. 그리고 웬만한 목사만큼 힘든 직책(?)이란 것도 함께. 최근 출간된 <나의 성소 싱크대 앞>(죠이북스)은 목회자 아내의 삶을 다루고 있다. 목사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며느리로, 교회 사모로 지내면서 겪은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풀어놓았다.

저자는 <오우 연애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연애를 주옵시고>, <와우 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에니어그램>을 쓴 정신실 씨다. 발달장애 아이들을 돌보는 음악치료사를 거쳐, 현재는 연애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은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담백하고 구수하다. 글을 읽다 보면 입꼬리가 올라갈 때도 있고, 가슴이 뭉클해져 먹먹할 때도 있다. 노쇠해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엄마를 지켜보며 쓴 글을 읽노라면 애잔함이 밀려온다.

"한때 금식 기도와 철야 기도로 인생의 역정을 돌파해 내던 엄마가 배변까지도 간병인에게 내어 맡기곤 묵묵히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슬픔과 두려움 때문에 회피하고만 싶은 병약한 엄마에게 더욱 내 삶을 밀착시켜야겠다. 엄마의 딸인 나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엄마에게 받은 상처, 믿음이란 이름으로 엄마에게 물려받은 바리새적인 신앙과 싸우느라 아픈 시간들을 보냈다. 이제 엄마의 미안한 육체와 화해하며, 나의 과거와도 더 깊이 화해할 시간이다 (중략) 엄마를 뵐 때마다 지혜의 신비 가득한 '미안한 육체'를 만지고 쓰다듬으리라. 아름답지 않아 아름다운 엄마의 몸을." (책 55쪽)

저자는 규정되거나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한 목사의 아내 또는 교회 사모이기 전에 주체적인 한 인간이 되길 원한다.

"사모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고 싶다. 사모가 되기 전에 매주 예배에 거룩한 떨림으로 나가서 어떻게든 자아를 복종시켜 드림으로 일주일을 참된 사람으로 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테다. 사모가 되기 전에, 성적으로 줄 세우고 스펙으로 줄 세우는 시대에 그 사망의 줄에서 내 아이를 꺼내 원 안에 세우고 응원하며 키우는 엄마로 살 테다. 사모가 되기 전에 내 남편이 양복을 입고 타이를 매자마자 목사라는 가면을 쓰고 살도록 방치하지 않고 먼저 '사람이 된 목사'가 되도록 격려하고 감시하며 기도하는 아내로 살 테다. 사모가 되기 전에, 세속 엄마 노릇에 지친 친구들과 만나 질펀한 수다로 울고 웃는 사람 냄새 나는 아줌마가 될 테다. 사모가 되기 전에,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 주시는 '아바 아버지'의 부족함 없는 자녀로 두렴 없이 오늘을 살 테다." (36~37쪽)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그린 글도 깨소금이 쏟아진다. 여기에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듯한 소녀 감성도 묻어난다.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방을 치우러 들어가니 침대 위에 꽃무늬 노트가 놓여 있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는데 순간의 유혹을 극복하고 책상 위에 옮겨 놓기만 했다. 혼자 걷겠노라는 길에 숨겨 놓은 비밀을 함부로 들추면 안 되겠지. 소박한 꽃무늬가 간질간질 사랑스럽다. 아이의 비밀 일기를 훔쳐보는 대신 내 마음속 아이가 썼던 그 낡은 일기장들을 꺼내서 들춰 봐야겠다. 오랜만에 그 유치찬란한 문장들 속 단발머리 여중생을 만나러 가 봐야겠다." (122쪽)

'성도도, 목회자도 아닌 사모들에게'

▲ <나의 성소 싱크대 앞> / 정신실 지음 / 죠이북스 펴냄 / 208쪽 / 1만 5,000원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은 가을, 겨울, 봄, 여름 네 챕터로 이뤄져 있다. 각 에피소드 제목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령 △아버님의 소주잔 △사모이기 전, 인간 △'아직도 가야 할' 엄마의 길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손주가 없다 △밥하는 아내, 신문 보는 아내.

이 책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일상 기록이 아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묵상하고, 바람 앞 촛불 같은 신앙을 고민하며 애쓰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저자는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을 특별히 이런 사람들이 봤으면 한다고 소개한다.

△밥을 매일 차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새댁에게 △소란스러운 아이들 틈에서 가사에 힘쓰는 주부에게 △바깥일하랴 집안일하랴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란 워킹 맘에게 △부쩍 주름이 많아진 부모님을 바라보는 딸에게 △편한 듯 편치 않는 시부모님과 정을 나누는 며느리에게 △성도도 목회자도 아닌 자리에서 신앙하려 힘쓰는 교회 사모님에게 △일상을 영원에 잇대어 사는 이 땅의 모든 아줌마에게.

꼭 주부, 딸, 며느리, 사모, 아줌마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는 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아직 결혼도 안 한 총각 기자도 재미있게 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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