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대는 동성 간 항문 성교를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군형법이 동성애자 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2002년부터 제기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항문 성교를 금지하는 군형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김영란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던 7월 28일. 헌법재판소(헌재)는 상대적으로 이슈가 덜했던 '군형법 92조의 5(추행)'에 대한 판결도 내렸다. "계간(鷄姦)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군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청구 소원에 대해 5:4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계간은 남성 간 항문 성교를 말한다.

군형법 92조는 △강간 △유사 강간 △강제 추행 △준강간·준강제 추행 △추행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추행 조항에서는 동성 군인 간 '항문 성교'를 금지한다. 항문 성교를 금지하는 법이 사실상 동성애자들을 차별하고, 혐오하기 위한 법이라는 주장이 2002년부터 제기되고 있다. 인권 단체들은 군형법이 동성애자의 평등권과 사생활의 자유,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해 왔다. 헌재는 지금까지 세 번 판결을 내렸고, 결과는 같았다. 군형법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

"군대는 특수 영역…동성·이성 차별 위한 법 아냐"

군대는 특수 영역이다. 사회와 법이 다르다. 가령 사회에서는 동성애자끼리 성관계를 해도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하지만 군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강제로 관계를 갖는 것은 물론, 서로 합의하에 관계를 해도 법적 처벌을 면할 수 없다. 추행도 마찬가지다.

합의하에 관계를 해도 처벌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재는 군대 특수성에 중점을 뒀다. 박한철·이정미·김창종·안창호·서기석 헌법재판관은 군형법 92조 5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에 차별적인 요소가 있어도 전투력 보존을 위해서는 해당 조항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심판 대상 조항이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한 군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군대는 동성 사이의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상급자가 하급자를 상대로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방치할 경우 군의 전투력 보존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군대 내 특수한 사정에 따른 것이다. 이성끼리 성적 행위를 한 군인과 비교하여 어떠한 차별 취급이 존재한다 해도 이는 합리적인 이유가 인정된다."

'항문 성교' 외에도 쟁점이 된 부분도 있다. 92조 5항에 나와 있는 '그 밖의 추행'이다. 표현이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해석이 분분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헌재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그 밖의 추행'이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도덕관념에 반하면서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 행위다 (중략)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군인'은 어떠한 행위가 심판 대상 조항의 구성 요건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그 전형적인 사례인 '계간'은 심판 대상 조항에서 '추행'이 무엇인지를 해석할 수 있는 판단 지침이 된다. 법 집행기관이 심판 대상 조항을 자의적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염려도 없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헌재는 논란이 된 조항의 범위는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나 군인 사이의 성적 행위에만 적용된다고 했다. 군인과 민간인의 사적 생활 관계에는 군형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법 조항 애매" 구체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김이수·이진성·강일원·조용호 재판관은 군형법 92조 5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냈다. 조항 의미가 모호하고, 해석이 분분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동성뿐만 아니라 이성이 업무 시간에 음란 행위를 할 경우 △동성이 군대 밖에서 합의하에 음란 행위를 할 경우 △동성 군인과 민간인이 군대 안에서 음란 행위를 할 경우 등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애매모호한 조항과 관련해 대안도 제시했다. 군기 유지를 위해 남성끼리의 추행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면 여성끼리의 추행이나 이성 간의 추행도 금지돼야 한다고 했다. 합의에 의한 음란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게 불가피하다면, '군대 안에서 이뤄지는 행위'만 처벌해도 충분히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에 보수 기독교 및 시민단체는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사진은 7월 13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군형법 유지 촉구를 하며 시위하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번 헌재 판결과 관련해 군형법 찬반 진영의 입장은 엇갈렸다. 군형법 유지를 주장해 온 보수 기독교 및 시민단체는 두 손 들며 환영했다. 이들은 군형법이 폐지되면 "아들이 동성애자가 돼 나올 것이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 "국방력이 약화될 것이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교회언론회는 "군기를 유지시키고, 병사들의 전투력을 지키기 위한 헌재의 판결을 환영한다"고 논평했다.

반면 인권 단체들은 "성소수자 인권을 침해하는 판결을 규탄한다"며 또다시 헌법 소원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헌법 소원 청구 대리인 한가람 변호사는 "심판 대상 조항은 단순히 동성애 처벌법이 아니다.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을 침해하고, 군 인권 향상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는 조항이다. 군대 내 호모포비아를 정당화하는 법률이다. 이 조항이 있는 한 군대 내 성소수자는 '잠재적 범죄자'일 뿐이다. 군대 안에서 정체성이 드러나면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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