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공동체 안에만 있다 보면 떠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가 믿음이 없어서, 또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떠난 사람 중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를 여전히 구주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점차 늘어나는 가나안 교인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은 이해도는 높이고, 높은 교회 울타리는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두 번째 기사입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스무 살까지 교회를 다녔다. 학창 시절에는 삶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느꼈다. 신앙생활이 즐거웠다. 전지전능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부족한 인간을 열렬히 사랑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군에서 전역한 후 성경 공부를 하다가 전도사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못 믿겠네요." 이후 5년이 지났다. 박겸송 씨(28) 이야기다.

그가 10살 무렵, 아버지가 갑자기 스님이 되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결국 출가했다. 불교가 싫었다. 종교가 아버지를 앗아 갔다고 생각했다. 반대급부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 혼자 두 아들을 길러야 하는 상황에서, 교회는 가족의 버팀목이 되었다.

박 씨는 처음 방언하던 날을 기억했다. 대전에서 성령 운동이 뜨겁던 교회를 다녔다. 늘 예배 끝나면 방언 기도를 하고 안수받는 분위기였다. 어머니랑 친한 집사님이 뒤에서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 덕분인지 방언이 터졌다. 세 식구가 함께 둘러앉아 경험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응원했다. 하루는 목사님이 방언 대신 한국말로 하나님께 감사한 점을 기도해 보자고 했다. 감사한 게 많았다. 무엇이 감사한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줄줄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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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스무 살, 타지로 올라왔다. 새로운 교회에 출석했다. 교회 동기 모임에도 나가고 여름에는 수련회도 참석했다. 교회에 대해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많았다. 근사하지 않은 자신을 멋진 사람으로 대해 주었다. 가족의 품과 같은 따뜻함을 느꼈다. 그가 생각하는 교회 공동체의 가장 큰 유익이었다.

"우주의 처음과 끝을 계획한 큰 존재, 신이 있어서 나같이 가난하고 어리고 불쌍한 존재를 사랑하고 믿어 주고 응원해 주고 앞길을 지지해 준다는 게 너무 고마운 일이었어요. 울기도 많이 울고 신앙생활이 즐거웠어요."

성경에 모든 답이 있다?

스무 살 박 씨에게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스님인 아버지를 만났다. 10년 만에 만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 불교가 무엇이기에 아버지를 바꾸었을까 궁금했다. 처음으로 기독교 세계관이 아닌 다른 세계관을 접했다. 허무맹랑하지 않았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만나고, 미디어에서 접하는 기독교인들은 타 종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자기 논리에 빠져 이슬람 사원, 불교 사원을 다니며 '땅 밟기' 하고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자 친구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맺게 되었다. 성관계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일처럼 느껴졌다. 고민이 됐다. 교회에서는 혼전 성관계를 죄악시했기 때문이다. 죄책감이 들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여자 친구와 다시 관계를 맺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교역자에게 고민을 상담했다.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혼전 성관계는 절대 안 되고 평생 1명과만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마음이 흔들렸다.

군대에 가서 개신교, 가톨릭, 불교 종교 행사에 모두 참여해 보면서, 교회에서 말하는 게 정말 진리일까 되짚어 보았다. 전역 후 한 교역자와 성경 공부를 하게 됐다. 성경 속에서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다. 가볍게는 "왜 성경에는 공룡이 안 나와요?"부터 "지구 나이는 46억 년인데 그 모든 시기가 왜 기록되어 있지 않나요?" 등 만날 때마다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교역자는 성경에 기반해 답했다. 성경이 진리인지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성경에서 나오는 답이 별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같이 만나는 시간이 쌓이고 질문이 반복되자 교역자가 귤을 꺼냈다. 귤은 세상인데, 진리인 성경만 알면 이 모든 걸 알 수 있다고 답했다. '정말 그럴까'. 성경으로만 세상을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의 스펙트럼으로 보면 세상의 일부만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닌가란 질문이 생겼다. 어떻게 저렇게 단언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 그에게 종교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기독교인이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 의견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그 자리에서 "저는 이제 못 믿겠네요"라고 이야기했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다. 다른 사람 의견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디 한 곳에 소속되어 있으면 한계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만 깊숙이 파면 세상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요. 그분이 진리니까 다른 이야기는 들을 필요가 없는 거라고 말하죠. 그럴 수도 있어요. 그건 그분들의 세계관이니까. 그러나 세계관에서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세계관도 인정할 수 있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우주의 미물인 인간이 "신은 있다", "없다"고 말하는 것조차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전에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지전능하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넘쳐나는 기아와 테러를 보면서 의심이 든다.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는 그는 유럽에서 일어나는 테러를 보면서 유일신 사상의 종교가 가진 배타성을 깨닫게 됐다.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기에 다른 종교인이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틀린 것으로 취급하게 된다는 말이다. 기독교 안에도 다양한 분파가 있는데 서로 자기가 진리라고 싸운다.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 나만 맞다고 말하는 게 불편했다.

퀴어 축제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보면서는, 교리를 토대로 자기들끼리만의 그룹을 형성하는 교회에 한계를 느꼈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먼저 그들을 혐오하고 틀렸다고 손가락질했다. 어떤 사람들은 더운 날 한복을 입고 북을 치고 부채춤을 추며 통성기도를 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무리 안에만 있으면 그게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자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도 교회 속에 있었다면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일이었다.

▲ 그는 많은 사람을 위해 죽음과 낮아짐을 선택한 기독교 정신을 따르는 사람을 존경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그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가 본래 담고 있는 귀한 가치대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자가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던 시절,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며 여인들의 마음과 삶을 돌보았던 예수의 정신은 본받고 싶다고 했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준 예수가 멋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예수를 정신적 스승이라고 생각해요. 기독교 가치를 정말 좋아해요. 그는 고인물이었던 유대교를 비판하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죽었어요. 약하고 아픈 자, 더러운 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끌어안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 시대에서는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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