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의 시대 - 정혜신의 사람 공부> / 정혜신 지음 / 창비 펴냄 / 152쪽 / 7,000원

신대원에서 공부할 때 목회 신학에 대해 강의를 듣다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무리라 할 수 있는 내용이 있었다.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와 변수를 고려한다면 너무 뜬구름 잡는 듯한 내용일 때가 있었다.

당시 나도 전도사로서 목회 경험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평신도로서 후배를 양육하고 상담하던 시간이 10년을 넘어선 상태였다. 목회에 대한 소명과는 상관없이 제자 훈련과 양육, 목회자의 현장 목회 책도 적잖이 읽었던 상황이었기에, 몇몇 교수의 강의 내용이 지나치게 이론 중심이고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장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면서, 후배를 포함해 다양한 이와 성경 공부 및 상담을 하면서 이론은 각 상황에 맞춰 현장에 적용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수많은 제자 훈련 책을 접하고 읽었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그 이론을 적용할 때는 각 사람의 인격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점점 더 절감하게 되었다. 자주 되새기지만 앙드레 말로가 <인간 조건>이란 소설에서 언급했듯이 아기는 9개월이 지나서 태어나지만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 그조차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제자 훈련이나 상담도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주 달라지거나 새롭게 바뀌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섣부른 이론 접근은 오히려 사람에게 상처와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내가 대하는 이들이 기계가 아니라 숨 쉬는 사람이고 상처 입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목회나 상담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책으로 상담이나 목회를 배워 나가면서 사람에 대한 공부를 놓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목회 관련 책이나 기독교 서적은 아닐지라도, <정혜신의 사람 공부>는 목회자나 일반 성도가 한번쯤 꼭 읽어 볼 만한 책이다.

<공부의 시대 - 정혜신의 사람 공부>는 창비에서 주관한 '공부의 시대' 강연회에서 5명의 강의한 내용을 묶어 낸 책 중 하나로 알고 있다. 5명의 강사는 말 잘하기로(?) 소문난, 사회의 아픈 현실을 간과하지 않는, 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이들이다.

강만길, 김영란, 정혜신, 유시민, 진중권 등은 살아온 환경과 전공, 이야기하는 방법론은 달라도 자기 분야에서 이론을 넘어 자기 색깔과 나름의 실천력을 보여 주는 이들이다. '공부의 시대'라 이름 붙였지만, 이 강의들은 단순히 수능을 위한 공부 방법론이나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 충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그중 하나인 <정혜신의 사람 공부>도 그러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지만 그녀의 책은 이론적 접근을 넘어선다. 서두에 밝히듯, 그녀는 안정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면서 군림할 수 있는 상담실을 벗어나 아픈 이들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과 만나고 위로하며 함께한다.

그녀는 자신이 거하던 둥지에서 벗어남을 통해 오히려 그녀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이론과 방법론이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피상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자신의 서재에서 책을 치우고 소설과 시 같은 것만 남기기까지 한다. 이는 이론이 쓸모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상담이나 치료가 불가능함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특히 쌍용차 해고를 시발점으로 세월호 유가족까지 만나게 되면서 그들을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 이전에 그들의 아픔 깊숙이 들어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정신과 의사나 상담자 이전에 같은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예의이고 태도일 것이다.

욥의 세 친구들마냥 일주일 정도는 같이 울어 주고 아파할 수는 있다. 실제로 대통령도 대국민 연설을 하며 잠깐이나마 눈물을 비추기도 하지 않았는가? 정부도 나름의 열심을 보이는 듯했고 해수부장관도 오랫동안 수염도 깎지 않고 유족들과 팽목항에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욥의 세 친구가 일주일 후 돌변한 것처럼 대통령과 정부, 언론에 호도된 일부 국민은 그 이상을 견디지 못했다. 유가족들을 돈 잔치라도 벌이는 듯 여겼고, 그들을 억지 부리는 무리들로 이해하는 듯했다. 정부를 비롯한 이들은 잠시 감정적 동의는 했을지 모르나 정작 유가족들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사람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다고 말해야 할 듯하다.

진정한 공감대는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나타난다. 지금 내 앞에 아파하는 이들을 누르고 있는 고통의 무게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답을 말하긴 쉽다. 그러나 그 정답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는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는 세월호를 대하는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 교회 공동체에 있는 목회자를 비롯한 영적 리더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문제다. 성도를 이해하지 못하고서 심방하고 상담하는 적잖은 목회자의 실패는 결국 사람을 이해하지 못함 때문이고, 지금 우리 사회가 교회에 돌을 던지는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회자나 성도들 중 신앙 서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이 꽤 될 것이다.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하고는 했지만 하나님은 이 책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추신

1. 정혜신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공저)에 세월호 유가족을 상담하고 돌본 이야기를 담았다. 세월호에 대해 쉽게 비판하는 이들에게 권한다. 이 책을 꼭 읽어 보고 이야기하라.

2. '공부의 시대' 다른 저자들 책도 읽고 싶다. 이론이 아니라 부딪힘으로 살아간 이들이기에.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문양호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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