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나안 성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에 대해 교회가 싫어 고의로 출석하지 않거나 교회 변방에서 은근히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가나안'이라는 아름다운 수사를 덧붙여서 안티적 현상을 확산시켜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심각하게 반성을 해야 한다는 자성론도 있다.

'반기독교적 세력'이란 말은 적반하장

물론 교회를 안 나가는 이유가 모두 같을 수는 없다. 기독교 신앙에 진지한 관심이 없거나 교회 출석에 그다지 흥미가 없어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또한 교회가 정말 정 떨어질 정도로 싫어서 안티가 되어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 매우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들을 굳이 '성도'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지금 정작 문제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경우는 '교회를 사랑하지만'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형제와 자매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구태여 '성도'라는 이름을 접속하여 호칭하지도 않을 것이다.

정재영 교수(실천신대)가 2013년 글로벌리서치와 함께 설문조사한 결과(316명)에 따르면 가나안 성도는 결코 '날라리 신자'가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그들이 과거에 교회를 다닌 기간은 평균적으로 무려 14년이나 되었고, 교회 활동 참여도 역시 90%의 긍정율을 보일 정도로 매우 적극적이었다. 결국 그들 대부분은 교회 내에서 지지고 볶고,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중견 교인들인 것이다.

따라서 가나안 성도에 대해 "이렇게 귀하고 복된 언어(가나안)를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해야 되겠습니까? 오히려 이러한 표현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행위를 정당화시키거나 미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고 한 어느 대형 목사의 주장은 대단히 적반하장이다. 그는 성도들을 떠나게 한 제도권 교회들의 고질적인 잘못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나 사과조차 없이 도리어 그들을 마치 집나간 불효자식처럼 비하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서로 연합해서 교회를 공격해 오는 반기독교적 정서와 세력을 막아야 한다."는 발언이다. 과연 누가 진정으로 반기독교 세력인지 어이가 없다. 교회의 반복적인 불법과 비리와 무능에 상처받고 떠나는 성도들이 반기독교 세력이라는 그 안목은 너무 뻔뻔하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도리어 비난하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오히려 직분을 이용하여 교회의 기업화, 십일조 강요, 헌금 유용, 고액 연봉, 재정 분산 처리, 장부 은닉, 기복신앙, 설교 표절, 패거리 정치, 성직 매매, 부정 선거, 교인 차별, 성추행, 고소 남발, 성직주의, 성장주의, 율법주의, 교회 세습, 그리고 사치한 삶을 추구하는 일부 목회자들이야말로 정말 반기독교적인 세력이며 교회를 약탈하는 무리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안 나간다"

그러므로 가나안 성도 대부분은 교회당을 떠난 것이지 결코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건물 교회'만이 교회가 아니다. 모든 성도는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나라에 속해 있는 그리스도의 지체, 즉 '무형 교회'의 교인인 것이다.

근자에 내가 출석하는 공동체 동료인 임성만 집사는 '가나안 성도'란 용어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하여 많은 공감을 자아냈다. 자신에게는 가나안이란 의미가 '교회를 안 나가'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 밖으로 안 나가'란 것이다. 요즘 매주 설레임으로 주일을 기다린다는 그는 그룹 모임 중에 "왜 나가냐, 나는 안 나간다!"고 발언을 해서 모두 한바탕 박장대소했다.

우리는 왜 웃었을까. 그렇다. '교회론'이 다르다. 이제는 기존의 인식과 사고의 틀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특정 교회당이나 교단에 소속이 안 되어 있을지라도 그것이 꼭 교회 밖에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반대로 대부분의 목회자는 오직 제도권 교회만이 교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만일 제도권 교회가 그토록 절대적이어야 했다면, 중세 가톨릭교회를 뛰쳐나온 현재의 개신교는 아예 애초부터 탄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과거 개신교가 중세 교회에서 이탈한 것은 정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지금 다른 개인이나 공동체가 특정 교단에서 이탈하는 것을 안티적 행위로 비난한다면 그건 전혀 설득력이 없는 종교적 만행일 뿐이다.

사실 건강한 교회를 고의로 떠나는 성도는 거의 없다. 구태여 떠날 이유가 없다. 반면에 어떤 성도가 굳이 교회를 떠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교회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니 떠난다. 특히 교회가 맹신적 사교 집단처럼 타락하면 많이 떠난다. 예수님이 책망하신 것처럼 '강도의 소굴'이 되면 떠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 거기에서 주일마다 제왕적 종교인의 종노릇하며 도적질에 동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작금의 가나안 현상을 구약시대의 '출애굽 사건'이나 중세 시대의 '종교 개혁'에 버금가는 역사적 '교회 탈출' 현상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혹시라도 이 말을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 탈출이란 '교회를 탈출'한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가 탈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가나안 현상이란 단순히 특정 개인이 교회가 싫어서 떠나는 안티적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교회의 지체들이 부패한 종교 집단에서 탈출하는 신앙적 현상으로 해석해야 더 옳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과거 성직자의 권위를 배격했던 영국의 청교도들이 당시 불의한 교권과 압제에 저항하여 참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정든 고향을 버리고 신대륙에 가서 새로운 교회를 시작한 것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다. 아울러 모세가 애굽의 왕궁을 떠나서 자기 백성과 고난을 함께 나누기 위해 광야로 탈출한 것과 유사하다.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탈출기는 사실상 모세의 개인적 탈출 시점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다.

'교회당'은 많은데 '교회'가 적다

그러므로 누가 뭐라고 해도 작금의 가나안 현상은 그 일차적 책임이 제도권 교회에 있다. 건강한 교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 근처에서 바른 교회를 찾기가 매우 힘들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많은 성도는 예수의 이름을 팔아 상업화하고 계급화한 교회에 아주 질리고 질린 상태다. 그래서 참된 기독교 신앙에서 벗어난 일부 중대형 교회들을 다소 심하게 극평하자면, 깨어 있는 성도들은 거의 다 탈출했고 단지 순진한 맹신도들만 남아서 무당 목사와 연합하여 종교적 기복 놀음에 몰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담임목사가 바리새적 제사장이 되고, 동역자인 부목사와 전도사가 부하처럼 취급받고, 장로와 집사가 '평신도'라는 중세적 오명으로 격하되고, 그리고 교인들을 현금인출기로 만드는 교회를 과연 제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 누가 기뻐하겠는가.

가나안 성도는 무교회주의자가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진정 '바른 교회'를 회복하고 싶어한다. 교회는 단순히 교회당 건물에 모인 '종교 집단'이 아니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역으로 예수의 십자가 정신을 상실한 공동체는 제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무슨 거룩한 간판을 걸고 어떤 유창한 설교를 해도 그건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우리는 가나안 현상을 두려운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지금 촛대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배하는 건물 자체가 신성하거나 반복적 예배 행위만으로 무조건 거룩한 교회가 되는 게 아니다.

한국교회는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깨달고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느 성도의 따끔한 지적처럼 여전히 "교회 안이네, 밖이네" 하는 땅 따먹기 수준의 인식으로 이 문제를 다룬다면 그건 크게 실수하는 것이다. 가나안 물결은 교회의 본질이 진정 무엇인지 우리에게 다시 물으며 새로운 도전과 시련과 기회를 동시에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헌물과 제단은 넘치는데 제사가 공허하다. 예배는 성업인데 진리가 절규한다. 성장은 좋아하는데 성숙이 없다. 성공은 좋아하는데 성실이 없다. 십일조는 강조하는데 십자가를 기피한다. 설교는 홍수인데 말씀이 기근이다. 교인은 많은데 제자가 적다. 업자는 많은데 목자가 적다. 교회당은 많은데 교회가 적다. 그리고 목사는 많은데 양들이 울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매순간 성도들이 서 있는 그곳이 바로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성전은 교회 건물 자체가 아니고 우리 자신이다." - 장 칼뱅(Jean Calvin),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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