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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 10년, 교인 90명' 교회가 분립 시도하는 이유
주거 공동체로 출발한 몸된교회…소수·성숙 지향, 교인끼리 전 재산 공유하기도
  • 이용필 기자 (feel2@newsnjoy.or.kr)
  • 승인 2016.07.2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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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된교회는 10년 전 가정 예배로 출발했다. 전도사 부부 두 명이 기쁨으로 드렸던 예배. 지금은 아이, 어른 합쳐 90명이 함께한다. 크기는 작을지 몰라도 몸된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일구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해 나가고 있다. (사진 제공 몸된교회 정동철 전도사)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10년 만에 30배로 성장한 작은 교회가 있다. 전도사 부부 두 명이 기쁨으로 시작한 예배는 강산이 변할 동안 아이·어른 합쳐 90명으로 늘었다.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에 위치한 몸된교회(고명수 목사) 이야기다.

몸된교회는 여러모로 독특하다. 시골에 있지만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설교는 매주 돌아가면서 하고, 지역사회 현안에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다. 아이 포함 90명. 누군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벌써부터 교회를 쪼개기(?) 작업에 들어갔다. 교회가 커지면서 서로를 잘 챙기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가정에서 시작한 교회. 교회 내 주거 공동체를 지향하는 가정들이 같은 아파트에 모여 살기 시작했고, 그중 네 가정은 전 재산을 공유하고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고, 사람이 사람 되고, 교회가 교회 되길' 바라는 몸된교회를 7월 19일 찾았다. 공동체를 시작한 정동철 전도사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 예배로 출발한 교회, 공동체로 거듭나다

교회가 자리한 마을에는 녹색 벼들이 한창 자라고 있다. 논 뒤편으로 아파트 몇 개 동과 모텔,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향하자 나무로 지은 카페가 보인다. 현관 옆에 '카페잇다'라는 간판이 있다. 하나님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다. 카페잇다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몸된교회가 운영한다. 평일에는 카페와 목공소로 쓰고, 주일에는 예배당으로 이용한다.

고즈넉한 카페를 둘러보는데, 갓난아이들을 대동한 30~40대 주부 11명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몸된교회 자매들이다. 모임 이름은 '빨래터'. 평소 카페에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날은 특별히 생일 맞은 자매를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은 선물도 전달했다.

같은 시간. 카페 안쪽에 있는 목공소에서는 수업이 한창이다. 격주 화요일 오전에는 미술 수업을 한다. 정동철 전도사가 교사로 나섰다. 초등학생 4명이 지점토로 고깔 모양을 만들었다. 지점토를 손가락에 두른 다음 가운데 부분을 채우자 모양이 나왔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 내내 밝게 웃었다.

   
▲정동철 전도사가 미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몸된교회 자매들이 참여하는 모임 '빨래터'. 평소 성경 공부를 하면서 교제한다. 생일을 맞은 자매를 위해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사진 아래). ⓒ뉴스앤조이 이용필

몸된교회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울산지방회 소속이다. 침신대학원을 나온 정 전도사가 교회를 담임해 오다, 최근 안수받은 고명수 목사에게 담임직을 넘겼다. 담임이라 해서 특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설교는 목회위원회 소속 위원 5명이 돌아가면서 하고, 교회 행정과 사업은 전 교인이 참여해 논의한다. 2006년 정동철 전도사 부부가 큰딸 진이와 함께 예배하면서 몸된교회는 출발했다. 세 사람의 모임은 이제 90명으로 불었다. 교인 숫자만 놓고 보면 뭐 그리 특별한 게 있을까 싶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독특한 점이 많다.

정 전도사는 교회가 지금처럼 커질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06년 7월 정 전도사가 쓴 글 내용 중 일부다.

"우리가 교회를 시작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졌을 때 주님은 진이를 12시쯤 재워 주셨다. 아이가 자는 동안 우리는 예배를 드렸는데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가 도대체 얼마만이던가?"

검도장, 지인의 별장, 학교 강당을 돌아다니며 예배해 오다 지금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지역사회와도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교육·외국인노동자·원자력 문제 등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교회가 '지역성'을 띠니, 스스로 교회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늘었다.

몸된교회 특징 중 하나는 단순 수평 이동을 지양한다는 것이다. 교회 등록을 원하는 사람은 인터뷰를 거쳐야 한다. 다니던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이유부터 문제 해결을 위해 교회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등을 묻는다. 정 전도사는 "그냥 방문한 분은 매우 환영하는데, 수평 이동을 하고 싶다고 하면 교회 분위기가 심각해진다"며 웃으며 말했다.

"성숙도나 친밀감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성도가 30명을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요. 아이들 이름도 헷갈리고, 누가 주일예배에 빠졌는지 잘 몰라요. 지금보다 작은 규모로 가야 서로의 삶을 깊게 나누고,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어요. 카페 안에 있는 목공소에서 예배하는데 공간도 비좁고요."

최근에는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다. 10주년을 맞아 분립을 계획한다. 대개 분립은 수백 명 이상 되는 교회에서 한다. 도시도 아닌 시골에 자리 잡은 작은 교회가, 이제 막 성장할 타이밍에 뭐가 아쉬워서 분립을 하려는 걸까.

"물론 분립을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어요. 큰 교회 다니다가 오신 분들은 분립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의아해했어요. 지금도 작은데 여기서 뭘 더 쪼개냐는 것이죠. 그래서 최초 몸된교회 모습을 한번 경험해 보자고 제안했어요. 가정마다 무작위로 표를 뽑은 다음 5개 그룹으로 나눴어요. 3개월간 따로 예배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해 보니까 예배 장소·시간·형식이 제각각이더라고요. 돌아가면서 설교하기도 하고, 아니면 한 사람이 전담하기도 하고. 3개월 후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됩니다."

공동체에 'All-in'

   
▲ 교회 특징 중 하나는 설교를 목회위원 5명이 돌아가면서 한다는 것이다. 분립을 추진 중인 교회는 5개 그룹으로 나누고 따로 예배하고 있다. (사진 제공 몸된교회 정동철 전도사)

몸된교회에는 주거 공동체가 있다. 열 가정이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며 서로를 챙기고 보살핀다. 한집에 사는 것도 아닌데 그게 뭐 대수냐 물을 수도 있다.

물론 단순한 친목 모임은 아니다. 지역사회 변화를 이끌고 있다. 열 가정이 중심이 되어 20년간 부재했던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를 만들었다. 불투명한 재정·행정 문제를 정상화시켰다. 공동체 소속 여성들은 부녀회에 참여하여 주민들의 아파트 정치 참여를 유도했다.

인구가 별로 없는 시골 아파트에 교인들이 몰려들게 된 데에는 저렴한 집값도 한몫 작용했다. 이곳에서는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할 돈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현재 19평 아파트 전세 가격은 3,000만 원, 매매가는 5,800만 원 수준이다. 15평짜리 임대 아파트도 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만 5,000원이다.

주거 공동체 중심에는 'All-in 멤버'가 있다. 각 가정의 모든 수입을 한 통장에 넣은 다음 공평하게 나누어 쓴다. 정동철 전도사 가정을 포함 네 가정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원래는 세 가정이었는데, 올해 초 한 가정이 추가로 가입했다.

무작정 재정을 통합하지는 않았다. 운영이 가능한지 알아보고자 3개월간 가상 실험을 했다. 월급을 공용 통장에 넣었다고 가정한 다음 각자 가계부를 작성했다. 재정을 함께 관리해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재정뿐만 아니라 물품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규율도 세밀하게 정했다. 가령 함께 쓰는 자동차가 고장 날 경우 공동체에서 수리비를 부담한다. 유류비는 차량을 사용한 사람이 낸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동절기·하절기에는 아파트 관리비를 받는다. 아이들을 위한 자립 자금도 따로 모으고, 만일을 대비해 보험금도 제공한다.

재정을 통합하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경주로 오기 전 정 전도사의 아내가 암에 걸렸다. 서울을 오가며 치료를 받는 6개월간 정 전도사 가정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공동체 역시 구성원이 겪는 고통은 공감하지만, 구조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에 한계를 느꼈다. 이 일을 계기로 내부에서는 아픔과 고통까지 떠안아 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 공동체는 이 일을 겪고 즐거움만 나누는 데 머물지 말고, 서로의 고통과 아픔까지 챙겨 주기로 했죠. 그 방법으로 (공동체에) '올인'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과적으로 네 가정이 'All-in 멤버'에 동참하고 있는 셈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공동체에 관심이 많으니 제2의 All-in 멤버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 재산을 공유하니 의사 결정 과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모임에 안건이 상정되면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네 번째 가정을 받아들일 때도 3개월이 걸렸다. 의견이 제대로 모아지지 않을 때는 회의를 중단하고 SNS로 소통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카페잇다와 커뮤니티센터 부지도 매입했다.

저무는 성장 패러다임, 성숙으로 극복해야

정동철 전도사가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들어 봤다.

"제가 개척을 앞두고 있을 때, 통계청이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발표했어요. 종교 부문에 있어서 개신교는 10년 전에 비해 소폭 하락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전도했는데도 감소한 것을 보고 꽤 놀랐죠. 그런데 가톨릭은 더 늘었어요. 교회가 성장에만 몰두하고, 개인 영적 성숙과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아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성장 패러다임은 저물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성장보다는 성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2005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개신교인 수는 861만 명으로 나타났다. 1995년보다 15만 명 감소했다. 반면 천주교는 514만 명으로 1995년에 비해 74.4% 성장했다.)

정 전도사는 개신교가 주창하는 성장 패러다임이 끝난 것으로 이해했다. 성장이 아닌 성숙을 고민하던 중 아나뱁티스트를 알게 됐다.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단순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아나뱁티스트들의 삶을 보며 적잖은 충격과 희망을 느꼈다.

소수를 지향하고 성숙을 꿈꾸는 사역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교회가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나뱁티스트들이 구두장이·수선공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것처럼, 정 전도사도 직업을 가졌다. 지금 그는 인테리어 사업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난민 처지가 돼야 비로소 가장 강력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봐요.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신학적으로 소외를 받는 사람들일수록 공동체를 지향하는 성격이 강해요. 잃을 게 없기 때문이죠. 반면 부유하여 내려놓을 게 많은 이들은 공동체로 인해 고민이 많아지겠죠."

   
▲ 정동철 전도사는 교회를 소개하는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쑥스러워했다. 교회와 공동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생각과 추구가 맞아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지 않을까. 이상이 다른 사람이 모여 공동체를 꾸리는 것이 가능할까. 뜻이 맞는 사람들을 어떻게 찾았냐는 질문에 정 전도사는 생각하지 못했던 답을 내놓았다.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있었지만 이상은 따로 정하지 않았어요.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함께 모여 살면 우리 안의 한 성령이 이 세대와 지역에 대한 이상을 알려 주시리라고 믿었죠. 처음에는 막 놀았어요. 옆집 가정 초청해서 같이 놀고먹고.

처음 울산에서 시작했는데 여섯 가정이 모였죠. 자매들은 주중에 자주 모였죠. 남편 흉도 보고(웃음), 아이들도 같이 돌봤어요. 형제들은 저녁에 모여 차 한 잔 하고. 이런 와중에 집값이 폭등해서 지금 지내는 경주로 이주한 것이죠.

이상 없이 모인 공동체는 상당한 비판을 받게 마련이죠. 하지만 저는 역으로 묻고 싶어요. 공동체가 이상을 위해서 연합하고 뭉쳐야 하냐고. 공동체를 결혼에 비유해 볼까요. 남녀가 결혼했는데, '너희 왜 결혼했냐?', '왜 같이 사냐?' 묻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이렇게 묻는 것만큼 부당한 게 없어요. 이상만큼 형제를 사랑하는 게 중요하죠. 그런 사랑하는 공동체에 이상이 부어질 겁니다."

대학에서 만난 IVF 통해 신앙 반전

정동철 전도사는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건 IVF(한국기독학생회)라고 강조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신앙의 반전이 일어났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IVF 활동을 통해 가정에서도 느끼지 못한 형재애와 가족애를 느꼈다.

영감을 준 사건도 있었다. 정 전도사는 1997년 친한 선배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 문제를 정립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해외 선교팀을 인도하던 故 손병수 선교사는 수영을 하던 도중 숨졌다. 선배의 죽음은 허망하게 다가왔다. 당시 선교사들은 선배 죽음을 놓고 "순교다", "익사다" 설왕설래했다.

정 전도사는 손 선교사의 죽음을 지켜보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개인의 죽음을 놓고 이렇다 저렇다 우리가 결정할 일은 아니더라고요. 죽음 자체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선배 흔적을 찾아봤어요. 정말 열심히 살았더라고요. 선교할 나라 언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일기장과 노트에 남아 있었어요. 먹을 거 아껴 가며 사역비로 썼고, 심지어 자신을 추방했던 비밀경찰이 회심하는 사건도 있었어요. 순교냐 익사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가지고 이야기해야죠."

"누군가의 밑거름 된다면 실패해도 괜찮아"

몸된교회는 10년간 큰 변화를 이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 전도사가 크게 신경 쓰는 일은 구성원들이 먹고사는 문제다. 초기에는 카페로 수익을 내 볼까 생각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목공, 교육, 농업을 기반 산업으로 삼는 게 가능한지 실험 중에 있다.

불확실과 두려움 속에서 시작된 사역은 공동체라는 결실을 맺었다. 정 전도사는 구성원들 없이는 지금의 몸된교회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작했을 때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설령 실패한들 누군가에게 밑거름,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실험이 실패해도 상관없어요. 없어질 수도, 다른 데로 갈 수도, 쪼개질 수도 있겠죠. 다만 우리의 실험이 누군가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를 타산지석 삼아 용기를 얻는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한 가지 바라기는, 지금 우리 공동체 모습을 결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해요. 과정 중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내가 생각했던 공동체가 여기 있었네' 하기 전에 '이 공동체는 어떤 난관을 극복하며 10년간 지내 왔을까'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 몸된교회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초등학생 4명이 참여하고 있다. 화요일 오전은 미술 수업을 진행한다. 지점토로 만들기를 하고 있는 아이가 즐거운 듯 활짝 웃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예배 후에는 공동 식사를 한다. 먹거리는 교인들이 직접 만들어서 가져온다. (사진 제공 몸된교회 정동철 전도사)
   
▲ 검도장과 학교 강당에서 예배해 온 교인들은 지금의 카페잇다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 안에 있는 목공소에서 예배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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