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생명은 실체(substance)와 형상(form)으로 조화되어 있다. 즉, 생명은 실체와 형상의 복합체인 것이다. 형상(형식) 없는 실체의 존재는 추상적이고, 실체 없는 형상의 존재는 공허하다.

복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로고스인 말씀이다. 성서를 주석하고, 해석하여 설교자에 의해서 선포(설교)되거나, 작성된 설교문과 설교자의 입, 외치는 소리(kerygma)의 통로를 거쳐서 회중, 청중에게 전달되는 일련의 과정을 구체화된 형상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각양각색의 문화권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선교하려는 교회 목사나 기독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어떤 형상, 즉 캐릭터와 이미지로 선교할 것인가. 이것이 필자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그들에게 최초로 접근하여 복음의 깊은 교리나 신학적인 이론을 설명하기 이전에, 좀 더 쉬운 말로 선교할 수 없을까. 성서에 비쳐진 예수의 캐릭터와 이미지로는 세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째로, 박애주의자(Humanist)요, 둘째는 낭만주의자(Romanticist, 순수 우리말로는 '멋쟁이')이며, 셋째로는 개혁주의자(Reformist)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하에서, 필자는 예수의 실체인 신성(神性)을 전제하고서, 다만 그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인성(人性)적 차원에서 논하려 한다.

2. 본론
1) 박애주의자(Humanist)

▲ 낙타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등에 뫼를 지고 있고, 사막의 긴 여정 속에서 기갈에 허덕일 때, 자기를 순(殉)해서 인간에게 자기 등의 물을 제공한다. 그 이미지는 박애 정신과 인간 생명을 구속하신 예수님 캐릭터와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선하게, 그러면서 후회 없는 짧은 일생을 사셨다. 남을 봉사하는 일을 했으며 가난한 자의 친구로 지냈다. 세리와 창녀 같은 소외당한 민중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셨다. 특별히 소망도 의욕도 없고 억압당하는 약자들과 사셨다.

고독한 자와 눈물 흘리는 자와 함께 울고 그들을 위로했다. 배고픈 자들을 생선과 보리떡으로 먹여 주셨다.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쳐 제정신을 들게 하셨고, 절름발이, 앉은뱅이를 고쳐서 자기 발로 걷게 하시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셨고, 창녀의 마음을 감동시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하셨다. 가난한 과부의 정성을 칭찬하였고, 잘 믿는 로마 장교의 신앙을 가상히 여기셨다.

예수께서는 늘 타자를 위한(for) 삶의 양상을 보이셨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과 함께하시는(with) 삶을 사셨다. 그는 언제나 자기를 증여(giving)하였고, 자신을 바치는(offering) 삶을 사셨다. 남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는 슬픔을 자초한 삶이었다. 당시 격언에서 "시중엔 세리가 있고, 산중에는 산 도적이 있다"고 할 만큼, 세리를 하대했던 때에 삭개오 집에 방문해 그를 구원했다. 남편 5명이나 있었던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을 구원했다.

그러면 예수는 왜 이다지도 하층 구조 속에 사는 별 볼 일 없는 군상들을 폭넓게 사랑한 박애주의자(Humanist)였던가. 유대인들의 메시아 왕통은 가장 이상적인 다윗 왕의 대를 이은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였다. 유대인들은 우리 동양 사상과 같이 족보, 혈통, 가문을 중요시하였다.

그런데 그 메시아 왕통을 이었다고 하는 예수 족보에는 유대인들 사상과는 전연 다른 스캔들 여인들이 기록돼 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에 등장하는 4명의 여인이 모두 스캔들에 휩싸인 자들이었다.

계대 결혼법(繼代結婚法)으로 인한 '다말'이 시아버지와의 성적 스캔들이 있었다. '라합'은 기생이었고, 가나안 여인이었으며 보아스의 어머니였다. 룻은 이방 모압 여인으로서 과부가 되어 시어머니 나오미의 고향에 따라갔다. 보아스의 농장에서 보리 이삭을 주우면서 보아스와 로맨스가 벌어져 룻은 오벳-이새-다윗으로 잇는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다.

마지막 넷째 여인은 '밧세바'로서 우리아의 아내였지만 이스라엘의 흠모하는 다윗 왕, 그는 절시(竊視)의 탐욕에 충동을 받아서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하였다. 그녀 몸에서 낳은 아들이 솔로몬이었다.

이상 네 여인 중 라합(가나안족)과 룻(모압족)은 이방 여인이었고, 다말, 라합, 밧세바는 스캔들이 있는 여인들이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스캔들. 기생은 모든 국가에서 직업적 매춘부로 취급받았다. 특히 유대 사회에서는 대표적 죄인으로 기생을 꼽았다. 모세율법 제6계명과 7계명을 파계한 다윗 왕, 그가 저지른 엄청난 살인, 불륜과 악의 더러운 피가 저류하는 혈통의 후예에서 바로 메시아 예수께서 오셨다.

심리학에서는 한 개체의 생명이 형성되기까지는 부계 계통에서 50여 명, 모계 계통에서 50여 명의 조상에게서 피를 유전(遺傳)받는다고 한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세대(generations),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기까지 13세대(다윗이 중복 계수됨), 바벨론 포로기에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까지 14세대이다. 그럼 전부 41세대인데, 한 세대를 30~33년으로 계산해 보면 햇수로는 1353(41X33)년이 된다. 계산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근접한 수치라 하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인성적인 면에서 볼 때, 이 세상 그 어떤 왕가나 귀족 집안에 비해서도 좋지 못하고 불명예스런 가문의 혈통이란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하겠다. 그 스캔들은 질적(質的)인 면에서도 이 세상 그 어떤 스캔들보다 더 진하고 비도덕적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 족보가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족보를 산헤드린 유대 공회에 보존케 했다. 헤롯도 '에돔'의 피가 섞였다 하여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이라고 하시(下視)당했다. 그래서 헤롯 왕은 족보를 없애 버렸다.

유대인들은 아침 기도에 이방인으로 나지 않은 것, 종이 되지 않은 것, 여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의 족보 속에 이처럼 스캔들이 있는 여인들을 기록함으로 유대인들의 교만을 꺾고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넘은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신 것이다.

하나님께는 남녀 차별 없이, 누구나 동일하게 귀중하다는 말이다. 인간적인 선과 악의 구별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평등성'(平等性)을 의미한다.

유대인은 그 혈통을 자랑하고, 메시아를 유대 민족을 위한 구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 혈통에서 도덕적인 스캔들이 있었고, 그 다윗의 족보에서 메시아가 탄생했다. 이방인의 피가 혼혈되어 있음을 명시하여 이처럼 유대인의 족보를 신성시하는 그 교만을 좌절시키고, 하나님의 사랑과 경륜의 뜻을 표시했다. 이런 메시아의 혈통이기에 우리 같이 못난 사람도 구원을 받게 되었다.

스캔들이 없는 왕가나 귀족 가문에서 메시아가 태어났다면, 신분이 높고 귀공자 집에 태어난 자만 메시아에게 접근할 수 있고 고귀한 자만 구원을 얻지 않았을까. 우리 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은 버림받아 그냥 던져진 자(outcast)이지 않았을까. 고귀한 메시아는 우리를 상대도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혈통에서, 하층 구조에 속하는 군상들의 아픔과 외로움이 담긴 피를 통해 예수께서 오셨기에 그처럼 영혼에서 솟아나오는 인간애를 지닌 박애주의자가 된 것이다.

2) 낭만주의자(Romanticist, 멋쟁이)

▲ 초승달은 만월을 향한 희망적인 것이라면, 그믐달은 무(無)에로 소멸되는 슬픔을 상징한다. 그런 정황 속에서도 태연히 피리를 부는 이미지는 마치 예수님께서 종내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가신 모습을 연상케 한다.

예수는 자연을 사랑하셨다. 그는 시골 마을 나사렛에서 성장하셨다. 그곳은 넓은 들판과 적당한 산기슭이 있는 시골이다. 호수에서 노 젓는 광경, 재배되는 포도나무들, 일출과 석양의 붉은 노을, 밭이나 무화과나무에서 노니는 새들을 보며 성장하셨다.

그는 어떤 학자의 책을 읽거나 연구해서 교훈의 말씀을 하신 게 아니다. 목수의 일손을 놓고 때로는 호젓한 자연과 함께 지내셨다. 예수님의 말씀이 따듯한 것은 자라 온 환경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그의 성품은 나사렛에서 지내실 때 자연을 접촉하고 감상하면서 얻어진 것들이다.

예수는 겨자씨 한 알에서 천국을 보셨으며, 바람을 보면서 성령을 생각하셨다. 우리를 특별히 매료시키는 게 있다. 예수님께서 들에 핀 백합화에 관해 비유를 드실 때 하셨던 말씀이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는 말씀은 아름다움에 대한 묵상 혹은 예술가들에게는 풍부한 영감을 느끼게 한다.

예수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들풀도, 공중 나는 새도 돌보시는데, 하물며 주의 백성들이야 비할 바가 되겠느냐고 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 자연을 대하시는 그의 놀라운 통찰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에는 자연이 지닌 아름다움과 생명에 대한 깊은 묵상이 실려 있었다. 예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만 하시지 않았다. 직접 아름다움을 창조하시길 좋아하셨고, 그 자신 스스로 아름다움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삶을 사셨다.

예수는 탁월한 시인이었을 뿐 아니라, 그분이 하시는 일마다 아름답게 변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보통 예술가는 자기가 받은 감동을 전해 주지만 예수는 직접 감동을 만드시는 분이었다. 자기 존재를 뽐내기 위해 그러신 것이 아니고, 연약하고 고독한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하셨다.

예수는 창조적 에너지를 언제나 영화롭고 아름답게 쓰셨다. 갈릴리 호수를 거니시고 또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시면서 낭만을 즐기셨다. 예수는 목가적인 시인처럼 자연에서 영감을 받는 주요한 동기로 생각하셨다. 그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탕자의 비유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감동적인 하나의 콩트(conte)였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심호흡을 하고서 머리를 들어 창밖을 감격에 찬 심경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예수는 감수성이 아주 예민하셨다.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눈물을 흘리셨고, 민족의 도성인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위선, 로마의 학정하에서 고달픈 삶을 사는 동포를 생각하면서, 장차 임할 도성의 폐허를 예견하면서 우시었다.

때로는 시대를 분별 못 하는 어리석은 군중들은 자기를 임금 삼으려고 것을 아시고, 홀로 산에 가서 기도하셨다. 답답하고 철부지한 제자들의 언행을 생각하면서, 외로움(Loneliness)을 극복하기 위하여 홀로움(Solitude) 속에서 깊은 명상에 잠기기도 하셨다. 이상에서 볼 때 이 얼마나 낭만주의자 같은 모습인가!

자연을 사랑하고, 가련한 슬픈 인생을 보시고 말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을 느끼셨다. 군중과 제자들을 떠나 멀리서 고독을 즐기셨다. 그 고독은 그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있는 시간이었다.

낭만주의가 무엇인가. 서구 18~19세기 초 낭만주의 사상에 대한 언급은 지면상 생략한다. 한국적 해석으로는 '멋'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멋'이란 개념은 무엇인가. 국문학자 이희승 선생은 '흥청거림'과 '필요 이상(비실용적)'이라고 설명했다. 국어사전에는 "차림새, 행동, 생김새 등이 세련되고 아름다움", 또는 "온갖 사물의 진미"라고 풀이했다.

연세대 교수였던 김하태 박사는 "인생의 높이와 깊이"라고 하면서, "인격적인 생활로부터 예술적 생활로 옮겨 가는 것, 또는 습관적인 생활에서 문화적인 생활로 들어가는 것, 타산적인 생활에서 비타산적이면서 창조적인 생활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성서에서 예수님께서는 5리를 가고자 하거든 10리를 동행하라고 말씀하셨다. 5리를 가는 것은 의무의 생활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으며, 나머지 5리를 더 가는 것은 사랑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진정 멋있는 삶을 사셨다.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잃은 한 마리 양을 찾는다는 것,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면서 골고다 석벽 위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속량하신 것. 어찌 멋에 비길 수 있을까.

그는 이름 없는 시골 여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줄곧 시골뜨기로 자라났다. 나이 30세까지 목수 일을 했고 3년 동안 정처 없이 떠도는 전도자 생활을 했다. 그는 한 권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고, 사무실은커녕 사글셋방 한 칸도 마련하지 못했다. 피곤한 다리를 녹이거나 쉴 만한 따스한 가정도 없었다. 이 얼마나 멋쟁이의 삶이 아닌가!

단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 묻히어 하늘나라의 진리를 비유로서 교훈하셨으며, 때로는 고독히 사색과 기도의 삶을 산 낭만주의자이셨다.

3) 개혁주의자(Reformist)

▲ 마당쇠의 이미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다. 더러운 모든 것은 마당쇠에 의해 깨끗이 청소되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불결한 것은 죄다 쓸어버려야 하는 소명을, 우리는 예수께로부터 받았다. 잘 감당하자.

예수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산상수훈 전체를 통하여 그의 교훈은 율법의 불완전성을 언급하시면서, 그 완성의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삶과 구원이 구약의 성취인 것을 말씀하시면서, 유대 율법주의자인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공격하여 율법의 불완전성과 모순을 지적하시면서, 개혁주의자임을 자처하신 것이다. 다시 신약의 다른 부분인 바울서신의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통해 신학적 안목으로 볼 때, 그리스도가 율법의 완성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는 것이라 했다. 우리는 신학적으로 전자를 '의인'(justification)이라고 하고, 후자를 '성화'(sanctification)라고 부른다.

예수께서 산상보훈에서 하신 설교를 주로 윤리적인 측면에서 하신 말씀이라 볼 수 있다면, 바울이 서신에서 언급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에 대한 설명은 신학적인 면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율법의 완성으로서 신앙의 큰 틀을 확정해 주신 것이고, 바울은 그 안에서 조직적으로 내용을 분명하게 했을 뿐이다.

이처럼 예수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위선적인 삶과 유대교의 형식주의에 대한 강력한 반발과 저항으로써 개혁자로 나타난 것이다.

안식일 문제, 이혼 문제, 독신 문제, 부자 청년의 계명 준행과 소유의 문제, 납세에 대한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부활에 대한 사두개인들과의 논쟁, 율법사와의 계율에 대한 논쟁,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교권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 유대주의자들의 외식주의에 대한 비판 등에 관하여 개혁을 말씀하셨다. 기존 유대교 가치관에 대한 도전으로 그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결국 이것들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가뜩이나 로마 학정에 골몰한 동족들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더한층 위선주의와 교권주의로 감시하고 정죄하고 억압했다. 예수의 개혁은 이 상황에서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억압된 백성들에 대한 '한(恨)'을 푸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일부 성전의 장사꾼들과 대제사장과 유착된 악의 고리를 아시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 성전을 숙청하신 것이다. 이로 인해서 대제사장들 권위를 부정한 사유가 되었고, 그들의 돈줄을 틀어막게 되었다. 이는 유대 종교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는 결과도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저들의 죽이기 위한 음모의 대상이 되었다. 불법적인 재판을 통해 사형선고를 받았다. 예수의 개혁은 유대 율법적인 종교와 교권주의에 짓눌려 사는 백성을 위한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개혁이었다. 강대국 사이에서 외세의 침략을 받아 갖은 시련 속에서 살아온 그들의 역사적인 오랜 한(恨)을 풀어 주기 위한 새로운 질서 창조였다. 이것이 예수의 시대적인 소명이었다.

빌라도 재판 당시, 빌라도가 로마 정치 세력에 대한 레지스탕스(Resistance)에 속했던 바라바를 방면하고 예수에게 사형선고 한 것을 보면, 예수가 정치적 레지스탕스는 아니었지만 빌라도 안목에서 유대 군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서운 세력가로 보았다고 하겠다.

어찌하였든 예수는 유대 율법 종교에 대한 개혁과 더불어 동족의 '한'을 풀어 주는 개혁주의자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도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한'이라는 깊은 뿌리가 박혀 있다. '한'은 굶주리고 억울하게 폭압에 시달려 온 사람들의 깊은 슬픔과 고통이 침전(沈澱)되어 축적된 하나의 격정(激情)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한'은 정치적 사회적인 억압과 억제된 양심의 발로로써 일어난다.

진실로 예수는 유대 종교와 로마 정치적 압제에서 고통받는 동족에 대한 '한(恨)의 사제(司祭)'였다. 오늘 목사들은 이 '한의 사제' 임무를 예수께로부터 위임받은 사명 중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한' 많은 우리 겨레에게 복음 전파하는 데 있어서, 이런 예수 캐릭터로 접근해야 한다고 사료된다. 그 '한'을 치유하는 복음 선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결론

이상 필자는 신약성서를 통해 예수가 캐릭터적으로 박애주의자이었고, 낭만주의자였으며, 개혁주의자였다고 피력해 보았다. 그는 인간으로 오시되 비천 비하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래서 인간사회에서 버림을 받는 하층 구조에서 폭을 넓혀 상층 구조로 그의 박애 정신으로 인간들을 그의 품에 안으셨다.

그리고 예수는 자연을 벗 삼아 방랑자처럼 떠돌면서, 때로는 홀로 자연 속에 묻히어 '홀로움'으로 '외로움'을 극복하면서 시를 읊고 이야기를 만들어 천국의 진리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의 생은 진실로 '멋쟁이'의 삶이었다.

그는 율법의 완성으로 오시어 당시 율법주의자들과 교권주의자들의 사상을 혁파하셨다. 민초(民草)들에 대한 외식주의를 강요하는 바리새인들과 종교적 교권주의자들의 감시, 정죄 및 수탈에서, 로마 폭정 아래에서 한 많은 사연을 가진 동족을 위해 역사의 새로운 창조의 장(場)을 여셨다. 그는 꽃다운 청춘 앞에는 야망을 펴고 달려갈 출세 가도가 놓여 있지 않았다. 오히려 모함과 제자들의 배신뿐이었다.

원수들에 의해서도 갖은 멸시와 조롱을 받고서, 사형선고를 받아 종내 '골고다' 석벽 위 두 강도 사이에 끼어서 십자가 형틀에서 한 많은 젊은 죽음을 맞이하셨다. 그가 간 지 2000년 세월 속에서 그는 인류 역사의 중심 인물이시며 당시 시대정신을 뒤엎는 개혁주의자로서 찬연한 삶을 사셨다.

앙견 / 山下연구소 소장, 목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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