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트럼프는 7월 19일(현지 시간)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과반에게 표를 받아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말 많고 탈 많던 트럼프가 공식적으로 미국 대선 후보에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트럼프는 특이한 이력, 혐오 발언, 막말 등으로 경선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가 남긴 몇 가지 망언을 소개하면 이렇다. 유세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향해 "저 뒤에 자리 잡은 놈들은 완전 쓰레기"라고 하는가 하면, 모유 수유 휴식 시간을 달라는 변호사에게 "모유 수유는 역겹고 구역질 나고 끔찍하다"고 했다. 테러리스트를 막기 위해 "모든 무슬림의 입국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조차 트럼프 발언에 불쾌감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선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그를 반대한다고 발표한 기독교 지도자도 더러 눈에 띄었다. 미국 남침례교 산하 윤리종교자유위원회 러셀 무어(Russell Moore) 위원장, 유명 작가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 목사도 그들 중 한 명이다.

▲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시에서 공화당 전당대회가 진행 중이다. 전당대회 둘째날인 7월 19일(현지 시간), 트럼프는 대의원 과반에게 표를 받아 공식적으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 <LA타임스> 기사 갈무리)

이런 이력 때문인지, 축제 자리나 마찬가지인 공화당 전당대회도 시작 전부터 삐걱댔다. 아버지와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이 모두 불참을 선언했다. 공화당 직전 대선 후보였던 미트 롬니(Mitt Romney)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당대회가 열리는 장소 밖에서는 트럼프를 반대하는 시위대가 목소리를 높였다.

기독교 세력 껴안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

미국에서 대선 후보를 지명하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전당대회를 열어 공식적으로 대선 후보를 지명한다. 대선 후보는 이를 받아들이고 당의 강령과 정책을 지키겠다고 선언한다. 공화당도 전당대회 첫째날인 7월 18일 강령(platform)을 발표했다. 트럼프가 기독교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기 때문인지 새롭게 선보인 강령에는 기독교인 입맛에 맞는 사안이 다수 포함됐다.

미국에서 교회는 재산세·취득세·등록세를 면제받는 비과세 기관이다. 조건은 단 한 가지, '정치 활동 금지'다. 1954년 제정된 '존슨법(Johnson Amendment)'은 목회자가 강단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 면세 혜택을 박탈할 수 있도록 했다.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강령을 발표했는데, 존슨법 폐지가 언급됐다.

친동성애 성향을 보이는 미국 사회에 브레이크를 걸려는 시도도 있다. 강령은 "모든 아이들은 결혼한 엄마와 아빠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성애자 전환 치료'를 암시한 항목도 있다. 미성년 자녀에게 알맞은 치료 요법을 제공할 부모의 권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성년 동성애자의 성적 지향을 강제로 바꿀 수 없게 한 몇몇 주를 겨냥한 것이다.

종교 자유를 더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동성 결혼이 미국 전역에서 합법화된 이후,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애자에게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각 주 정부는 이들이 '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며 벌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공화당은 서비스 제공자의 종교 자유를 강화하겠다고 강령에서 밝혔다.

▲ 도널드 트럼프는 막말로 유명하다. 무슬림과 멕시칸의 이민을 금지해야 한다는가 하면 유세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 "쓰레기"라고도 했다.

백인 복음주의자 78% 트럼프 지지

공화당 후보를 놓고 보수 기독교계가 갈라진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위기의식 때문인지 트럼프는 더 적극적으로 기독교인의 지지를 구했다. 그 결과 리버티대학 제리 폴웰 주니어 총장을 비롯, 흔히 '복음주의권'으로 불리는 남부 교계 인사들이 그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트럼프와 함께 경선에 나섰던 독실한 기독교인 벤 카슨(Ben Carson), 마이크 허커비(Mike Huckabee)도 합류했다.

트럼프가 꾸준히 노력한 덕분인지 백인 기독교계는 여전히 공화당을 지지한다. 미국 여론조사 전문 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7월 13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을 백인 '복음주의자'라고 규정한 사람 중 78%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총기 규제, 테러 방어, 경제 활성화, 이민 정책, 의료보험 개정 등 거의 모든 이슈에서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보다 트럼프를 지지했다. 특히 전미총기협회(NRA) 총회를 방문한 트럼프와 총기 사건 피 해자를 만난 힐러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확연한 온도 차가 있었다.

백인 복음주의자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해서 힐러리 지지율이 크게 영향받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흑인 기독교인이 힐러리를 지지하는 비율은 백인 기독교인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비율보다 더 높다. 흑인 기독교인 89%는 힐러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앞으로도 기독교 세력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보수 기독교인 입맛에 맞는 공약으로 기독교를 공략할 여지가 있다. 그동안 기독교계는 미국 대통령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6년 대선에서 미국 기독교계가 첫 여성 대통령과 억만장자 대통령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하게 될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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