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과 칼> / 정욱식 지음 / 유리창 펴냄 / 272쪽 / 1만 4,000원

정욱식의 <말과 칼>(유리창)은 일테면 이런 내용이다.

한 달 후 한반도고등학교에서 회장 선거가 있다. 회장이 될 사람에게는 만만치 않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학교에는 세력화된 주먹 집단이 있다. 7년 동안 학교를 괴롭혀 왔던 문제다. 이 주먹 집단이 최근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는데 그 위력이 대단해 흠칫 사용하기라도 하면 학교는 물론 학교 주변까지 초토화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회장 후보는 주먹 세력이 무섭긴 하지만 대화로 학교 평화를 유지하겠다고 공약한다. 다른 후보는 그런 무기를 가진 사람이 있으니 싸워 이기겠다고 공약한다(회장이 되면 그런 막강한 무기를 만들면 된다고 공언하는 지지자도 있다). 그런데 두 후보 다 자신들의 공약을 지키는 게 만만치 않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한 방법은 주먹 집단은 물론 그와 관련된 주변 사람들 이해관계가 얽혀 쉽게 합의를 끌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고, 연합해 싸우거나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대항하는 방법은 학교는 물론 주변 사람들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가 국민 선택권? 이미 빼앗겼다

눈치챘겠지만, 한반도고등학교는 우리나라다. 회장 선거는 2017년 대통령 선거다. 대화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주장은 야당이 한다.

미국의 핵우산에 힘입어, 그들의 강력한 무기를 들여와[전술 핵 배치나 미사일 방어 체계 사드(THAAD) 배치 등] 힘의 균형을 유지해 전쟁을 막겠다는 건 여당의 주장이다(더불어민주당은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책에서는 그렇다).

이들을 선택하는 것은 국민이다. 국민이 어떤 대통령을 선택하느냐에 한반도 미래가 달려 있다. 정욱식의 <말과 칼>은 2017년 대선에서 우리 국민의 선택이 앞으로 대한민국을 '웰조선'으로 만들지, '헬조선'으로 만들지를 결정할 것이라는 설정 아래 두 개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른바 소셜픽션(social fiction)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바람을 많이 타는 데 위치하고 있다. 그간 정부는 사드를 들여올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 저자는 이를 '트로이 목마'에 비유한다. 트로이 목마를 들여놓거나 독자적 핵무장을 하면 한반도가 어떻게 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헬조선'으로 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설 형식을 빌려 쓴 이 글은 사드 배치 결정 전에 완성했다. 지난 8일 정부는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전격 발표하고, 곧 이어 성주를 사드 배치 장소로 선정했다. 성주 사람들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드 배치 발표가 있자 이를 반대해 오던 중국은 즉각 한미 대사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다. 러시아 또한 "이 행보는 러시아의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며 분명한 반대 뜻을 표명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가 자신들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직접적으로 훼손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일본은 즉각 찬성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은 정욱식의 논법으로 말하면 2017년 대선 전에 벌써 '헬조선'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니까 대선으로 선택할 국민의 선택권마저 박근혜 정부가 박탈했다고 할 수 있다.

책은 북핵과 사드의 적대적 동반 성장을 막을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차기 대통령 선거로 '헬조선'이 아닌 '웰조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면서. 이 운명적 선택을 지켜보는 게 꽤나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실제 박근혜 정권이 사드 배치를 선택해 국민은 닭 쫓던 개가 되고 말았다. 책에서 그린 것처럼 차기 대통령 선거로 국민이 사드를 배치할지 아닐지를 결정할 새도 없이 '헬조선'으로 들어선 것이다.

책은 '헬조선' 편에서 북핵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방법(칼)의 전개를, '웰조선' 편에서 그럼에도 대화(말)에 나서는 정부를 보여 준다. 여당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강력한 대응을 하게 되어 '헬조선'으로, 야당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대화를 통한 대응으로 '웰조선'이 전개될 것이라는 단순 논리는 좀 수긍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어떤 걸 선택하느냐가 한반도 평화를 좌우한다는 전제는 타당해 보였다.

차기가 아니라 현 정부가 위기

저자 정욱식은 군사·안보,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 전문가로 평화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통일 관련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전문 시민기자이기도 하다. 전문가 눈으로 보는 남북문제 해법은 탁월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으로 남북은 화해 무드를 조성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모든 것이 단절되고 북한은 핵보유국을 자처하고 있다.

"선거판인데 무슨 얘기는 못 하겠나?"

책에서 청와대 부속실 간부와 새누리당 대선전략기획본부장 사이에서 오간 대화다. 우리의 정치사에서 이런 식의 통치는 신물 나도록 겪었다. 통치가 국가의 안보나 북핵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 오직 대선에서 이기기 위한(혹은 정권을 유지하게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핵무장과 사드 배치도 그런 논리다.

"들어 보게. 사드와 핵무장, 이걸 거의 동시에 꺼내면 다른 이슈들은 거의 다 빨려 들어오게 될 거야. 확실한 '안보 프레임'이지.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도 60%를 넘어. 북한·중국·러시아뿐 아니라 미국 하고 일본 애들도 뭐라고 하겠지. 그게 또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거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이야. 헬조선 어쩌고 그래도 다른 나라 애들이 뭐라 그러는 건 못 참거든." - '헬조선편' (12, 13쪽)

'안보 프레임'을 밀고 나가야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대선도 치르기 전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책의 논리로 말하면 현 정부의 '안보 프레임'은 노림수가 있어 보인다. 30%대 지지도와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무언가 행동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극단의 선택, 결국 사드 배치가 그것이다. 차기가 문제가 아니라 현 정부가 위기라는 인식이 깔려 있지 싶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벌써 사드 배치라는 칼을 치켜들었을까. '통일이 대박'이라면서 '소박'도 안 되는 결정을 하고 말았다. 통일을 말하기 앞서 국내 정치가 시급했던 모양이다. 남쪽이 똘똘 뭉쳐도 힘들 한반도 평화는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 남남 갈등을 더욱 부추긴 모양새다.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박근혜 정부의 고육지책이 읽혀 섬뜩하다.

"그래서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제가 방금 얘기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추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하부 항목으로 6자 회담 및 4자 회담 시작과 함께 남북대화도 하자, 그래서 우선 확성기부터 같이 끄고 개성공단 정상화도 논의하자, 이렇게 발표하자는 것입니다." - '웰조선편' (13쪽)

책에서 '웰조선'을 향하여 대화를 선택한 대선 출마자의 발언이다. 이미 사드 배치를 결정한 박근혜 정권하에서 이 말이 그렇게 공허하게 들릴 수가 없다. 국민의 선택권마저 강탈당한 것은 아닌가 하여 허탈하다.

일부에서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사드가 실전 배치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대선 후가 된다면 희망이 있는 걸까, 실낱 같은 희망을 품어 본다.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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