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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엑스-게이(Ex-Gay)'다
[인터뷰] 춘천 한마음교회 김송이 씨…재미교포가 동성애 때문에 한국 찾기까지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6.07.16 10:15

   
▲ 춘천 한마음교회에서 '탈동성애자' 김송이 씨를 만났다. 김송이 씨는 교포 2세다. 미국을 떠나 춘천에 자리 잡고 영어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춘천 한마음교회(김성로 목사)는 교인들 간증으로 유명하다. 기독교인이 모이는 단체 채팅방에 잊을 만하면 한번씩 올라오는 간증 영상들. 사연도 다양하다. 교회를 떠났다 돌아온 사람, 죽음의 문턱에서 평화를 찾은 사람,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녔지만 춘천한마음교회에서 새롭게 거듭난 사람 등이다.

그중 동성애자로 살다 지금은 벗어났다고 간증한 사람은 네 명이다. 이미 기사로 소개한 강순화 씨에 이어 또 다른 간증자 김송이 씨를 만났다. 김송이 씨는 재미교포 2세다. 18분 남짓한 간증 동영상을 보며 미국에서 나고 자란 김 씨가 어떻게 탈동성애자(Ex-Gay)가 됐다고 간증하기에 이르렀는지 궁금했다.

인터뷰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춘천 한마음교회에서 진행됐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질문지를 작성해 김송이 씨에게 보냈다. 김 씨는 한국어가 부자연스러운 관계로 인터뷰 대부분은 영어로 진행됐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늦게 시작한 골프로 두각 나타낸 골프 유망주

- 간증 동영상에 골프 유망주로 많이 나온다. 그때 이야기 좀 자세히 해 달라.

박세리 선수처럼 골프를 늦게 시작했다. 한국 나이로 15살에 시작했는데 친구들에 비해 많이 늦은 편이었다. 아빠가 축구선수 출신이어서 운동신경이 있었고 체격도 운동하기에 알맞았다. 늦게 시작했지만 아빠가 한국 스타일로 연습을 많이 시켰고 나도 노력을 많이 했다. 짧은 기간 안에 상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오리건 주 고등학교 대회에서 세 차례 우승했고, 전국 시합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둬 듀크대학교(Duke University)에 입학할 수 있었다.

- 듀크대는 스포츠로 유명한 학교다. 간증 동영상 보면 동성애 때문에 시합 성적이 떨어졌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아마 내가 동성에게 끌린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였을 것이다. 그 감정이 정상이 아니라고 느꼈다. 동영상에 친구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전부터 마음이 힘들었다.

- 동영상에서 친구에게 동성을 좋아한다고 고백하자 친구는 "그건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나온다. 당시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쌓여 있던 감정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자라면서 '바람직한 나'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친구 말을 듣는 순간 '남들이 내 모습을 보기에 내가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시 안도했다. 하지만 일시적일 뿐이었다. 다시 동성애에 죄책감을 느끼는 나로 돌아왔다.

   
▲ 김송이 씨는 골프 유망주였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늦게 골프를 시작했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고등학교 때는 주 우승을 세 차례나 차지하기도 했다. (사진 제공 김송이)

- 동영상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다. 동영상에서 "동성에게 감정이 끌려 하나님과 약속한 선을 넘었다"고 말했다. 이성애자도 '순결 서약'을 한다. 순결을 지키지 못한 이유를 왜 '동성애 때문'이라고 표현했나.

모태신앙으로 자랐기 때문에 그랬다. 굳이 남녀 관계에 한정 짓지 않더라도 내가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힘든 것이지 동성애 때문에 순결을 지키지 못해 힘든 것이 아니었다. 만약 남자와 관계였어도 순결을 지키지 못했으면 똑같이 생각했을 거다.

- 영상에서 "나는 왜 동성애자가 돼서 이런 삶을 사는가"라는 말을 해서 물어본 것이다.

그건 맞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동성애와 관련된 생각·감정·느낌에 사로잡혀 살았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동성애 문제까지 포함해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 같은 느낌이었다. 동성애 문제만 아니면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동성애 때문에 꼭 이런 삶을 살아야겠나 하는 생각이 든 거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이었지만 그래서 더 힘들었다

-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이다. 몇 년 전과 비교해도 미국 사회는 친동성애로 가고 있다. 본인이 자라 온 환경과 사회와의 환경 차이를 느낀 적 있나.

있다. 내가 자라 온 환경에서는 부모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게 내 모습의 일부였다. 살면서 내가 지켜야겠다는 기준이 있었고 그 기준과 환경은 차이가 있었다. 미국은 사실 명백하게 친동성애 국가가 됐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나머지 미국 사회가 생각하는 것 사이에 큰 갭이 생기기 시작했다.

- 송이 씨는 한국인과 미국인, 두 가지 정체성을 갖고 있다. 둘 중 어느 부분이 삶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한국 핏줄이라는 것과 내가 미국에서 자랐다는 것 둘 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태신앙이었고 무엇보다 하나님 기준대로 살고 싶었다. 하나님의 기준을 택했기 때문에 갭이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이 계속 친동성애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 기준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 한인 교회에서 자랐다고 했다. 혹시 청소년부를 다니며 동성애에 관한 설교를 들은 적 있나.

전혀 없다.

   
▲ 미국에서 나고 자란 교포였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김송이 씨를 더 힘들게 했다. 미국은 김 씨의 바람과 반대로 친동성애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한마음교회)

- 미국에는 성 소수자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교회에서 전혀 듣지 않고 자랐는데 '이 감정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이 든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하나님이 남자를 창조하셨을 떄 여자도 창조하셨다. 자연을 보거나 사회 전반적으로 보면 '커플'이라고 할 때 남자와 여자를 떠올린다. 누군가가 나에게 '동성애는 죄'라고 말해 줄 필요가 없었다. 이미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떠오르니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소년과 소녀를 배우고, 소년이 소녀를 좋아한다 혹은 소녀가 소년을 좋아한다고 배우지 않았나. 어렸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 엄마에게 본인의 성 정체성을 털어놓았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동성애라는 행위 외에도 거짓말하는 죄를 하나 더 짓는 게 힘들었다. 부모님을 속이고 나를 포장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내가 거짓말하던 부분을 없애야 할 것 같아 엄마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있게 "엄마, 나 게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어 '양성애자'라고 했다.

내 말을 들으신 엄마는 우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엄마를 믿고 말해 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기도하면서 하나님 뜻을 찾아보자고 하셨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나의 커밍아웃으로 상처를 크게 받으셨지만 나에게 뭘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 미국에는 그래도 '전환 치료(conversion therapy)'가 있지 않았나. 상담부터 시작해서 약물을 쓰기도 하는데, 그런 시도는 안 했나?

엄마는 한 번도 나에게 치료받으러 가자고 하지 않으셨다. "지금 너의 상황은 잘못된 거니까 심리학자를 만나야 한다"는 말씀은 없었다. 무엇을 강요하지 않고 내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기준을 찾을 수 있게 도와 주셨다. 엄마에게 지금도 정말 감사하는 부분이다.

나도 '전환 치료'는 극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호르몬, 전기 충격, 상담 다 전환 치료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내 문제를 고쳐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내가 먼저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인터넷에 보고된 전환 치료 결과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전환 치료를 시도한 사람들은 더 깊은 상처를 입고 다시 동성애자로 돌아갔다.

나는 듀크대를 다니며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사실 심리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동성애를 치료(cure)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만 상담 등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고 이것만 되도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다. 나도 동성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육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 경우 내 마음과 삶의 주인이 바뀌었을 때 내가 가진 마음 밖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 김송이 씨는 과거 자신은 누가 봐도 남자 같은 모습으로 다녔다고 했다. 지금은 머리도 기르고 화장도 자주 한다며 누가 강요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바꾸시는 것 같다고 했다. (사진 제공 김송이)

동성애 반대 운동, 혐오 아닌 사랑

- 교회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동성애 반대 운동에 나선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이를 혐오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기독교 공동체 전체를 대신해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경험한 것으로 말하면 알다시피 나는 동성애자였다. 다른 누구보다 동성애자의 입장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겪고 있는지 안다. 나는 '엑스-게이'로서 지금은 답을 찾았고 새 삶을 살고 있다. 동성애자로 어렵게 살지 않아도 되는 답을 알고 있는데 그걸 말하지 않는 것이 또 다른 의미의 혐오(hate)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고 들은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는 그들이 결정할 일이다. 내가 뭘 강요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답을 말하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동성애자들이 예민해서(sensitive) 그런 말 자체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걸 혐오로 봐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걱정(care)하기 때문에 말하려는 것이지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 미국에서 동성 결혼이 통과된 후 그동안 부부로 인정받지 못한 나이든 동성 커플이 부부로 정식 등록하며 기뻐했다. '엑스-게이'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결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단순히 두 사람(two people)의 결합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더 깊은 부분을 생각한다. 결혼하면 두 사람 사이에 책임감이 생긴다. 다음 세대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함으로 사회에 책임을 다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으면 잘 키워야 하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도 있다.

미국은 이성애 부부 사이에서조차 이혼이 너무 많다. 오랜 법정 다툼 끝에 이혼하고 파산하기까지 한다. 정신적으로 상처받고 그 모든 것을 다 보는 아이들이 이혼에 영향을 받는다. 이런 문제는 동성 커플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확증하기 위한 결혼은 결혼의 한 면만 본 거라 생각한다. 결혼의 참된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은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이다. 단지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겠다? 그렇게 말하기엔 결혼에 더 큰 책임감이 따른다.

- 80살까지 결혼 신고만 못 했지 부부로 사는 것은 이미 서로에 대한 책임을 보여 준 것이 아닌가. 사회에 속해 있으면서 아무 일도 안 하고 80살까지는 살지 않았을 것 아닌가. 책임감을 무시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맞다. 책임감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원하는 대로 살았고 주위 사람들은 이미 그들이 연인으로 사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다. 숨기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왜 꼭 '결혼'이라는 타이틀을 가져야 하는가. 자신들이 더 기분 좋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닌가. 내 생각에 '결혼'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는 더 위대한 것 같다.

-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차원에서 동성 결혼을 주장한다. 그 측면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히 거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결혼'의 정의가 다르다.

   
▲ 김송이 씨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동성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는 모태신앙에 교회를 다녔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사진 제공 한마음교회)

- 미국 기독교는 교단마다 성 소수자를 대하는 정책이 다르다. 동성애자를 인정하는 곳은 "동성애자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존재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며 동성애자를 교인은 물론 성직자로 인정하는 곳도 있다. 기독교인, 탈동성애자로서 어떻게 보시나.

우리 교회도 예전의 내 모습 그대로 나를 받아 줬다. 그렇지 않으면 난 여기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그들은 내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받아 준 것이 아니다. 내 모습 그대로 받아 줬고 나중에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 후에도 나를 내쫓지 않았다. 교회가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억지로 뭔가 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교회의 역할은 올바른 복음(correct gospel)을 전하는 것이다. 올바른 복음을 전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기준이 될 것이다. 동성애자거나 삶의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올바른 복음을 계속 전한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 말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난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 자유의지로 인생의 참된 주인을 택했다. 그의 말씀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교회는 하나님의 기준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그 교회들은 문제다. 분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명은 올바른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세상의 말과 세상의 관점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나는 세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기준을 따라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 김송이 씨 역시 인터뷰 내내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대답을 이어 갔다. 그는 동성애에서 벗어났다고 확신하느냐고 묻자 "100% 확신한다"고 답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나는 동성애에서 벗어났다고 100% 확신한다

- 미국에서 동성애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고 들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춘천 한마음교회에 오게 됐나.

먼저 엄마가 한마음교회에 왔다 가셨다. 엄마는 임파선까지 전이된 유방암으로 양쪽 가슴을 다 절제하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내가 보기에 엄마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는데 나보다 더 평화로워 보였다. 한마음교회에 다녀가신 이후에 마음의 평안을 찾은 것을 알게 됐다. 엄마를 보며 나도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한마음교회에 보내 달라고 했다. 내가 원해서 온 것이다.

2012년 2월에 왔다 9월에 떠났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 한동안은 엄마가 아파 일을 해야 했다.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다시 듀크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집 근처 커뮤니티컬리지에서 학위를 마쳤다. 2015년 6월 졸업하고 다시 한국으로 왔다.

- 교회에서는 어떤 도움을 주었나.

교회는 내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같이 해 줬다. 가장 좋았던 시간도 함께했다. 우리 교회는 간증하는 교회로 많이 알려져 있다. 목사님 입장에서는 내가 간증하도록 강요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으셨다.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되려 내가 간증하겠다고 나서면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내 간증 내용을 교회에 공개하기 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준비되었다고 했을 때, 부모님에게 괜찮겠느냐고 물으셨다. 부모님이 허락하시자 목사님도 허락하셨다.

교회 강대상에서 간증했을 때 들으시는 분들이 저랑 마음을 같이 나눴다. 고통스러웠던 것을 말할 때 그 고통에 같이 아파했고 내가 기뻐할 때 같은 마음으로 기뻐해 주셨다. 만약 이런 교회 공동체가 없었다면 그렇게 용기 있게 나서서 간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간증뿐만 아니라 내 문제를 극복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거다. 예수님의 부활로,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 공동체가 동성애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고, 내가 이렇게 단단히 서 있게 된 이유라고 믿는다.

- 간증 동영상이 올라간 게 2016년 2월이다. 어떤 면에서 탈동성애자, 즉 '엑스-게이(Ex-Gay)'라고 확신할 수 있나.

부활하신 예수가 그 증거다. 인생의 주인이 확실해지니까 그분의 말씀도 그만큼 확실하다. 내 삶이 그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 외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은 이제 내가 알아서 차단할 수 있게 됐다. 중요한 것은 '내 주인이 누구인가, 그는 나에게 뭘 이야기하시는가'다. 하나님이 나에게 그 사실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나에게 증거가 있다. 내가 인정하든 안 하든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부활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아무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다. 그것 때문에 내가 '엑스-게이'라고 100% 확신할 수 있다.

   
▲ 김송이 씨는 새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 두 시간씩 말씀을 읽고 기도한다. 오전에는 교회에서 보내고 오후에는 일터로 향하는 김송이 씨는 현재 삶에 만족한다. (사진 제공 한마음교회)

- 이후 삶은 어떻게 변했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까도 말했듯 나는 감정·생각·느낌의 노예였다. 내가 조절할 수 없어 매일매일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이랬던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유롭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이전과 지금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4년 전에는 누가 봐도 남자처럼 하고 다녔는데 지금은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한다. 누가 강요해서 이런 변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하나님이 자유의지로 하게 해 주셨다. 동성애로 오는 인간관계 문제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여자들과 대화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 요즘 근황을 말해 줄 수 있나.

작년 2월부터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도 가르치고 토플도 가르친다. 원어민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매일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5시부터 7시까지 교회 새벽기도에 참석한다. 아침 두 시간을 말씀과 기도로 보낸다. 15분 동안 체조하고 함께 아침 식사한 후 교회 카페에서 지체들과 교제한다. 요즘은 한마음교회에 원어민들이 가끔 와서 그들과 교제하기도 한다. 조금 쉰 후 오후에 학원을 가는, 그런 일상이다.

- 연애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내 키가 182cm다.(웃음) 나와 키가 비슷한 남자도 잘 없을 뿐더러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다. 복음 전하는 것도 바쁜데 남자 만날 시간이 어디 있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자들 대하고 있다. 동영상에서도 얘기했는데 실제로 한 남성과 데이트한 적도 있었다.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

물론 나도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다. 아무하고나 연애할 수는 없고 삶의 목적과 생각하는 게 비슷한 사람이면 좋겠다. 나와 동일하게 부활하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전진할 수 있는 동역자를 만날 수 있게 해 달라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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