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변우경)

문양 감실댁 어른도 나오셨구나. 저 어른 연세가 낼 모레 아흔인데. 개단댁이 저렇게 언변이 유창했었나. 아주 귀에 쏙쏙 박히는구나.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정이고 누구를 위한 허가입니까. 마을에는 지독한 소똥 냄새만 남기고 돈은 모두 외지 사람이 빼 가는 이런 기업형 축사를 도대체 누가 허가해 주었단 말입니까. 여러분 다 같이 외쳐 주시기 바랍니다. 기업형 축사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축사 허가를 취소하라! 취소하라!"

봄이 시작될 무렵 내성천변 번듯한 논에 굴삭기가 들어온 걸 보고 인삼밭 임대를 주었나 했다. 노인들이 더는 힘에 겨워 짓지 못하는 논밭 대부분이 인삼 밭으로 바뀌고 있는 참이니까. 300평 한 마지기 논농사 지어 손에 쥐는 돈이라야 겨우 50만원 남짓. 그나마도 정부에 나락 수매 넣었을 때 얘기고 방앗간에 팔면 올해 시세엔 40만원도 쥐기 힘들지. 볍씨 소독부터 타작까지 들어가는 품을 계산하면 인삼 밭 임대 주고 일년에 30만원 받는 게 오히려 남는 농사이고 말고.

논밭을 인삼 밭으로 임대 줬다는 건 사실상 앞으로의 농사를 포기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인삼을 심자면 1년간 땅을 놀려야 하고 이듬해 심고 나면 6년 동안 땅은 고스란히 박제된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뿌리는 농약을 맞아 가면서. 6년이 지나 인삼을 캐고 나면 지력(地力)이 없어 되는 작물이라고는 도라지 밖에 없는데 이 도라지가 또 3년짜리 농사. 1년 휴경에 인삼 6년, 도라지 3년을 더하면 도합 10년. 10년 뒤 땅은 껍질만 남은 황무지가 된다. 

더 마뜩찮은 건 그렇게 생산된 인삼의 대부분은 홍삼으로 가공되는데 그 홍삼을 가난한 내 이웃들이 먹지는 않는다는 점. 10년 동안 돈이 땅에 묶이는 인삼 농사는 결국 자본의 농사이고 땅을 죽이며 얻은 생산물의 소비자도 결국은 '가진' 사람들. 인삼은 오래전부터 땅을 갉아 먹는 괴물이었고 그 괴물을 키우고 장려한 건 결국 자본. 인삼 농사는 농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본이 짓는 농사.

사과꽃이 필 무렵에는 굴삭기가 들어왔던 논에 콘크리트가 깔렸다. 뭘 짓길래 저렇게 바닥이 넓지. 축사라기엔 터무니없이 넓어서 설마 싶었다. 그런데 사과꽃 질 무렵에 기둥 서는 꼴을 보니 아무래도 축사. 그중에서도 소를 키우는 우사 같았다. 성오 형님을 만났다.

"저 논에 짓는게 우사 같은데요?"

"알아 보니 맞다네. 커도 보통 큰 게 아니던데 큰일일세."

"얼마나 큰데요?"

"1,600마리가 들어간다네."

▲ 봉화군 논밭 지역에 축사 단지가 들어서기로 했다. 지역 주민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사진 제공 변우경)

동네 사람의 명의를 빌려 외지인이 돈을 댄다고 했다. 면민이라야 3,300명인데 1,600마리면 기업형 축사로구나. 축사가 일터인 수의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축사가 들어설 때 무슨 규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냐?”

“규제가 있긴 한데 이게 지역마다 달라서 아마 지자체 조례 사항일거야.”

봉화군 조례를 확인했더니 아예 그런 규제가 없다. 다 그런가 싶어 이웃 예천군 조례를 살폈더니 가축 사육에 관한 제한을 엄격하게 두고 있다. 상수원, 하천, 공공시설, 마을, 도로 등 제한구역을 정하고 그 구역 밖에서만 사육을 할 수 있게 한 것. 그런데 봉화군은 달랑 한 줄이다. 

'군수가 가축 사육이 금지되는 일정한 지역을 미리 지정하여 고시하여야 한다.' 

천 마리가 넘는 소를 들이자면 1~2억으로는 어림없을 터. 덩치 큰 자본이 영악하기까지 하다. 굳이 이곳 봉화였던 이유는 행정적인 규제가 허술했기 때문이고 그게 하필 가평리였던 건 늙고 힘없는 이들만 남아서일 테지.

마을에 소를 키우는 축사가 없는 건 아니다. 적게는 십여 마리. 많게는 백여 마리. 아무리 꼼꼼하게 키워도 냄새는 나고 벌레는 꾀기 마련. 이웃 간에 그런 불편쯤 서로 모른 척 아닌 척 하는 건 '그 집도 먹고 살아야지' 하는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농사지어 부자되긴 그른 일. 더불어 같이 사는 요령은 배워 아는 게 아니다. 축사 주인은 항상 축사 한 두칸쯤 비워 두는 걸로 이웃된 염치를 보이는 것일 테고. 축사를 소로 가득 채우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지. 그리고 봄이 되면 잘 발효시킨 소똥을 거름으로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그런데 자본이 들이닥친 것이다. 1,600마리의 소가 풍기는 거대한 악취를 앞세우고. 자본은 이웃된 염치나 같이 사는 요령쯤 아랑곳 않을 것이다. 그저 제 몸을 불리면 그뿐. 서둘러 대책위를 꾸리고 장날을 골라 터미널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마이크를 이어 받은 문양댁이 외쳤다.

"여러분! 저희를 도와주세요. 올 여름 봉화 은어 축제는 망했다고 여기 저기 알려 주세요. 저 축사가 들어오면 그 똥물이 전부 여기 내성천, 은어 축제장으로 내려옵니다. 그래도 그 물에서 은어를 잡고 싶습니까."

솔직히 두렵다. 이길 수 있을까. 기어이 이 궁벽진 고장까지 찾아와 제 몸을 불리는 저 집요한 자본을 막을 수 있을까. 얼굴도 없는 저 거대한 탐욕을. 슬프게도 구호를 외치는 바로 옆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고 있다. 저 마트가 들어서면 길 건너 마주한 재래시장은 더욱 초라해질 것이다. 저 무지막지한 자본 앞에 늙고 가난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용케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변우경 / 봉화에서 사과, 고추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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