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아프리카 30여 개 국가에서는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 할례가 이뤄지고 있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매년 300만 명, 하루에 8천 명의 소녀들이 할례를 받고 있다.

이방인에게는 '인권유린'으로 보이는 여성 할례. 아프리카 여성들에게는 고통스런 '일상'이다. 할례를 거부하는 여성은 가족과 마을 사람을 피해 도망친다. 국경을 넘기도 한다. 이들에게 할례의 의미는 크다. 할례받지 않은 여성은 아이를 낳아도 무시당하고 공동체에서 배제된다. 할례받지 않은 여성과 결혼한 남편도 남성 세계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6월 16일, 여성 할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소녀와 여자'가 개봉했다. 한국 최초로 이 문제를 다룬 영화다. 영화 개봉 후 일주일 뒤인 24일 오후, 이 영화를 찍은 김효정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는 아프리카 여성 난민을 돕는 단체 '에코팜므' 박진숙(나비) 대표가 진행했다.

▲ 한국 최초로 여성 할례를 다룬 다큐멘터리 '소녀와 여자'가 개봉했다. 김효정 감독을 만나 영화 이야기를 들어봤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한국 여성의 눈으로 본 아프리카 여성 할례라는 소재가 신선하다. 많은 이야기 중 여성 할례를 주제로 잡은 이유가 있나.

2010년 12월, '소녀와 여자'를 찍기 시작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여성 할례는 수면 위로 올라오기 어려운 주제였다. 계기는 '데저트 플라워'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아프리카 사막 유목민 소녀가 톱 모델이 되는 내용이다. 여기서 여성 할례 이야기가 나온다. 한 극장에서 데저트 플라워로 관객과의 대화를 기획했는데 나를 오퍼레이션으로 불렀다. 영화 PD이자, 2003년부터 7년간 사막 마라톤을 다섯 번 완주한 '그랜드슬램' 이력 때문인 거 같다.

영화를 보는데 가슴이 꽝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달렸나 돌아보게 됐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먼 나라에 있는 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소녀와 여자'를 보고 관객들이 던지는 질문과 유사했다. 그때 대답으로 "공감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사실을 주변에 계속 알리다 보면 변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나는 당시 할 수 있는 게 영화밖에 없어서 '소녀와 여자'를 기획하게 됐다.

- 이번 영화가 첫 감독 데뷔다.

당시 PD 11년 차였다. 드라마 PD는 본인이 연출도 하지만, 영화 PD는 감독이 연출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만든다. 예산 짜고 투자 끌어오고 캐스팅하는 등 영화 전반에 관여한다. 아프리카로 떠나기 두 달 전만 해도 감독이 있었다. 그런데 그 감독님이 아무래도 이 작품은 김효정 PD 작품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제, 기획이며 꼭 찍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도 나였으니 감독님은 이 작품을 본인보다 내가 더 열정적으로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 같다. 감독이 없어졌으니 당황스러웠다. 여성 할례는 11월부터 1월 딱 우기에만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내년에는 갈 수 있을지 몰라 일단 떠났다.

- 영화에서 자극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다섯 명의 스텝들이 촬영하러 가면서 성기 절제 장면은 찍지 말자고 약속했다. 우리에게 절제 장면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국에서 정보를 찾으면서 자극적인 영상을 많이 봤다. 제목도 '더 컷'이었다.10년 전에는 사람들이 이 사실조차 몰랐으니 보여 줘야 했다. 뭐에 홀린 듯한 모습으로 무표정으로 춤춘다. 어두컴컴한데 여자가 다리 벌리고 누워서 잡고 '툭'. 피를 철철 흘리는데 아무도 울지 않는다.

본 장면 중 가슴이 아프던 게 있었다. 할례를 하고 온 건지, 부작용인지는 모르겠는데 한 여성이 병원 바닥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데 치마에 피가 흥건했다. 이런 장면은 거부감을 느낄 거 같았다. 영화에서 이런 걸 보여 주려고 한 게 아니라 굳이 다룰 필요 없었다. 그저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었다. 또 영화가 웃기지도 눈물나게 슬프지도 않다. 한국 다큐멘터리와는 좀 다르다. 취재하면서 애잔한 장면을 찍지 않은 이유도 있다. 이 문제를 있는 그대로 봐 줬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여성 할례는 아프리카 30여 개 국가에서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에 진행되고 있다. 영화에는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의 의견이 성실히 담겼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촬영하면서 지켰던 원칙이 있었나.

솔직하게 담고 싶었다. 연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 주려고 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눈물 흘리고 우울한 모습들이 전부다. 그러나 정작 가 보면 그렇지 않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과 달라도) 그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고 싶었고 그러려면 연출하지 말자고 했다. 실제로 영화를 본 한 지인은 연출한 거 하나도 없냐고 물었다. 아이들이 깔끔한 옷을 입고 있으니 연출했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 일각에서는 여성 할례와 남성 할례를 비교하기도 한다.

이 영화를 찍은 이유 중 하나는 2010년 조사 당시, 여성 할례가 아프리카 29개국에서 불법이였기 때문이다. 케냐나 이집트는 1998년부터 불법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정부는 전통(영화에는 세 딸 아버지가 교도소에 세 번 가더라도 딸들에게 할례를 시키겠다 말하기도 한다 - 기자 주)이기 때문에 묵인했다.

남성 할례는 위생 문제다. 불법도 아니다. 그러나 여성 할례는 이야기가 다르다. 일처 다부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여성 성욕을 절제하기 위해 클리토리스, 대음순, 소음순을 자른다. 어떤 부족은 성경에 나오는 할례를 기준으로 여성 할례의 타당성을 말한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여성 할례와 남성 할례가 같다고 해석할 순 없을 거 같다.

- 영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성실히 담겼다. 얼핏 보면 중립적 입장인가 생각이 든다.

반대다. 떠날 때는 반대하는 마음이 80%였다. 지금은 반대 51%다. 49%는 그럼에도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기 전에 절대 한쪽에만 치우쳐서 취재하지 말자고 했다. 최대한 옹호하는 입장의 이야기도 다 듣고 싶었다.

절제술 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그들 입장에서는 외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할례를 옹호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닌 거다. 당당한 거다. 왜냐면 마을에서 그 할머니는 전통을 잘 따르는 어른으로 대접받기 때문이다. 문서로 보는 것과는 달랐다. 가서 보니 한국과 비슷한 정이 있었다. 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배척되는 분위기니 딸을 할례시키려는 엄마, 아빠 입장이 이해가 갔다.

다행인 점은, 그곳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녀와 여자'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리 외국인이 들어와서 이거 아니라고 '인권'을 운운해도 변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아프리카에 있는 로컬 NGO 중에는 여성 할례 외에도 얼굴에 문신하거나, 칼로 상처를 내는 전통을 악습이라고 여기고 멈춰야 한다는 캠페인을 하는 곳이 있다. 그들 스스로 충분히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렇게 점차 변하는 모습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그는 영화를 찍기 시작한 2010년과 개봉한 2016년의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전에는 '그게 뭐야'라고 물었다면, 지금은 공감하고 있다고 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영화 보면서 회의감이 든 부분도 있다. 석사 여성이 소녀들에게 할례 말고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다 말하는 장면이 나오더라. 생활 기술이 필요한 것 아닐까.

맞다. 아이들에게 생활 기술이 필요하다. 촬영하면서 보니 네덜란드, 스웨덴에서 원조하는 학교에는 재봉틀이 있다. 할례를 거부하면 부모들이 집으로 오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할례 기간에 할례 반대 캠프로 도망쳐 온다. 이게 끝나면 집에 가지 못하고 자신들을 보호해 줄 NGO 센터로 보내진다. 보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국 아이들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 에코팜므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난민에 관심이 많다. 여성 할례를 이유로 박해를 받아 난민이 된 사례도 알고 있나.

영화에서 할례 반대 캠프 졸업식을 하면서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기간에 배운 걸 잊지 말고, 여성 할례를 하겠다고 하면 'NO'라고 이야기하고 물리칠 수 없으면 경찰서에 가라"고. 그때 132명의 아이들을 난민이라고 표현했다. 이곳은 케냐와 탄자니아 국경 지대인데, 부모가 직접 아이들을 보낸 경우도 있고, 국경을 넘어서 목사가 보내는 경우도 있다.

- 난민, 여성 할례 이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롭긴 하지만 '그래서 뭐?'라고 생각할 거 같다.

그것조차 이 이슈를 받아들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슈를 강요하고 싶진 않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가 올 거고 그걸 기다렸으면 좋겠다. 영화를 찍을 때와 개봉한 지금, 상황이 많이 변했다. 이 이야기에 공감하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0년만 하더라도 술자리에서 여성 할례 이야기를 꺼내면 '그런 일이 있어?'라고만 했다. 지금은 다들 공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로 한 걸음 내딛는 모습도 보았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로 많이 바뀌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사한 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 영화를 비단 여성 할례로만 국한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여성의 이야기로만 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할례는 아니지만 여성들이 받아 온 폭력이라는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영화를 봐 주는 분이 있어서 고마웠다.

'소녀와 여자' 영어 제목은 'Where am I'다. 할례를 해도 소녀일 수 있고, 하지 않아도 여자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나'로 본다면 이런 이슈를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진정한 나는 어디있냐를 묻는 영화기도 하다. 영화 속 할례는 어떤 사람에게는 퀴어, 장애인, 다문화 가정, 저소득, 미혼모, 여성, 남성, 노숙자로 전환되어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김효정 감독의 '소녀와 여자'는 아프리카의 여성 할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김 감독은 2010년 말부터 두 차례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95분간 상영하는 영화에서 할례를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충실하게 담아냈다.

6월 16일에 개봉한 '소녀와 여자'는 서울에서는 인디스페이스, 아트하우스모모, 에무시네마, KU시네마트랩, KU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한다. 인천은 영화공간 주안, 대전은 아트시네마, 대구는 동성아트홀, 오오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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