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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복음은 기득권 내려놓는 것
[인터뷰] 필라델피아 '할렘'서 사역하는 이태후 목사(2)…"특권 포기할 때 하나님나라 이뤄져"
  • 강도현 (dreamer@newsnjoy.or.kr)
  • 승인 2016.06.27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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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무엇일까? 복음주의자들의 본격적인 사회참여를 불러일으킨 로잔 언약은 4장에서 복음주의(Evagelism)의 본질을 설명하고 5장에서 기독교인의 사회 책임을 설명한다. 로잔 언약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복음의 본질을 정말로 잘 설명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과연 4장과 5장을 분리할 수 있을까? "복음은 이것이고 사회참여는 저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로잔 언약이 구원을 이루라 말했던 바울 사도 마음에도 들지 궁금하다.

이태후 목사는 복음의 본질을 누가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에서 찾는다고 말한다. 이사야서 61장을 인용하여 희년을 선포한 예수님의 사명문에서 복음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단순히 한 영혼의 죄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를 향한다.

우리는 흔히 구약에서 시작된 구속 역사가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배운다. 그러나 성서를 읽어 보면 오히려 미완성으로 남겨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구원을 이루라 했던 바울 사도의 가르침은 한 개인에게만 적용될 것이 아니다.

복음을 예수님이 꿈꿨던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는 과정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예수님과 바울을 연결하기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 예수님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가면서 구원 역사는 점진적으로 완성된다.

그렇기에 우리 관심은 자선사업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구조와 그 구조 안에 기생하는 '악'을 뿌리 뽑는 데까지 갈 수밖에 없다. 구원이 한 영혼에게 주어지는 천국행 티켓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완성을 의미한다면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사회구조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비판과 대안을 포함한다.

물론 그리스도인끼리도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사회구조적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희년을 선포한 예수님의 사명이 곧 우리 사명이라면 구조를 논하는 것도 사명의 일부다.

이태후 목사와 나눈 두 번째 대화를 옮긴다. 이태후 목사의 사역이 사회구조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 나아가 현재 미국 정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대화를 나눴다. (첫 번째 인터뷰 바로 가기: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 복음인가)

   
▲ 이어진 인터뷰는 이태후 목사의 사역이 갖는 사회구조적 의미를 짚어 보는 시간이었다. 대화는 현재 미국 정치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뻗어 갔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 목사님이 하는 사역과 복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제 이해가 됐습니다. 이제 현장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말씀하셨듯이 흑인 차별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수백 년 된 문제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흑인과 백인 문제고요. 그 오래된 문제에 동양인이 끼어 있다는 게 뭔가 이질감을 불러일으키거든요. 백인들이 목사님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 같고, 흑인들은 더 이상하게 봤을 것 같습니다. '왜 우리 문제에 당신이 끼어드냐'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현장 느낌은 어땠는지, 그런 이질감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게 이질감이 될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장점이기도 했습니다. 2003년 정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 동네 주민 중 94%가 흑인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흑인 동네죠. 그런 동네에 왜소한 체격의 동양인이 들어오니까 처음에는 신기해했죠.

주로 들었던 질문이 "너 여기서 장사하냐?"였어요. 아시다시피 흑인 동네 구멍가게, 차이니스 테이크 아웃, 가발가게 같은 곳에 가면 동양인이 주인이거든요. "그거 아니다"라고 했죠. 두 번째 질문은 가까이에 있는 "템플대학교 학생이냐?"였어요. "젊게 봐 줘서 고마운데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더 헷갈리는 거에요. '그럼 얘가 왜 여기 있지' 갸우뚱해요. 그 두 가지가 아니면 동양인이 이 동네에 있을 이유가 없거든요.

그런데 "나는 목사다"라고 말하잖아요. 그럼 더 놀랍니다. 왜냐면 우리 동네에 흑인 교회가 많은데요. 제가 알기로 목사님들이 그 지역에 살지 않습니다. 다 '하나님 축복을 받아서' 좋은 동네 살죠. 사실은 교인도 상당수가 외곽 지역에 살고 주일에만 차 타고 들어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니 자기 교회 목사들도 동네에 살지 않는데 동양인 목사가 와서 같이 살고 있으니까 신기한 거죠. 저를 배타적으로 보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첫 단추가 꿰어졌지요.

흑인들은 기본적으로 백인에 대한 저항심이 있습니다. 당연하죠. 노예 시대부터 농장주와 노예라는 갑을 관계가 형성된 이래 그 관계가 크게 바뀌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경계심도 많고 저항 의식도 있을 수밖에요. 만약 제가 백인이었다면 우리 동네 사람들이 저를 많이 경계했을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요. 우리 한국분들 인식인데요. 우리는 흔히들 서양에서 한국인의 지위가 상당히 높을 거라고 생각해요. 천만의 말씀이죠. 미국 사회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으로 보자면 백인이 가장 위에 있고 그 밑에 흑인, 그리고 히스패닉, 다음은 인도, 중국, 그리고 대한민국은 상당히 낮습니다.

일단 수에서 밀리고요. 정치권이나 기업들에 진출한 분들도 다른 출신에 비해 적죠. 미디어에 노출되는 경우도 거의 없고요. 흑인 이웃들이 저를 속된 말로 만만하게 보죠. 그러니까 오히려 더 쉽게 저를 받아 준거죠. 미국 사회의 가장 큰 짐이라고 할 수 있는 인종차별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오히려 제가 이런 사역을 할 수 있는 적임자가 된 거죠.

   
   
▲ 이태후 목사가 사역하는 곳에 거주하는 이들 절대다수가 흑인이다. (사진 제공 이태후)

- 미국은 흑인 교회와 백인 교회가 완전히 나뉘어져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목사님 사역이 독특하게 인식될 것 같은데요. 지역에서는 목사님 사역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필라델피아 현지 언론이 다뤘지만) 우리 지역에서도 캠프 사역이 많이 알려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만나는 사람들 평가를 들어 보면 재미있어요. 제가 템플대학교에서 3년간 강의를 하면서 만나는 교수들이 있는데요. 그중 한 명은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에요. 사회학 교수면서 본인 스스로 호전적 무신론자라고 불러요. 어린 시절 이탈리아에서 성장하면서 교회에 대한 분노가 많은 분이에요. 그런데 저희 캠프를 위해서 적은 돈이지만 기부를 하셔요.

또 다른 교수 한 분은 남편이 유대인이면서 자산가인데 가족이 운영하는 기부 펀드를 통해서 우리 캠프에 기부를 하셨어요. 그 집안 구성원들에게 캠프 동영상을 보내 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신대요. 정작 그 교수님은 무신론자거든요. 그런 분들도 종교의 역할을 인정하는 거죠.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보니까 만나게 되는 백인 친구들이 우리 동네에 놀러 오면 평소 만날 일이 없던 이 흑인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죠. 우리 캠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흑인과 백인, 흑인과 한인, 그리고 중산층과 빈민층 간에 교제가 일어나요. 우리 캠프 봉사자들 구성원을 보면 백인, 흑인, 히스패닉, 한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게 캠프를 진행하거든요.

- 미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죠.

그래서 캠프를 진행하다 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구경하는 모습도 자주 봐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어요. 저는 그분들에게 "저는 목사고 이게 하나님나라라고 생각한다" 말해 주면 대부분은 "그래, 그러니까 가능하지" 이렇게 반응해요.

- 말씀하신 것처럼 백인들도 목사님 사역을 좋아해요. 제가 아는 백인 친구들도 그럴 것 같아요. 개별적으로 만나 보면 중산층 백인들의 개인 윤리는 상당히 뛰어나거든요. 그런데도 앞서 말씀하신 구조적인 부분, 그러니까 흑인 빈민층을 고립시키는 개발 정책 같이 지속적이고 구조적으로 흑인을 차별하는 동력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득권'이죠. 이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여기서 미국이란 중산층 이상의, 적어도 대학 교육을 받은 미국이라고 해야겠죠? 처음 이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나이스'하잖아요.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미국에서 좀 살다가 한국에 오면 불편한 것 중에 하나가 지하철에서 툭툭 치고 가도 미안하다는 말 하지 않고, 뒷사람을 위해서 문 잡아 주지 않고 이런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무례하고 미국 사람들은 예의 바르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뭐 그런 측면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미국인들은 정말로 예의 바르고 우리는 예의를 몰라서 그런 건가요?

저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70~80년대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공동체가 다 무너지기는 했지만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공동체적인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동네에 누가 있는지 다 알고, 생활 경계가 잘 구분되지 않는, 이것저것 다 참견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미국은 기본적으로 유럽 사람들이 이주해 온 거잖아요.

이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서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홀로 개척하는 삶이거든요.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약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해요.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죠. 우리가 처해 있던 환경은 굳이 계약으로 보호받지 않아도 공동체의 울타리가 나를 보호해 주는 사회였으니까요. 미국은 계약이 존중되지 않으면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환경이었고요.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미국 사람들이 '나이스'한 것은 자신의 평안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에요. 서로에게 '나이스'하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안전을 확인하는 거죠. 제가 볼 때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구축해 온 울타리를 침해당하는 걸 그토록 싫어해요. 역사적인 맥락을 보면 이해가 가죠.

그런 성향이 인종 문제에도 그대로 드러나요. 흑인 빈민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신들 기득권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거든요. 절대로 양보하지 않죠. 자신들의 특권이 유지되는 환경에서는 얼마든지 나이스합니다. 심지어 기부도 잘하고요. 그런데 자신들의 특권이 침해당하는 순간 용납하지 않는 거죠.

해방신학의 권위자인 헬더 카마라 대주교의 일갈이 기억납니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을 때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었을 때,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생각해 보세요. 빵과 옷을 나눠 주는 것은 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지만, 농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먹고살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농노를 통해서 막대한 부를 획득하고 있는 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거든요. 그 순간에는 돌변합니다.

흑인 차별의 깊은 뿌리도 결국 미국의 중산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거죠.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은 내 특권을 포기할 때 이뤄지는 거죠. 그것은 제도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고요.

   
   
▲ 백인과 흑인, 빈민층과 중산층 등 인종이나 사회 계층 간 차별 없이 어울림이 일어나는 곳이 하나님나라다. 이태후 목사는 기득권을 포기할 때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사진 제공 이태후)

- 구약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하나님나라, 예수님이 꿈꿨던 하나님나라를 생각해 보면 나의 기득권을 지켜 주는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제도'라는 단어가 거북한 분들을 위해 이렇게 보면 될 것 같아요. 미국 PCA(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장로교단)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교단이잖아요? 그 교단에 속한 칼 엘리스 목사님이 계세요. 미국 PCA 교단에서는 소수인 흑인 신학자이기도 한데요. 거룩함을 이렇게 설명하셨어요. 거룩함이 개인의 영역에서는 경건함이지만 사회의 영역, 공동체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은 '정의'라는 거예요.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산다고 할 때는 거짓말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는 개인 윤리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함을 말하면서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내 삶 안에도 있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현장 가운데, 우리 사회에도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회가 거룩하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공의로운, 정의로운 사회라는 뜻입니다. 희년법이 그런 거죠.

- "복음의 영역은 사회제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인데요. 목사님이 지금 계획하고 계시는 '커뮤니티 센터'도 그런 차원에서 추진하고 계신 건가요?

맞습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을 생각해 보면 세 달이나 되는 긴 방학 동안에 지적으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해요. 그런 환경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최하는 여름 캠프에 4주간 함께 활동한 아이들을 보니까 학업 성취가 정말 많이 올라가더라는 거예요. 겨우 4주 했을 뿐이데. 이 아이들에게 1년 내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동네 학교를 가 보면요. 이게 정말 21세기 학교인지 의심이 갈 정도에요. 분위기도 너무 침울하고 심지어 위험합니다. 미국 통계학자들에 의하면 빈민가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범죄에 처음 노출되는 나이가 9세에서 13세라고 합니다.

주변 환경을 보시면 금방 이해가 될 텐데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되는 시간대에요. 오후 세 시부터 여섯 시, 그러니까 학교 끝나고 저녁 먹기 전까지. 집에 와서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으니까 길에 나오는 거예요. 뭐, 동네에서 쉽게 만나는 형들이 심부름을 시키거든요. 가까운 골목에 검은 봉지만 전달했을 뿐인데 10달러를 줘요. 괜찮네? 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범죄의 길로 빠집니다.

마약과 총기의 위협이 난무한 우리 동네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도피성을 만들고 싶어요. 이름은 '커뮤니티 센터'이지만 저에게는, 그리고 그곳에서 성장할 아이들에게는 성지입니다.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사랑받을 수 있는, 간식이 있는, 숙제 도와줄 사람이 있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하나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거기는 바로 하나님나라 아니겠습니까?

아이들만 그런 장소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빈민가에는 커피숍이 없어요.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커뮤니티 센터가 지어지면 아이들이 학교 가 있는 시간에 어른들이 와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잖아요. 술 대신 차를 마시면 좋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 이태후 목사가 사역하는 빈민가에는 커피숍이 없다. 이 목사는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펀드 레이징을 하고 있는 '커뮤니티 센터' 건립 목적 중 하나다. (사진 제공 이태후)

- 커뮤니티 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펀드 레이징(fund-raising)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질문을 드리자면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에 지어질 센터를 위해 왜 한국 사람이 기부를 해야 하는 것이죠?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웃음) 일단 한국인이기 때문에 도와야 할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엑스 같은 분들이 주도했던 60~70년대 인권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미국 땅에서 소수민족에게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백인들에게는 흑인이나 소수민족이나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동양인에게 투표권 없는 것은 너무 당연했고, 갈 수 있는 곳도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흑인 지도자들이 이끌었던 인권 운동을 통해 소수민족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흑인들이 치룬 희생은 우리가 70~80년대 민주화를 위해 치렀던 희생에 못지않았습니다. 

그때 중국계, 일본계 미국인들은 흑인 편에 서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자신들의 문제였으니까요. 우리 한국 동포들은 그렇지 못했어요. 일단 숫자가 적었고요. 샌프란시스코 주변 한인들 사이에 인권 운동 움직임이 조금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다른 나라 출신자들에 비해 약했던 거죠.

한국 사람들의 본격적인 이민은 7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니까 60~70년대 흑인 운동가들이 주도한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주체는 되지 못했죠. 어찌 되었든 그 열매는 같이 누리게 된 것이죠. 말하자면 무임승차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이 이민 오셔서 고생을 하셨지만, 자기 자식들이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민의 목표 아니었습니까? 애초에 그런 목표를 세울 수 있었던 환경이 흑인 주도의 인권 운동 덕분인 거에요. 그분들의 희생으로 한국 이민자들이 꿈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런 차원에서 빚진 마음이 당연히 있어야죠.

또 하나는, 이민 역사를 보면 우리 한국인들이 흑인 동네에서 장사를 많이 하셨어요. 미국 처음 와서 백인들 상대로 장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죠.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에서 장사를 시작하신 분이 많아요. 그렇게 한국인 이민 세대가 성장을 한 거죠. 우리는 열심히 장사했으니까 이만큼 성장한 거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겁니다.

흑인 커뮤니티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이웃이 된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흑인 커뮤니티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흑인 빈민가에 커뮤니티 센터를 짓는 일은 우리가 그들에게 뭔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는 것이라 생각해요. 크리스천이기에 더더욱 화평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크고, 빚진 마음을 갚아 나가는 것이죠.

- 지금까지는 목사님의 흑인 빈민가 사역과 계획하고 계시는 커뮤니티 센터가 어떻게 복음의 지평 안에서 해석될 수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참 흥미롭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좀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데요.(웃음) 복음이 우리 사회의 구조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면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정치 현상을 복음의 프리즘으로 해석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트럼프를 이야기해 보죠. 저는 소위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를 이토록 지지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고민입니다.

미국 정치와 교회의 관계를 보면요. 복음주의 사람들이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공화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거든요. 아들 부시 때 와서는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했죠. 공화당도 복음주의 서클의 가능성을 보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 왔고요. 특별히 클린턴 정부를 거치면서 소위 근본주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보수 개신교가 위기의식을 갖게 되죠. '포커스 온 더 패밀리'의 제임스 답슨이나 리버티대학교의 제리 포웰 목사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크리스천코올리션'(Christian Cohollition)이라는 단체로 정치에 적극 개입하면서 세운 명분이 동성 결혼 반대, 낙태 반대, 이민자 이슈 등이었어요. 아주 종교적인 명분도 있었습니다. 민주당 정부가 학교에서 기도 못 하게 한다든지.

이런 몇 가지를 가지고 복음주의, 더 정확히는 근본주의 시각을 가진 복음주의 리더와 공화당의 밀월 관계가 강하게 형성됩니다. 조지 부시가 당선될 때 상당한 힘을 발휘하죠. 부시도 대통령이 되고 나서 복지 예산 일부를 교회를 통해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보답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그런 정도의 밀월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런 배경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지난 대선 때의 움직임을 기억해야 하는데요.

오바마가 재선할 때 공화당 주자는 미트 롬니였습니다. 몰몬교 신자죠. 그런데 미국 저명한 복음주의권 목사들이 롬니를 받아들이는 발언들을 했어요. 사실 복음주의는 몰몬교를 이단으로 정죄하잖아요. 그럼에도 복음주의권 리더들은 동성애 같은 이슈와 관련해서 몰몬교가 가지고 있는 보수적 시각이 자신들 정체성과 더 맞다고 본 거죠.

그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걸 보면 그런 이슈들의 무게감이 다른 기독교적 가치들보다 우선한다고 보는 것 같아요. 트럼프를 지지해야 할 만큼.

- 저는 미국 대선을 보면서 복음주의자들이 어떤 함정에 빠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동성 결혼과 낙태 이슈에 올인하면서 이들이 쓸 수 있는 카드가 트럼프밖에 남지 않은 거죠. 게다가 최근에는 교회가 총기 보유를 공개적으로, 그리고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형국인데요. 어떻게 보면 이건 엄청 위험한 짓 아닙니까? 물론 제 생각일 뿐이지만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의 윤리적 문제를 논하기 전에, 만약 클린턴이 당선된다면 미국 복음주의는 완전히 웃음거리가 될 것 같거든요.

방금 이야기한 복음주의권의 정치 개입 역사가 그래요. 클린턴이나 샌더스가 집권하게 되면 자신들 입지가 점점 줄어든다고 보는 거죠. 정치 개입의 명분을 몇 개의 특정 이슈와 관련해서 쌓아 오다 보니까 트럼프가 당선돼야 자신들의 입지가 넓어지는 구조가 된 거에요. 공화당도 그런 사정을 너무 잘 알고요.

   
▲ 이태후 목사는 트럼프를 두고, 돈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상식적으로 교회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현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기득권' 문제로 본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 트럼프가 가지고 있는 반기독교적 요소도 상당하잖아요. 사실 트럼프가 정치인으로 나서기 전의 모습은 도저히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 아닙니까?

상당하죠. 상식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죠. 트럼프 개인의 도덕성을 보면 교회가 이 사람을 지지한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채무를 갚지 않으려고 자신의 회사를 일부러 망하게 한다든지,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해고당하는. 그게 합법이니까 당당하다는 거예요. 제 생각에 트럼프의 신은 맘몬이에요. 보수 기독교는 몰몬도 괜찮고 맘몬도 괜찮은 거죠. 보수 기독교 아젠다에 동의만 한다면요.

돈 버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 부류에게 트럼프는 딱이에요. 대놓고 돈이 최고라고 했던 사람이잖아요. 만약 복음주의라는 범주가 조엘 오스틴 목사의 설교에 동의가 되는 사람들의 묶음이라고 본다면 도널드 트럼프 지지가 그렇게 놀랍지 않아요. 미국 백인 중산층의 기득권 유지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물론 백인을 딱 집어서 비판하는 것은 아니에요. 중산층 서클에 들어간 흑인들도 빈민가를 돌보지 않아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에요. 그게 맘몬의 사악하고 영악한 전략 아니겠습니까?

- 우리나라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우리 사회 윤리 의식을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습니다. 사회구조적인 악에는 침묵하면서 그 악에 기생해서 돈 버는 것을 축복이라 여기는 모습은 미국이나 우리나 별반 다르지 않네요.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손을 놓을 수는 없잖아요. 이 암울한 상황에서 교회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 두서없이 이야기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야죠. 누가복음에서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같은 말씀을 예수님이 왜 하셨는지 교회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과 더불어 교회에 만연한 세상의 가치를 빨리 떨쳐 내야 합니다.

가령 '성공'이라는 가치는 성경이 지지하는 바가 아닙니다. 성경은 '성취'를 이야기하죠. 하나님나라의 성취. 세상의 가치를 기독교의 언어로 둔갑시켜 유통시키는 짓을 멈춰야 합니다. 리더십이라는 단어도 성경적이라 보기 어렵죠.

언제 예수님이 리더가 되겠다고 하셨나요? 높아지고 싶으면 낮아져야 하고, 섬김을 받고 싶으면 섬겨야 하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적 가치잖아요. 예수님은 항상 섬기는 자로 자리매김하셨는데 우리는 교회에서 '서번트십'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꾸 '리더십'을 이야기하거든요.

교회는 대안적(counter-culture)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교회가 어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 세상은 그냥 알아요. 교회 내에서 누가, 어떤 가치가 대접받고 있는지 너무 잘 알죠. 돈과 권력인지, 아니면 예수님 말씀인지.

   
▲ '구원'에 대한 담론부터 미국 정치 상황까지 다양한 대화가 오갔지만, 이 모든 것은 '복음'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교회가 대안적이라고 말하는 이 목사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실제로 대안적인 사역을 해 나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 결국 다시 성경으로, 복음으로 돌아오게 되네요. 예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습니다.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쉬우니까요. 긴 시간 함께 말씀 나눠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시 묻게 된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이 단순하고 아름다운 질문 앞에서 조용히 우리를 돌아본다. 복음의 지평이 단순히 한 개인의 구원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한다.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각자의 영역에서,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서 분투하고 있기에 우리는 교회를 통해 희망을 찾게 되리라 믿는다. 복음을 온전히 세상에 드러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이태후 목사님에게 응원을 보내며 같은 생각을 품은 동역자를 많이 만나시길, 그리고 두 편의 긴 인터뷰를 인내하는 마음으로 읽어 주신 모든 독자들께 같은 은혜 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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