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어람이 상반기 기획한 '혐오와 포비아' 포럼이 6월 24일 '종북'을 주제로 막을 내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청어람ARMC(양희송 대표)가 6월 24일 '한겨레미디어카페 후'에서, '종북-포비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번 포럼은 청어람이 올해 상반기 진행한 '한국의 혐오와 포비아를 생각한다' 마지막 순서였다. 청어람은 3월부터 이슬람, 동성애, 여성 혐오 및 포비아를 다뤘다.

실체가 있는 듯 없는 듯한 이 단어. 왜 하필 마지막 주제가 종북일까. 양희송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혐오와 포비아를 연구하면서 참 흥미로웠다. 이슬람이든 동성애든 여성이든, 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결국 이것들을 종북과 연관시킨다. 중동 이슬람권이 북한과 손잡았다는 말이나 '종북 게이'라는 말이 나온다. 북한 정권이 동성애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중간에 '네오 맑시즘'이라는 걸 넣어서 스리쿠션으로 종북과 엮는다.

이런 현상에 한국교회가 성찰 없이 문제를 악화하고 있다. 북한은 가만있으면 동정의 대상이 되지만, 그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면 위협적인 대상이 된다. 무슬림과 동성애자, 여성도 비슷한 논리와 패턴으로 수렴한다. 현재 개신교 신학에서 전혀 포용을 못한다. 교회가 사랑과 용서, 포용, 이런 게 아니라 혐오와 분노,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포럼 발제자가 핫하다. 북한 엘리트가 모이는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으로 2002년 탈북한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와 복음주의권에서 꾸준히 통일 운동을 이어 온 미래나눔재단 윤환철 사무총장이 발제자로 나섰다.

주성하 기자는 북한에서 실제 살다 왔고, 한국에 와서도 김정일-김정은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그런 그가 남북한에서의 경험에 비춰 종북에 대해 말하니 설득력이 높았다. 윤환철 사무총장은 종북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이론적으로 접근했다. 여러 통찰을 던지는 말이 많이 나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두 발제자의 발언을 정리해 봤다.

주성하 기자 "종북 혐오 현상, 시간 지나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

"한국 사회에서는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를 나누기가 참 곤란하다.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니면서도 북한 사회에 문제의식이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라 하면서 빈부 격차가 너무 심했다. 이런 불평등은 잘못된 것이다. 대학에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서클을 만들었다. 한국으로 치면 학생 운동을 한 것이다.

그런 내가 한국에 오니 보수 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더 황당한 건, 나는 북한에서 감옥도 여러 번 갔고 탈북해서도 김정일-김정은 체제를 엄청 비판했는데, 박근혜 정부 좀 비판했다고 나를 종북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종북이라는 단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김정은 체제가 싫은 거지 북한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 않나. 북한은 좋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도 북한 좋아하고 언젠가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다고 '종김'이라고 하면 김 씨들이 섭섭할 것이고…. (웃음) 차라리 '종김정은'이라고 하든지."

"종북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 99%가 억울할 것이다. 한국에서 김정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하겠지. (웃음) 뭐 연예인 좋아하듯이 김정은 스타일을 좋아한다거나… 뭐 있긴 있겠지. (웃음) 하지만 김정은 통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은 0.1%도 안 될 것이다. 0.1%도 안 되는 사람들이 나라를 뒤집으려 해서 무섭다? 그건 아니지."

"적화통일?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현재 김정은 체제는 남한까지 통치 못 한다. 북한 인민 2,500만도 가까스로 틀어막고 있는데, 말 안 듣는 한국 사람 5,000만을 다스린다고? 통치가 안 된다. 여러분더러 내일부터 생활 총화 나오라고 하면 나오겠냐고. 그리고 통치를 하려면 북한 고위급 간부들이 내려와야 할 텐데, 그들이 한국 오면 여기 문화에 물들어 버릴 거다. '그동안 속고 살았네?' 하면서.

만약 현재 김정은 체제로 남한까지 통치한다면 6개월도 못 가 무너질 거다. 우리가 문 열고 거저 준다 해도 안 먹는다. 줘도 안 먹는 걸 무슨 핵까지 쏴서 먹는다고 하나. 그 핵을 쏘면 김정은 자신은 무사할 거 같은가. 아직도 적화통일, 남침 야욕 운운하는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다."

▲ <동아일보> 국제부 주성하 기자. ⓒ뉴스앤조이 구권효

"북한과는 협력 아니면 대치 관계일 수밖에 없다. 나는 북한이 필요한 거 있으면 도와주고, 개성공단 같은 거 열 개 스무 개씩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무조건 퍼 주면 안 된다는 말이나 북한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입장도 이해는 간다. 실제 한국 사람들이 평양과학기술대학교 만들어서 북한 엘리트를 양성하지만, 그들이 졸업해서 남한 해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평양과기대가 의미가 없나. 그렇지는 않다. 북한 엘리트들이 외부 교수들에게 배우면서, 그들에게 북한 밖 세계가 있다는 인식을 주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에 엘리트가 있는 게 사회 재건에 도움이 된다. 남한 입장에서 통일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북한과 협력할 것인지 대치할 것인지, 무엇이 우리에게 이익인지 잘 따져 봐야 한다. 이건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협력하자는 쪽도 대치하자는 쪽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결과가 51:49로 나오더라도 51을 밀어야 한다. 나는 그게 북한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북을 넘어서는 방법은 딱히 없다. 옛날 사람 중에는 실제 좌파 세력이나 인민군에게 가족을 잃는 등 직간접적으로 안 좋은 일을 당한 사람이 있다. 그들의 세계관은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세계관이 다른 사람은 설득이 되지 않는다. 집에 가서 할아버지 설득해 봐라. 그게 되나. 그냥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한국은 이게 잘 되지 않는 사회다."

"누군가를 종북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맞서 싸우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싸우면 그들의 세계관은 더 강해진다. 세월이 지나고 그 세대가 다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다. 일베 같은 극단적인 사람을 논하지는 말자. 사실 종북이라는 말이 MB 정권 이후 급속도로 퍼졌다. 그 전 남북한이 상호 협력할 때는 종북이라는 표현이 별로 없었다."

"물론 그런 현상을 부추기는 한국 정부 잘못도 있지만 종북 혐오가 심해지는 건 본질적으로 김정은 때문이다. 김정은이 자기 고모부를 숙청하지 않나 포격을 하지 않나 자꾸 극악무도한 일을 벌이니까, 한국에서도 '저런 나쁜 놈을 옹호해?' 이러면서 종북을 더 혐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북 혐오를 없애려면 김정은 체제가 끝나야 한다. 통일이 돼야 한다."

▲ 포럼에는 3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윤환철 사무총장 "권력 체계를 국가 공동체로 혼동하면 안 돼"

"'종북'은 1980년대 대한민국 내 학생 운동권에서 발원한 '주체사상파'가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그 이념인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분파 현상이다. 주체사상은 주사파의 '원조'로 공인된 김영환을 필두로 남한 사회에서 불과 10년 내에 폐기될 정도로 허약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인맥과 여파가 2012년 진보 정당 내부 파동과 2014년 정당 해산을 불러올 만큼 남아 있었다.

종북 노선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김영환과 그 라인이 가장 먼저 이 노선을 버렸다. 이들은 특유의 국가중심주의와 공산주의 사회 변혁 방법론을 그대로 간직한 채, 타도의 대상을 남한에서 북한으로 바꾸는 '전향'을 통해 자신들 지지 기반을 남한 사회의 진보 좌파에서 보수 우파 세력으로 교체해 지배 권력의 일부가 되었다. 전향하지 않은 분파도 비슷한 시기에 진보 정당의 당권 장악과 의회 진출에 성공했으나, 폭력 혁명 노선을 폭로하는 내부 고발을 기화로 정당 해산이라는 극단적인 귀결을 맞았다."

"이런 종북 세력 자체의 명멸보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의 '확대재생산'을 통해 대중들을 종북 대 반북, 국가주의 대 반국가 세력으로 갈라서 비판을 통해 사회 혁신을 추구하는 시민과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정파를 '적'으로 상정하는 구도(scheme)를 짜고, 선거 때마다 재활용하면서 정치권력을 획득하려는 시도다.

그 주체는 현재 여당 세력이며, 참여의 정도와 동기는 다를지라도 이를 조장하는 인사들의 주장은 <조선일보>를 필두로 하는 수구 매체 그룹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이때 동원되는 주요 기제가 대중들의 '공포증(phobia)', '조급증', '혐오(嫌惡)'를 부추기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궤변을 늘어놓거나 존재하는 여론을 무시해 버리거나 명백히 거짓인 내용으로 구성된 논조가 등장한다."

"국가론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國+家라는 복합어는 고대 중국의 천하일가(天下一家)라는 이상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체는 서구 근대 체제에서 유래한 것으로, 'state/status'라는 권력 체제와 매 시대의 권력 체제를 만들어 내는 민족·역사적 공동체(nation, ethno-historical community)로 분석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community가 state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1910년부터 기획되고 저작되어 1919년에 이름을 정하고 1948년 정식 정부를 갖게 된 국체(state)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초 기획은 통일 국체였으므로, 현 세대는 이 기획의 완성을 위해 국체의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state가 아니라 community의 차원에서 협력해야 한다."

▲ 미래나눔재단 윤환철 사무총장. ⓒ뉴스앤조이 구권효

"광화문광장에 가면 이순신 장군상이 있다. 생각해 보면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을 지키려 했던 게 아니다. 조선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조선'과 '대한민국'은 다른 정치체제이고 법통을 이어 온 것도 아닌데, 이 둘을 모두 역사의 흐름 속에 있는 '우리나라'로 파악하는 국가 개념이 있는 것이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을 때 일본 군인들이 총독으로 와서 행정권·사법권·군사권 등 국가가 갖는 모든 권한을 휘둘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조선총독부' 혹은 제국주의 일본을 한반도에 존재했던 '우리나라' 범주에 넣지 않는다. 만일 식민지 시절 일본에 충성한 것도 '애국'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들의 국가관은 '어떻게든 세워진 권력 체계(state)는 모두 국가다'라는 얕은 개념이다.

'애국 세력'을 자처하며 국가 체제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반대한민국 세력', '종북'으로 몰아가는 자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권력 체계(state)로서의 대한민국의 태생과 법통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다. 최근에는 1948년을 건국 기점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아 스스로 무지를 드러낸다. 이런 국가관이 득세하는 사회에서 통일을 논하는 것은 무기력하다."

"왜 이렇게 종북 포비아가 횡행할까. 그것은 포비아의 반대급부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쉬워진다. 누군가를 상대화하고 절대악으로 만들면 나에게는 한없는 정당성과 권력이 생긴다. 종북 세력이 하는 일을 막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게 된다."

"한국교회는 북한에 양가 감정이 있다. 북한은 한민족으로 도와야하는 연민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북한이 하루 빨리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북한에 억류된 임현수 목사나 그 전에 억류됐던 평양과기대 김진경 총장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수십 년간 북한을 드나들며 도왔다. 그런데 이들이 교인에게 후원을 받는 방법은 '우리가 도와주면 북한 정권이 더 빨리 무너진다'는 식이었다. 설교 강단에서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나는 이걸 '독사과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혐오의 감정은 그대로 남겨 두고 오히려 그걸 이용해 북한을 도와 왔다. 그들이 진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후원을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이를 다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걸 모아 놨다가 어느 순간 억류하고 증거를 들이밀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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