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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을 수도 있다" 공감이 만든 추모 물결
[인터뷰] 강남역·구의역, 평범한 청년들이 페이지 만들어 운영하기까지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6.06.23 10:07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매일 쏟아지는 뉴스 중 하나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처음엔 잔물결인 줄 알았는데 파도가 되고 폭풍이 몰아쳤다. 생면부지 사람이 죽었는데, 차가운 줄만 알았던 사람들이 반응했다.

매일 현장에서 고인을 추모했다.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죽은 피해자는 남성 6명 뒤에 들어온 첫 여성이라는 이유로 표적이 됐다. 19세 비정규직 청년은 홀로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 허망하게 세상을 등졌다.

평소 알지도 못하던 고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가슴 아파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일 수도 있었다'라는 공감대 때문이다. 강남역 사건 이후, 그동안 겪었던 차별 이야기를 쏟아 내는 여성이 많아졌다. 비정규직 청년들과 그들의 부모는 꿈도 펴 보지 못하고 사라진 한 청년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현장에서 그를 추모했다.

   
▲ 강남역 10번 출구를 뒤덮고 있던 포스트잇은 이제 없다. 한때 연대의 장소였던 이곳은 이제 평범한 서울 거리가 됐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현장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인터넷에서 추모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페이스북에 개설된 '강남역 10번 출구'와 '구의역 스크린 도어 9-4 승강장' 페이지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두 페이지는 꾸준하게 관련 소식을 올렸다. 매일매일 새로 붙는 추모 포스트잇 내용을 공유하고 현장에 주목받을 만한 일이 생기면 페이지로 알렸다.

특정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은 온라인을 통해 전국 각지로 뻗어 나갔고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가 됐다. 웬만한 운동가, 활동가가 하기 힘든 일을 페이지가 해냈다. 언론이 할 일을 '좋아요'와 '공유'로 만들어 냈다.

6월 21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이지원, 김재근 씨를 만났다. 이 씨는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지를, 김 씨는 '구의역 스크린 도어 9-4 승강장'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지원 씨는 한국어문학을 전공한 대학교 졸업반 학생이다. 재근 씨는 방과 후 학교 강사다.

   
▲ 이지원 씨는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 중 한 명이다. 6월 21일 오후 강남역 10번 출구를 다시 찾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평범한 우리, 페이지 만든 이유

다시 찾은 강남역 10번 출구. 불과 한 달 전 출구 주변을 뒤덮었던 추모 포스트잇은 이제 없다. 훼손 우려 때문에 서울시민청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언제 그런 사건이 있었냐는듯, 주변은 여느 서울 거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지원 씨는 사건이 보도된 날 오후, 알고 지내던 몇 명과 함께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지를 만들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었는데 언론은 가해자가 신학생이었다는 등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사건 현장과 가까운 강남역 10번 출구에 누군가 포스트잇과 국화를 놓고 갔다.

지원 씨는 "강남역 사건을 '여성 혐오' 맥락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우리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우리도 뭔가 하자' 해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단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니라며 조심스러워했다.

재근 씨는 사고가 나고 이틀 후 구의역에 갔는데 현장이 너무 깨끗해 놀랐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가 시민들이 붙여 놓은 추모 포스트잇을 떼는 모습을 보며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일 저녁 페이지를 만들고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였다. 추모객들을 찍고 그들이 남긴 메시지를 페이지에 올려 공유했다.

   
▲ 구의역 시청 방향 승강장에는 아직도 고인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처음에는 안전 때문에 포스트잇을 옮겼던 서울메트로도 커져 가는 추모 물결을 막을 수 없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너는 나다" 공감이 만든 추모 물결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구의역으로 이동했다. 구의역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9호 열차 마지막 부분에 자리를 잡았다. 고인이 사고를 당한 곳은 서울메트로 2호선 시청 방향 9-4 승강장이다. 열차가 역사에 들어서자 형형색색 포스트잇이 눈에 든다.

유독 또래들이 죽음에 반응했다. 강남역 피해자는 23세, 구의역 피해자는 19세다. 사건이 발생하고 약 1주일 동안 매일 저녁 현장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 강남역과 구의역에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고인이 다녔던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들도 교복을 입고 찾아 왔다. 동년배라 더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까. 20~30대가 많이 찾아온 이유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알기 때문이다. 나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내일 아프면 어떡하지. 내일 아파서 일하러 못 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한다. 고인도 고된 노동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하다 떠났을 거라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다."

   
▲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김재근 씨가 오래된 국화 위에 새 국화를 올려 놓았다. 역에서 만난 구의역 관계자는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늘 그랬듯 '정치적' 딱지가 붙었다. 세월호처럼. 특히 강남역 사건은 여성 대 남성 대결 구도로 몰아가면서 '순수한 추모 집회'인가 아닌가 논쟁이 붙었다. 남성 혐오를 조장하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장에 찾아와 피켓 시위를 하고 퍼포먼스를 벌였다.

매일 저녁 진행된 자유 발언대. 차별과 혐오를 견뎌 낸 여성들이 쏟아 내는 말이 넘쳐났다. 운이 안 좋은 사람 정도로 치부되던 여성들 이야기. 꺼내 놓으니 그게 아니었다.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렇게 한 사람의 개인적 경험은 '우리 이야기'가 됐다.

페이지를 운영하며 어려움도 많았다.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 조현병 환자의 우발적인 범행이라는 경찰 공식 발표가 나고 많은 남성에게 공격을 받았다. 페이지 개설을 주도하며 이름이 공개된 동료는 신상이 털렸다. 일부 남성들은 과거 그의 글을 모두 모아 인터넷에 공개하고 조롱했다.

현장에서 물리적인 위협을 받을 때도 많았다. 발언하고 있는 자신에게 무턱대고 "이런 거 왜 하느냐. 이게 순수한 추모냐"며 돌진하는 남성을 주변에서 막아 준 적도 있다. 덩치 좋고 키가 큰 남성들이 코앞에서 앞길을 막고 노려보기도 했다. 위협 앞에서 공포를 느꼈다.

   
▲ 구의역 곳곳에 고인을 추모하는 글이 붙어 있다. 지원 씨도 이날 처음 구의역을 방문했다. 구의역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포스트잇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구의역은 강남역과 상황이 좀 다르다. 사고 직후 서울메트로가 유가족에게 "2인 1조를 지키지 않은 고인의 탓도 크다"고 한 것이 알려져 많은 이들이 분개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9-4 승강장'은 이 부분에 특히 분노하고 사람들의 힘을 모았다. 부당한 노동환경을 알렸다. 매일 밤 고된 노동을 마친 고인 또래 청년들은 빈소와 구의역에 모였다.

재근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고인 부모님께 감사 인사받은 것을 꼽았다.

"부모님이 감사하다고 말씀하실 때 정말 마음을 추스릴 수 없었다. 추모 행진은 항상 고인의 빈소에서 끝났는데 부모님이 늘 나와서 맞아 주셨다. 평범한 사람들이 와서 평범한 사람의 죽음을 추모하는데 자식 잃은 부모가 와서 '고맙다, 감사하다'고 말씀한다. 세월호도 마찬가지지만 자식 잃은 부모가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처지는 아니지 않나."

두 사건에 공명한 이들은 "우연히 살아남았다", "너는 나다"라는 구절을 많이 썼다. 이 이야기를 뒤집으면, 결국 자기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무관한 사람 일에 반응한 것 아닐까. 매일 현장에 나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이 이야기를 듣고, 아픔당한 가족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 구의역에는 아직도 19세 청년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이 포스트잇에 글을 적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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