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416 독자생존'이라는 책 읽기 모임이 있다. 한자로 홀로 독(獨) 자가 아닌 읽을 독(讀) 자를 쓴다. 풀어 말하면 '읽는 자가 살아남는다' 정도 되겠다. 매주 화요일과 주일, 함께 모여 책을 읽는다. 8명 정도가 돌아가면서 한 장씩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눈다.

겉모습만 둘러보면 여느 책 읽기 모임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모인 사람들의 면면, 읽는 책을 살펴보면 조금은 다른 이 모임만의 성격이 파악된다. 책을 읽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전부 기독교인이다. 지금 이들이 읽고 있는 책은 김규항 씨의 <예수전>. 주일에 모이는 것을 보면 교회 같기도 한데 찬양과 설교가 없다.

▲ 김성수 목사는 더불어 책 읽기 운동을 한다. 함께 먹는 밥이 맛있듯이 함께 모여 좋은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보수 교단 목사가 교회 없이 사역하는 이유

책 읽기 모임을 이끄는 이는 김성수 목사다. 김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으로 서울 도심 내 작은 도서관 '호모북커스' 관장이다. 호모북커스는 좋은 책을 혼자만 읽는 곳이 아니다. 그동안 '더불어 책 읽기'라는 모토를 실천하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해 왔다.

김성수 목사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 '호모북커스'라는 도서관을 낸 것은 2011년 6월이다. 그는 호모북커스를 개관하기 전 11년 동안 목회 현장에서 청년들과 호흡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사역한 교회는 한국교회의 모든 문제를 총체적으로 안고 있는 곳이었다. 교회 세습, 부조리, 재정 전횡, 원로목사의 제왕적 리더십. 김 목사는 교회를 뒤로 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다.

처음에는 몇몇 청년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한 선교 단체 사무실을 주일에만 빌렸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교인 가정에서 모였다. 주일에만 모여 교제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김 목사와 교인들은 서울 혜화동에 터를 잡고 교회 겸 도서관을 시작했다.

▲ 서울 대학로에 김성수 목사가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 호모북커스가 있다. 2011년 개관한 호모북커스는 6월 30일이면 정든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아직 갈 곳은 정해지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 목사도 모태 신앙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하면서 생긴 여러 질문에 교회는 답을 주지 않았다. 교회는 오히려 교회 안에만 집중하라고 요구했다. 담임목사 설교만 적게는 10년, 길게는 20년씩 듣는 사람들은 세상과 교회를 분리했다.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이 아닌 좋은 책을 함께 읽는 도서관을 만들려 했다. 함께 먹는 밥은 더 맛있듯이, 혼자 책 읽는 것보다 함께 읽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꼭 기독교인만 오는 것도 아니었다. 길 가던 지역 주민도 들르고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직장 다니느라 바쁠 법도 한데 시간을 쪼개 책 읽으러 오는 사람들을 보며 '독서 피정'을 시작했다. 1박 2일 또는 2박 3일 동안 책만 읽으러 떠나는 여행이다. 조용한 곳에서 따로 또 같이 책을 읽으며 온전하게 글자에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늘 한결같아요.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책을 골랐죠. 일부러 피정을 오는 분들은 신앙과 삶에서 문제의식을 느끼는 분들이었거든요. 어렵게 하나님나라를 외치는 책 보다 최소한 사람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책을 선정해 같이 읽었습니다."

▲ 김성수 목사는 '독서는 저항, 불복종의 시작이다'라는 정희진 작가의 말을 좋아한다. 김 목사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3일 후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한국의 모든 가치

김성수 목사는 '현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자주 책을 읽는다. 세월호 유족의 아픔이 짙게 묻어 있는 광화문광장, 꽃다운 청춘의 목숨을 앗아 간 구의역 승강장, 502명이나 죽었지만 그 흔적조차 없는 삼풍백화점 사고 현장,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현장 등을 찾아다니며 함께 책을 읽었다.

김 목사가 가장 많이 찾은 곳은 세월호 관련 현장이다. 김성수 목사에게 세월호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TV 방송에서 희생자들이 죽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것을 수수방관했다는 생각에 자신이 죄인처럼 느껴졌다.

"참사가 발생하고 3일이 지났는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무작정 차를 몰고 팽목항으로 향했죠. 아이들이 저렇게 죽어 가는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목회하면서 다른 사람 문제에 이렇게까지 뛰어든 건 처음이었어요. 이건 내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도체육관은 이미 아비규환이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김 목사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평소 조용히 책 읽기 모임을 진행하던 김 목사는 이후 주일 설교마다 세월호를 주제로 설교했다. 어떤 본문이 나와도 결론은 세월호였다. 교인들이 지쳐 가는 것이 보였지만 그로서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기존 방식으로 찬양하고 설교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렇게 많은 무고한 생명이 죽었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설교하는 것조차 창피했다.

▲ 세월호 2주기, 호모북커스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시청 앞 서울광장에 모여 책을 읽었다. <우리 모두는 세월호였다>를 읽은 후 2주기 추모 문화제에 참석했다. (사진 제공 김성수 목사)

가나안 성도, 함께 모여 책을 읽자

교인들과 대화 끝에 교회를 해체하기로 했다. 대신 '읽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의미의 '416 독자생존' 책 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416 독자생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복합적인 계기로 가나안 성도가 된 사람이 많다.

김성수 목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임을 이끌고 있다. 꼭 교회 모습을 띄지 않아도 함께 오래갈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꾼다. 주일에 모이면 성경 본문을 함께 읽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삶을 산 사람들의 발자취를 좇는다. 전태일, 권정생, 김교신, 이반 일리치 책을 차례로 읽으려고 계획중이다.

▲ 김성수 목사는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19세 청년 김 아무개 군을 21세기 전태일이라고 표현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죽음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생각에 구의역 추모 공간에 <전태일 평전>을 두고 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1970년 11월 13일, 인간답게 노동할 권리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 김성수 목사는 구의역에서 희생된 청년 노동자가 21세기 전태일이라고 생각한다. 밥 못 먹고 일하는 것, 적절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 모두 예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긴 침묵에 빠진 교회에 김성수 목사는 묻는다.

"교회는 지금 모습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416 독자생존'은 혜화동 호모북커스에서 모임을 진행한다. 김 목사의 가장 큰 고민은 장소다. 6월 30일이면 세 들어 있는 현재 장소를 비워 줘야 한다. 발품을 팔아 이사할 장소를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는 함께 모여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공간만 구할 수 있다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말한다.

호모북커스는 현재 300인 후원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매월 1일, 한 잔 커피값(5,000원 또는 1만 원)으로 호모북커스를 후원할 수 있다. 호모북커스에 관심 있거나 후원을 원하는 사람은 호모북커스 페이지(바로 가기)를 방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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