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P 이야기를 들은 건 벌써 몇 달 전이다. 지인 친구인 P는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다. 지인과 P는 어렸을 때부터 20년 넘게 친구로 지내 왔다. 방학이면 온 가족이 함께 휴가도 가고 서로의 집을 놀러 다녔다. 사는 곳이 달라 늘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친구 사이다.

어느 날, P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지인에게 고백했다. 생전 처음 누군가의 커밍아웃을 들은 지인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거의 평생을 알고 지낸 P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밀어낼 수는 없었다. 지인은 P가 커밍아웃하기 이전이나 지금이나 P와의 관계에 대해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2016 퀴어 문화 축제를 나흘 앞둔 6월 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P를 만났다. 지인과 함께 나온 P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근사한 청년이었다.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우리는 두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P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혼란과 고통스런 날의 연속, 나의 10대

내가 남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느낀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또래 친구들은 여자아이에 관심이 있었지만 나는 남자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같은 반 남자 친구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제일 먼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태 신앙인으로 동성애는 죄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교회에서 죄라고 하는 그것과 같은 것일까 두려워 얼른 마음을 접었다.

중학교 3학년, 친구를 좋아하는 감정을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었다. 그 친구가 좋으니 어떻게든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같이 시험공부하고, 숙제하고, 밥 먹고…나는 친구를 애정의 감정으로 좋아하는데 이 친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일종의 자기혐오가 시작됐다. 나는 왜 하필 이렇게 태어나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나 하는 괴로움이 컸다.

▲ 6월 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P를 만났다. P는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4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청소년기는 계속 나를 부인하는 시기였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남자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일 거야'라고 생각했다. '(동성애자가) 아닐거야, 나도 언젠가는 여자를 좋아할 수 있게 될 거야' 되내이면서도 결국 마음이 끌리는 건 그렇지 않으니 힘들었다.

이런 내가 싫었다. 이렇게 태어난 것이 문제니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청소년기에 자살 시도를 참 많이 했다. 지금 보면 손목이 성한 곳이 없다. 좋아하는 친구는 날 안 좋아하고, 난 왜 이 친구를 좋아해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괴로워하다 '나는 세상 어디에서도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손목을 그었다. 대학교 들어갈 때까지 이 패턴이 반복됐다.

동성애자로서 자긍심을 심어 준 신학 공부

대학에 가기 전부터 신학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동성애를 정죄하는 교회와 나 사이에 접점은 없어 보였다. 점접은커녕 충돌 지점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학부에서 처음 신학을 접했다.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신학 공부는 나에게 희망을 주었고 믿음을 줬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신학이 약자를 위한 학문인 것을 깨달았다.

신학은 그동안 반복돼 왔던 자기혐오를 끝내고 사람으로서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 그렇다고 동성애를 긍정하는 퀴어신학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다른 신학생이 배우는 일반적인 신학, 보수적인 신학을 배우면서 나를 긍정하게 됐다. 퀴어신학이라는 프리즘으로만 나를 조명했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났을 것 같다.

학교에서 신학을 배우며 자긍심이 높아졌지만 커밍아웃을 하지는 못했다. 동성애를 주제로 토론을 시작하면 적극적으로 말하기보다 피하기 바빴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숨기만 하면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싸워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날 위해 싸워 주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커밍아웃을 시작했다.

고맙게도 내가 커밍아웃한 친구들은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동안 동성애에 궁금했던 것들을 조금씩 질문하면서 접근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아예 언급을 안 하는 친구도 있다. 친구들 모습을 보면 내가 아니었어도 동성애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2016 퀴어 문화 축제에 '혐오는 정치가 아니다'라는 현수막이 등장했다. 청소년 P는 남성을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혐오해 왔다. 자신이 남성에게 느끼는 감정을 상대방도 동일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여전히 아웃팅의 두려움은 있다. 한번은 친구가 "후배 두 명이 네 이름 얘기하면서 '그 오빠 게이다. 더럽다'고 얘기한 걸 들었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난감했지만 우선 아니라고 했다. 학교와 교단에서 성 소수자와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익히 알기 때문에 모두에게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드러내 놓을 수는 없다.

한 번 이렇게 아웃팅의 위협이 오면 다시 소극적으로 변한다. 두려움에 학교를 다니는 것도 무서웠다. 이럴 때 큰 도움이 된 친구들이 있다. "동성애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그대로 살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주장한 선배에게 동성애자 입장을 강력하게 대변했다. 결국 "너 동성애자냐?"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지만 친구들이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서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아빠에게는 한 번, 엄마에게는 네 번

나는 PK, 그러니까 목회자 자녀다. 그래서 내가 신학교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에게는 커밍아웃을 했다. 부모님은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신다. 맨 처음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한 게 16살이다.

같은 반 남학생이 좋다고 고백했을 때 아버지는 나를 잡아 놓고 때리거나, 귀신이 들렸다거나, 치료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그 시기에는 혼란이 올 수 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해 보자" 하셨다. 당시 나는 그 말을 "나중에는 바뀔 것이니 지금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로 받아들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전혀 아니었다.

아버지는 한 번의 커밍아웃으로 나를 받아들여 주셨다. 동성애자가 자신을 부정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부모도 마찬가지다. 부모도 자녀의 성 정체성을 처음에는 부정한다. 자녀가 자기를 인정하는 것보다 부모가 자녀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아버지는 공부하는 목회자로서 이미 다양한 신학과 학문을 통해 동성애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아셨던 것 같다. 더 이상 내 정체성을 묻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에게는 수차례 나의 상태를 확인시켜야 했다. 벌써 서너 차례 커밍아웃했다. 어머니는 워낙 보수적인 신앙 환경에서 자라셨고 그나마 아버지를 만나서 조금 이성적인 신앙을 접하셨다. 그럼에도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어하셨다. 결과적으로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신다.

▲ 자기 혐오에서 벗어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신학이었다. 그는 대학교에서 다양한 신학을 배우면서 자존감을 높였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공개적으로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고 내가 나로서 즐겁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내가 너를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현실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네가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그건 너의 몫"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에게는 이 말씀이 "너가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계속 억압받는 채로 살아갈 것"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한다.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느니 그냥 속이며 사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선택이고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동성애자 중에는 가족을 속이기 위해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배우자, 배우자의 가족,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이 문제를 확실히 정리하지 못하셨다. 언젠가 어머니가 교회에서 보내신 동성애 반대 문자 때문에 괴로워하시니까 어머니 형제 중 한 분이 "차별금지법 반대한다고 나가서 시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안타까운 사람들이다. 성 소수자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이었으면 반동성애 운동하는 사람들처럼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우셨다. 어머니 주위 사람은 동성애에 호의적인데 정작 자신은 아들이기 때문에 못 받아들이시니까 그 현실이 너무 속상해서 우신 것 같다. 다만 그 이야기를 전해 주시면서 엄마가 처음으로 '동성애', '게이'라는 단어를 쓰셨다.

어머니가 그 단어를 입에 올리신 건 커밍아웃하고 10년도 더 지났을 때였다. 물론 어머니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하지만 내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부모모임'에 가 보시라고 강권할 수도 없고,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를 보시라고 할 수도 없다. 어머니를 도와드린다고 하면서 내가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 2016 퀴어 문화 축제 퍼레이드에서 한 외국인이 사물놀이패의 장단에 맞춰 춤추고 있다. P는 작년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하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동성애, '예스'와 '노' 사이에 '제3의 길'이 있을까

기독교가 동성애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 잘 안다.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는 사랑한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안다. 기독교인들은 윤리적으로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영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으니 우월해. 선민이야'라는 의식이 있다.

나는 우리 사회에 완벽히 모든 면에서 '메이저'에 속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안에 따라 강자였던 사람이 약자가 될 수도 있고, 약자였던 사람이 강자가 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자기 약점을 감추며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 소수자는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 없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약점이 되고 그래서 약자가 된다. 약자에게 너는 약자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니라고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동성애에 대해 '예스'도 아니고 '노'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접 나서 행동으로 반대하지 않고, 그들을 정죄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동성애는 죄'라는 입장에 변함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고 확신한다.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을 왜 당신들이 먼저 판단하느냐고 묻고 싶다. 자신이 이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아니고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죄 아닐까.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예수님은 어떤 사건을 보고 고개를 돌리고 지나가신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저런 일에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소한 일에 의견을 표명하시고 발언하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도 그러셨는데 우리가 논란거리를 놓고 그냥 모른 척 지나간다는 것은 당시 유대교 제사장들이 하던 행동과 똑같지 않을까.

▲ 퀴어 문화 축제는 숨어 살고 있던 성 소수자가 자긍심을 드러내는 자리다. 성 소수자도 이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고 같은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만나는 자리기도 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2015년 퀴어 문화 축제 참여 인원이 역대 최고였다고 들었다. 나는 퀴어 문화 축제에 아직 한 번도 안 가 봤다. 학교 친구들을 만날까 두려웠다. 하지만 올해는 서울광장에 가 보려고 한다. 퀴어 문화 축제에 한 번도 안 가고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것 같다. 현장에서 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할 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퀴어 문화 축제가 선정적이라고 욕도 많이 먹지만 그건 일부 모습이다. 퀴어 문화 축제는 숨어 있는 성 소수자에게 힘을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숨어서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당신 혼자 이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다' 알려 준다. 이 사회에 당신과 같은 범주에 있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말해 주는 것이 퀴어 문화 축제다.

학교를 졸업하면 인권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싶다. 아직 대학원을 갈지 현장에서 운동가로 활동할지 마음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인권 운동을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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