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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대신 이웃 사랑하게 된 남자
노숙인에서 노숙인 돕는 사람으로…바하밥집 큰형님 이야기
  • 최승현 기자 (shchoi@newsnjoy.or.kr)
  • 승인 2016.06.1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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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노숙인 생활에서 벗어나 이제는 노숙인을 돕는 단체 바하밥집 '큰형님'으로 불리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사진 제공 바하밥집)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소주병과 신문지를 친구 삼아 거리를 배회하던 30년 경력 노숙인이 술을 끊고, 일을 하고, 예수를 믿었다. 60이 넘은 나이지만 그는 아직 젊다. 6월 11일, 200명 하객의 축복 속에서 생애 첫 결혼식을 올렸다. 신설동 바하밥집(김현일 대표)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큰형님' 이야기다.

말과 글로 표현하기에는 벅찬 인생을 살았다. 17살에 칼을 부려 처음 감방을 경험했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그는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그에게 교도소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알코올에 기대 살았다. 하루에 소주 스무 병을 먹고 길거리에 뛰어들어 지나가는 차를 세웠다. 동네에서는 숱하게 싸움을 일으켰다. 신설동·제기동 일대에서 '바닥 경력'을 쌓은 그를 쉽사리 건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본인 역시 노숙인이었던 김현일 대표. 누구보다 '마음으로' 노숙인들 상황을 잘 알았다. 노숙인들이 노숙을 잘할 수 있도록 먹을 것을 주고 덮고 잘 수 있는 것을 주자는 취지에서 '바나바하우스밥집', 바하밥집을 만들었다. 큰형님은 바하밥집이라는 이름을 만들기도 전, 컵라면 들고 노숙인들을 만나러 나간 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바하밥집 김현일 대표는 그를 처음 만난 날, 2009년 1월 24일 밤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청송교도소에서 7년간 보호감호를 받고 갓 출소한 큰형님은 정릉의 한 다리 밑에 있었다.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그는 신문지 한 장을 덮고 자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 교회에서 배운 가락으로, 귀신 들린 줄 알고 큰형님을 향해 대적 기도를 했다. 그러나 40년 인생사 들어 보니 귀신을 탓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가 처음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남은 가족은 없었다. 사회를 향한 분노와 절망을 건전한 방법으로 풀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어르고 달래서 고시원 방을 하나 내주었다. 같이 일도 해 보자고 설득했지만 큰형님은 방을 놔두고 거리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가 또 사고를 쳤다. 2012년, 또다시 징역 1년 5개월을 선고받고 원주교도소에 수감됐다.

생전 처음 받는 환대, 큰형님이 변했다

막장까지 내려가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던 큰형님이 변하기 시작했다. 김현일 대표는 구치소로 면회를 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며 대성통곡을 했다. 아무 말 없던 큰형님은 얼마 후, 성경을 넣어 달라 부탁했다. 느낀 점이 있는 듯했다.

기독교인들의 헌신이 변화의 불씨가 됐다. 출소 후 두 번 대수술을 받았는데, 투병 기간 중 생면부지의 나들목교회 교인들이 큰형님을 찾아왔다. 청년들이 큰형님을 위해 롤링 페이퍼를 써 온 게 큰형님 마음을 찔렀다. 생전 처음 받아 보는 환대였다. 큰형님은 곧 나들목교회와 바하밥집 공동체 일원이 됐다.

2014년 나들목교회에서 신앙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 교회는 그날 울음바다가 됐다. 세례에 앞서 김형국 목사가 큰형님의 60년 인생사를 5분으로 압축해 전했다. 교인들은 5분만 들어도 그 굴곡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손에 물을 머금고 안수하는 김형국 목사도, 큰형님 뒤에서 등에 손을 올린 김현일 대표도, 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함께 울었다.

도움받고 살던 큰형님은 이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변했다. 거리를 나돌던 사람이 바하밥집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했다. 바하밥집 '조리장' 역할을 맡아 다른 노숙인들에게 줄 밥을 만든다. 김현일 대표는 '큰형님'이라는 존재가 공동체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자랑했다.

그러다, 마침내 인생의 반려자를 찾았다. "가정을 만드는 게 좋다"라고 권면하면 "이 나이에 무슨 결혼이냐"며 손사래 치던 큰형님. 어느날 김 대표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 생겼다"고 쑥스럽게 고백했다.

형수도 큰형님처럼 집보다 길거리 생활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큰형님은 김 대표에게 형수를 가리켜 "처음으로 '지켜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몇 개월의 연애 끝에 남은 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큰형님은 1955년생, 우리 나이 62세다.

바하밥집 공동체 식구가 마을 경사를 챙기듯 결혼식 준비에 달라붙었다. 웨딩 촬영, 드레스 등 처음부터 끝까지 챙겼다. 밥도 안 주는데 축의금은 내야 하는 결혼식, 양가 친척이 아무도 없는 결혼식에 200명이 모였다. 보문동 동장, 동대문구청 직원도 와서 큰형님 결혼을 축하했다. 공동체 식구들은 축가로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불렀다.

   
▲ 큰형님과 바하밥집 김현일 대표. (사진 제공 바하밥집)

누군가를 돕는 기쁨, 누군가를 돕는 의미

상전벽해, 개과천선 등의 수식어가 붙는 전형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김현일 대표는 모든 노숙인이 이렇게 변화할 수 있다고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오히려 "정말 특이한 사례다. 하나님이 그간 우리가 해 온 노숙인 사역의 열매로 주신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노숙인이 변화하고 가정까지 세우는 건, 마치 상처 난 부위에 식염수를 들이붓는 것 같은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감내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의 의미와 기쁨, 김 대표가 큰형님을 통해 거둔 열매다. 평생을 도움받으며 살던 사람이 누군가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도소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바하밥집 '인문학 교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또 다른 큰형님을 위해 정성껏 밥을 짓는다.

김현일 대표는 아직 멈출 마음이 없다. 다시 다른 큰형님을 찾는다. 거리에서 만날 그 누군가가 자신에게 찾아온 인생의 기회, 드리워진 끈을 부여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흔히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큰형님은 6월 13일 제주도로 허니문을 떠났다. 그의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60이 넘어 처음으로 수줍게 결혼 선서를 한다. 큰형님의 특별한 결혼식이 6월 11일 열렸다. (사진 제공 바하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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