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2016 퀴어 문화 축제(퀴어축제)가 6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Queer I Am, 우리 존재 파이팅!'이라는 주제로 열린 17번째 퀴어축제는 역대 최대 규모 인파(주최 측 추산 5만 명, 경찰 추산 1만 명)가 몰렸다.

행사 도중 두 차례 소나기가 내렸고, 사방에서 찬송 소리와 기도 소리가 들렸지만 참가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90여 개 부스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서울광장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몇 명씩 무리 지어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동성애자들만의 잔치'라는 기독교인들의 말이 무색하게 일반 시민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이성친구와 함께 놀러 온 시민, 가족 단위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함께 노래하고 떡과 포도주 나눈 기독교인들

행사장 입구는 진입을 시도하는 일부 기독교인 때문에 경찰이 "동성애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묻고 들여보내기도 하는 등 소란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성 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기독교인들도 제법 있었다. 이들은 부스를 꾸미고 공연에 참석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퀴어축제에 참가했다.

기독교인들은 축제 개막을 알리는 첫 번째 공연을 맡았다. '아멘더레인보우' 합창단은 찬송가 '예수 사랑하심은' 후렴 부분과 '사랑이 이기네' 두 곡을 불렀다.

사회자는 "동성애자 혐오 세력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인데, 그들과 달리 우리를 생각해 주고 함께해 주는 기독교인들도 있어서 정말 뜻깊다"고 말했다.

열린문공동체교회와 로뎀나무그늘교회, 섬돌향린교회(무지개예수),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는 부스를 설치했다. 이들은 동성애를 바라보는 주류 기독교의 시선과는 달리, 이들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인정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했다.

로뎀나무그늘교회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문구가 적힌 무지개색 팔찌를 하나씩 나눠줬다. 한편에는 시민들이 기독교에 바라는 것들이 포스트잇으로 붙여져 있었다. "하나님은 퀴어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무지개예수 부스는 성찬식을 열었다. 모인 이들은 떡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4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성찬에 참여했다.

     

정당에서 대사관까지 다양한 부스들 "성 소수자 권리 지지"

부스는 성 소수자 단체뿐 아니라 대학생, 대사관, 기업, 정당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구글은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안드로이드가 그려진 티셔츠를 판매했고, 미국 대사관은 무지개색 미 대륙이 프린트된 에코 백을 내놨다. 지난해에 이어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도 행사장에 나타났다.

그래픽 디자인과 출판업을 하는 6699press는 이번 행사에 '노하라 쿠로'라는 일본 만화가의 작품이 담긴 책과 엽서를 판매하고 있었다. <여섯>이라는 책에는 기독교인 동성애자가 쓴 일기, 이성애자에게 쓴 편지 등 내밀한 고백과 동성애자의 사랑을 다룬 만화가 담겨 있다.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트워크'는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률 지원을 돕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헌법재판소가 김승환-김조광수 부부의 동성 결혼 위헌 신청을 각하한 것을 두고, 다음에는 두 쌍의 부부가 혼인 신청하고 이것이 기각되면 네 쌍의 부부가 다시 혼인을 신청하는 식으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한국성소수자연구회는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 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들은 특히 일부 기독교인들에 대해 "성 소수자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비전문가들이 나와서 퍼트리고 있다. 해외에만 나가도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궤변들이다. 말로만 할 게 아니라 논문을 써서 국제사회에 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교 동아리 활동도 눈에 띄었다. 이화여대 성 소수자 인권 운동 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는 성가대 복장을 하고 성경 구절을 피켓으로 제작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일종의 '미러링'을 한 셈이다. 이들은 "두 조각으로 만든 옷을 입지 말라"는 레위기 말씀과, "네 이웃이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 하지 말라"는 잠언 말씀 등을 인용했다.

미션 스쿨인 서울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만든 '서울여대성소수자인권모임 SWUQ'학생들도 부스를 차리고 자체 제작 배지를 판매했다. 이들은 학교 차원의 부당한 제재가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미션 스쿨이라는 점 때문에 아무래도 활동하는 것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행사는 '퀴어축제의 꽃'이라 불리는 퍼레이드로 마무리됐다.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입구역과 명동역을 거쳐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2.9km 코스였다. 참석자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거대한 '강강술래'를 돈 뒤 행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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