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나가던 목사가 모든 조건을 뒤로 한 채 교인들과 귀농했다. 최재호 목사와 교인들이 일군 '외토하늘가마을'에는 공동 작업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교인들은 한창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100년 역사, 재적 700명 규모의 부산 대지교회. 2011년 이 교회 담임목사가 부임 8년 만에 갑작스레 교회를 떠났다. 이 목사는 장신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에서 박사과정(coursework)까지 마친 인재였다. 떠날 이유는 없었다. 설립 100주년 행사도 잘 치뤘고, 큰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소위 '잘나가는' 목사가 경남 합천군 산골 마을로 들어갔다. '귀농'한 것이다. 서울에서만 계속 자라 참깨와 들깨 구별도 못 하던 목사가 귀농하겠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 이 결정에 교인 13가정이 따라 나왔다. 의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빌딩형 교회로는 안 돼

이유를 들어 보려고 외토하늘가교회 최재호 목사를 만나러 5월 26일 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를 찾았다. 합천은 경남에서도 내륙 지방이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로 4시간여를 달려 산청 톨게이트로 나온 후, 거기서도 1시간 가까이 더 들어가야 한다. 동네에 도착하니 한쪽 귀퉁이에 '외토하늘가마을'이 있다. 첩첩산중에 최 목사가 이룬 공동체는 어떤 곳일까.

1만 평 부지에 큰 비닐하우스가 한 동, 교회 건물로 쓰는 비닐하우스가 또 한 동, 귀농해 사는 사람들 집 서너 채가 들어서 있다. 산 뒤로는 밤나무가 무성하고, 반대편 산에는 매실나무가 우거졌다.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1,000평 넘는 공간에 방울토마토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2011년 말, 최 목사는 8년간 사역한 대지교회를 사임하고 경남 합천으로 들어왔다. 당회 장로들에게 귀농을 선언한 것이다. 처음에는 교인들에게 교회를 이전하고 시골로 귀농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100년 전통 교회 교인들에게 새로운 변화는 받아들이기 쉬운 게 아니었다.

"변화가 쉽지는 않죠. 오랜 기간을 함께한 교회고,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세운 교회를 어떻게 떠나겠어요."

짧은 말속에 변화를 원하는 목사와 전통을 지키려는 교인들 사이에 긴장이 느껴졌다. 최 목사의 거듭된 의사 표현에, 결국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교회를 나와 귀농하기로 했다. 언성을 높인 건 아니었다. 최 목사 표현을 빌리자면 "하도 귀농 얘기를 하니 그냥 서로 마음 편하게 '그럼 목사님 가시라'며 보내 준 것"이라고 한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최재호 목사는 딱히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귀농을 염두에 두고 살아 왔다고 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한국교회 문제에 '귀농'이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1992년 충신교회에서 부목사를 할 땐데,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때 벌써 교회학교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교실형 시스템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죠.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침체돼 있고요.

교회학교 문제뿐 아니라 노령화 문제도 심각했어요. 교회가 노인 문제에 손을 못 써요. 노후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대안이 없어요. 가정 문제도 그래요. 제가 미국에서 상담을 공부하면서 부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체감하게 됐는데, 결론적으로 부부가 건강하게 잘 서 있지 않으면 모든 게 다 문제가 되더라고요.

이제 빌딩형 교회로는 이런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세상 환경은 갈수록 좋아지는데, 교회가 아무리 시설 잘 해도 못 따라가요. 시설 때문에 이미지 좋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시간 지나면 또 바꿔야 하고. 온통 도시 교회들이 거기다가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예수 마을', 삶을 나누고 교우도 돌보는 공동체 형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오래전부터 귀농을 고민해 왔습니다."

▲ 비닐하우스 5동을 이어 붙인 거대한 하우스에 처음에는 '백향과'를 심었다. 농사가 잘되고 홍보도 잘됐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이번에는 새로운 품종의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공동체 이름은 '하늘 가치를 실현한다'는 뜻을 더해 외토하늘가마을로 정했다. 부목사 1가정과 교인 3가정이 먼저 합천으로 내려왔다. 최 목사를 따라나선 다른 교인들도 주말에는 부산에서 내려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농사일을 돕는다.

교회도 비닐하우스 한 동을 개조해 만들었다. 건물에 연연하지 않다 보니 자유로운 점이 많다. 강대상도, 의자도, 피아노도 주위 교회들이 안 쓰고 버리는 것들을 모아다가 수리해서 쓰지만,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매일 얼굴 맞대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로 쓰는 공간도 어딘지 모르게 허술해 보이지만, 최 목사는 "밤에 빗소리 들으면서 함께 대화하고 자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감수성을 돋울 수 있는 공간이라고 자랑했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농사가 잘돼야 추구하는 가치를 잘 이룰 수 있다. 무턱대고 호미와 가래만 들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최 목사는 전형적인 농사보다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1,000평 하우스 안에 재배 중인 방울토마토도 국내에 없는 새로운 품종이다. 5월 말부터 대구 등지에 납품을 시작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농사했던 '백향과(Fashion Frutis)'도 국내에서 찾기 어려운 과일이다. 최 목사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이 과일을 직접 키워 보자며 앞장서 시작했다. 반응은 좋았다. 2013년에 KBS '6시 내고향'에도 나오는 등 유명세를 탔다. "우후죽순 전국에 생겨난 백향과 농가들에서 여기는 꼭 한 번 다녀갔다"는 '전국 1호' 자부심도 있다. 수익도 제법 괜찮았다고 설명했다.

"대규모로, 좋은 시설 갖춰서 하지 않으면 자립이 어렵다"는 최 목사 말에는 그간 생업으로서의 농사를 위해 고민한 흔적이 녹아 있었다. 때가 되면 뒷산 우거진 밤나무와 매실나무에서도 열매를 따 상품을 만들어 내다 팔 계획이다.

▲ 교회 건물에 연연하지 않으니 자유로운 점이 많았다. 하우스 한 동을 개조해 교회를 만들고, 남들이 내다 버린 성구들을 갖다 놓고 예배를 드린다. 은혜 받는 데는 아무런 문제없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잘 배워서 남 주는 귀농 목회

합천에 내려가기 전, 외토하늘가마을을 검색하는 중 눈에 띄는 글이 하나 있었다. "귀농해서 평생 함께 사역할 동역자 가정을 찾습니다"라는 청빙 공고였다. 귀농할 마음이 있고, 평생 예수 마을을 세우고자 하는 비전이 있는 30~40대 목회자를 모집한다고 적혀 있었다.

1~2년 하기도 어렵고 서러운 부목사를 평생 하라니? 최재호 목사에게 이게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보니까 부목사들에게는 교회가 직장이에요. 담임목사로 승진해야 하는 위치인 거죠.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더라고요. 교회가 그런 건 아니지 않나, 그냥 사는 건데. 가족처럼 살면 되는데… 평생을 함께할 부목사를 찾은 건 이 마을을 키워 나갈 젊고 유능한 2세대 가족을 찾는 거예요."

최 목사는 외토하늘가마을이 '최재호 왕국'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자신이 일궈 놓았다는 이유로, 이곳이 자신의 바벨탑이 되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새로운 사람이 와서 이 일들을 잘 이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4년 동안 3명의 부목사가 거쳐 갔지만 농사짓고 사는 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외토리를 떠났다. "다른 프로그램 없이 농사만 지어야 하는데, 현실 부딪히는 걸 못 견디는 것 같더라고요."

외토하늘가마을을 위해서도 다음 세대를 이끌 목회자가 필요하지만, 한국교회 전체를 봐서도 귀농할 목회자가 절실하다는 게 최재호 목사 생각이다. 부목사 얘기는 귀농 목회자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옮겨 갔다.

"교회는 산업화가 아니라 농업화를 좇아가면 좋겠어요. 농업 속에 생명이 있어요. 산업화 따라가 봐야 현대인들 만족 못 시켜요. 한국 농업을 한국교회가 책임진다면, 도시 교회 50%가 농촌으로 온다면…"

목회자들이 건물 짓는 데 에너지 쏟지 말고, 일손 부족하고 노인밖에 남지 않은 농촌에 들어오라는 얘기였다. 농업기술도 배우고 기술센터와 군청에 들락거리는 행정적인 일도 도맡으면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면 정말 보람찰 것이라고 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노하우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다.

최 목사가 걸고 있던 타이틀이 많았다. 서울 사람, 유학파, 중형 교회 목사직도 모두 귀농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빚을 내서 땅을 사고 고된 농사를 매일 이어 가지만, 최 목사는 지금이 정말 좋다고 했다. 수년 동안 꾸준히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 사진을 올리며 농사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 1만 평 부지를 함께 둘러보며 여기는 수영장, 이곳은 카페, 또 저쪽에는 무슨 농사를 할 것이라고 쉴 새 없이 설명했다. 최 목사 입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아닌, 삶이 중심 되는 목회와 공동체를 꿈꾼다"는 최재호 목사는 도시 교회 목회자들에게 수차례 말했다. "교회 건물 지으려 하지 말고, 그럴 돈 있으면 5억 원만 들고 시골 와서 농사지으세요. 정말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 최 목사의 귀농은 교인들 없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합천으로 내려오지 않은, 부산에 사는 교인들도 주일에 함께 모여 예배하고 농사를 짓는다. 부산 교인들도 장기적으로 합천에 들어올 생각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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