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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가슴녀'와 '한남충'으로 본 한국 사회
청어람ARMC 월례 강좌…"한국에서 여성은 이미 혐오 대상"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6.06.05 21:43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2012년 4월 30일 포털 사이트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압구정 가슴녀'가 떴다. 1, 2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하루 가까이 상위권에 랭크됐다. '압구정 가슴녀'를 검색하면 언론이 쏟아 낸 관련 기사만 수십 개에 달했다. 제목에는 꼭 '압구정 가슴녀'가 들어갔다.

'압구정 가슴녀'는 허구 인물이다.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는 일본 도쿄대 우에노 치즈코 명예교수의 책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은행나무) 서평 기사에 "'압구정 가슴녀'와 '분당선 대변녀', 공통점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정작 기사에는 안 나오지만,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 '압구정 가슴녀'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는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타고 퍼져 나간다. 개똥녀를 시작으로 된장녀, 군삼녀, 루저녀를 거쳐 김치녀가 탄생했다. 일베가 만들어 낸 신조어 김치녀는 특정한 행동 때문이 아니라 그냥 여성이기 때문에 개념이 없다는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많이 하는 '김여사'도 마찬가지다.

   
▲ 6월 3일 청어람ARMC가 주최하는 혐오 시리즈 세 번째 강좌가 열렸다. '왜 여성 차별은 여성 혐오로 악화되는가?'라는 주제로 손희정(맨 왼쪽), 권김현영 씨를 강사로 초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는 영화연구가 최은 씨(맨 오른쪽)가 맡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런 상황에도 "여성 혐오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좋을 법한 강좌가 열렸다. 6월 3일 청어람ARMC(양희송 대표)가 '왜 여성 차별은 여성 혐오로 악화되는가'라는 주제로 월례 강좌를 열었다.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여성 혐오를 연구하는 손희정 씨와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 씨가 강사로 초대됐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강남역 살인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까닭인지 강의 장소는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찼다. 4월부터 이어져 온 이슬람·동성애 등 '혐오'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참석자들도 눈에 띄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엿볼 수 있는 행사였다. 강의는 각각 30분 예정이었지만 강사들은 준비한 이야기를 다 풀어내지도 못했다. 7시 30분에 시작한 강의는 9시 30분에 끝났다. 객석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먼저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강사들 말에 경청했다.

대중문화에 스며든 '여성 혐오'

먼저 손희정 씨가 '여성 혐오, 누가 왜?'라는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대중문화에서 어떤 식으로 '여성 혐오'가 나타나고 소비되는지 연구해 왔다. 그는 불법 사이트 '소라넷', <맥심>, 장동민 사건 등을 예로 들며 이미 대중문화 안에 일련의 젠더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손희정 씨는 주로 대중문화에서 어떻게 '여성 혐오'가 나타나는지 연구했다. 그는 SNS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여성 혐오 양상을 소개하며 '여성 혐오'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들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온라인에서 이미 여성 혐오가 판치고 있기 때문에 '강남역 살인 사건'을 두고 '혐오'라는 단어가 적정한지 아닌지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봤다. 이미 여성들이 혐오받은 경험을 쏟아 내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언어로 페미니즘을 표현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손 씨는 한국은 '여성 혐오'의 특수성을 가진 나라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가부장제, 신자유주의,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 혐오를 강화하는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압구정 가슴녀'의 예를 들며 한국에서 '여성 혐오'는 실체가 없고 이미지에 근거하지만 여러 요건과 결합해 강력한 실효성을 띤다고 했다.

'여성 살해'로 이어지는 '여성 혐오'

두 번째 강의를 맡은 권김현영 씨는 '어떻게 혐오에 맞설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먼저 '여성 혐오(여혐)'는 '여성 살해(femicide·페미사이드)'로 이어진다고 했다. 페미사이드는 우리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수많은 페미사이드에 대해 여성 혐오 때문이며 우리 사회 책임이라고 외쳐야 한다. 다른 나라는 실제로 그렇게 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2015년 아르헨티나에서 페미사이드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더 이상 여성들을 죽이면 안 된다고 외쳤다.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도 '페미사이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글을 올리며 행렬에 참여했다.

국가와 사회 책임이라고 하면 거기에 호응하면 된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다 여성 혐오 때문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 책임을 인정하면 사회 정책 등 공공적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까 여성 혐오 때문이 아니라고만 한다."

권김 씨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는 다른 혐오와 차이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어떤 대상을 혐오하기 위해서는 특정 집단을 멸시하면서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비인간화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독일 나치 세력이 유대인을 기생충이나 쥐 등으로 묘사하고 '박멸', '최종적 해결', '물리적 해결'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하고 혐오하며 살해하는 것을 정당화했다고 전했다.

   
▲ 권김현영 씨는 유쾌하고 호탕한 말투로 '여성 혐오'가 어떻게 '여성 살인'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했다. 그는 여성 살인 즉 페미사이드(femicide)는 전 세계에서 목격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다만 여성 혐오 살인인 것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 하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국가도 사회도 '강남역 살인 사건'이 '여성 혐오' 때문에 일어난 일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비인간화조차 필요 없는 존재다. 한국에서는 여자라고 구별하기만 하면 비인간화 과정 없이 바로 혐오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남성은 그렇지 않다. '한국 남자 벌레'라는 뜻의 한남충은 남자임과 동시에 벌레라고 따로 비인간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권김현영 씨는 혐오에 맞서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그는 국가가 여성 혐오 현상을 전혀 책임지지 않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의미 있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는 구호로 국면을 전환해야 혐오에 맞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또 한 가지 강조한 것은 폭력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무서워하지 말고 당황하지 말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 놓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예를 들어 설명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면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상대방을 향해 '뭐라고 했느냐'고 큰소리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가해자의 행동 자체를 명확하게 묘사해서 되묻는 것도 해법이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묻는 건 하등 도움이 안 된다.

가해자에게 소속과 이름 등 기본적인 정보를 반복적으로 물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도시에서 안전한 공간 중 하나가 편의점이다. 문제가 생기면 크고 환한 곳으로 가 주변 사람들에게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요청하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인지 이날 강의에는 약 120명이 찾아왔다. 그중에는 남성도 눈에 띄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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