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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억류 735일, 그가 던진 말
케네스 배 <잊지 않았다>(두란노)…"북한 외면치 않으면 결국 하나님께 돌아와"
  • 최유리 (cker333@newsnjoy.or.kr)
  • 승인 2016.06.0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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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2012년 11월 3일 한 남자가 북한에 억류됐다. 국가 전복 음모죄로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받았다. 억류된 지 735일,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선교사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북한 라선시에 여행사를 세우고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북한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사건은 18번째 북한에 들어갈 때 기독교 정보가 담긴 외장 하드를 실수로 반입하면서 터졌다. 북한 당국은 그가 기독교를 전파하고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했다고 판결했다.

6월 1일, 당시 상황을 기록한 책 <잊지 않았다>(두란노)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그는 책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북한에서 735일간 억류된 케네스 배 선교사가 당시의 상황을 담은 책 <잊지 않았다>(두란노)를 출간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하나님은 날 잊지 않았다

케네스 배 선교사는 라선시, 평양에서 북한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라선시에서는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조사를 받았다. 재판받은 후에는 노동교화소에서 아침 6시에 기상해서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주 6일간 노동했다. 농사짓고 도랑 파고 석탄 창고에서 석탄 옮기는 일을 했다. 매일 중노동을 하다 보니 2~3달 만에 체중이 27kg 감량됐다. 당뇨와 영양실조로 2년 중 1년은 병원에서 생활했다.

곧 나갈 수 있을 거라던 조사관들 장담과 달리, 그는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정부도 너를 잊었다",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 환갑이 되어야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마음이 어려웠지만 억류 초기부터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내가 너의 구원자가 된다"는 메시지를 기억하며 믿음을 지켰다.

2012년 12월 12일 광명성 3호를 발사하던 날은 북한 억류 중 가장 어려운 날이었다. 실낱 같지만 억류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이 줄곧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사일이 발사되자 "미국에 미사일을 쏘자"는 반응이 나왔다. 그런 모습을 보며 당장 집에 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너와 함께하고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는 말씀을 새기며 소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케네스 배 선교사는 책 제목인 '잊지 않았다'처럼 북한을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통제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북한 주민은 외부 소식에 둔감하다. 남한 경제가 북한보다 40배 이상 크다거나, UN 사무총장이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해도 믿지 못한다. 아직도 한국과 미국은 1%만 잘 살고 나머지는 어려운 생활을 한다고 알고 있다. 본인은 2년을 살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이 체제에서 평생 살게 된다며, 외부에서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고 결국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북한 주민, 억류된 사람 기억해 달라

또 현재 북한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노동교화형에 처해진 김국기, 최춘길 씨와 김정욱 선교사, 종신노역형을 받은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 선교사를 기억하고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해 달라고 요청했다. 본인도 사람들의 기도로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방문했던 북한 교회 상황도 언급했다. 평양에 있는 교회를 세 번 방문했고, 그곳에서 직접 예배도 드렸다. 한국과 같은 찬양을 부르고 목사가 설교도 한다. 도중에 성도들이 아멘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도 한다.

그러나 케네스 배 선교사는 북한 사람들이 진정한 예배를 드린다고 볼 순 없을 거 같다고 했다. 성경을 기반으로 설교하지만, 결국 뒷부분에는 김일성 수령 찬양이나 한국을 비방하는 내용으로 끝나는 걸 보며 안타까움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상황이 달라진다면, 북한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현재는 상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탈북민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정착,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북한 동포를 위한 NGO를 설립해 북한과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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