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배와 설교를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삶을 자주 묵상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과 매주 모여서 별도로 주일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다.

요즘 한국교회 '예배주의자'들의 뜨거운 주장처럼 예배가 그토록 엄중하게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옳다면 할례와 세례까지 받으셨던 예수님은 왜 매주 정기적인 예배를 부지런히 하지 않으셨을까. 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능력의 주님께서 계속 큰 이적을 행하시며 더 많은 사람을 모으고 도처에 큰 건물을 세워서 더욱 열심히 예배를 드리지 않으셨을까.

그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삶이 예배고, 삶이 기도고, 삶이 선교고, 삶이 봉헌이고, 그리고 일상의 삶이 제사였다. 나사렛 목수 예수는 주일마다 제자들과 회당에 모여 공적 예배에 힘쓰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루하루를 세리와 창기와 병자와 가난한 민초와 세상 속에서 함께 사셨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 중에만 임재하시는 것일까. 당연히 그건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예배의 유무나 교회당 안과 밖으로 구분하는 건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중세식 이원론적 발상이다. 도리어 하나님은 매 순간 우리 인생의 모든 영역 속에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성도에게는 교회도 세상의 사역지이고, 세상도 교회의 사역지이다. 따라서 공적 예배가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예배는 단지 성도들 신앙생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란 점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성도들은 예배를 무속화하고 이벤트화하여 이를 목회 야망과 교회 성장의 불의한 도구로 악용하려는 일부 직업 종교인들을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흔히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려야 복을 받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우선 순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이미 큰 복이니 마땅히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예배우선주의는 마치 "조상에게 제사를 잘 지내야 복을 받는다"는 미신적 신앙만큼이나 위험하고 단순한 기복 사상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진솔한 '삶'이지 예배로 표현되는 '종교의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자의 삶이다. 다시 말해서 성도의 삶이 영적 예배의 중심이어야 옳은 것이지, 공적 예배가 반드시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삶으로 예배했다. 수고함으로 예배하고, 옥에 갇힘으로 예배하고, 매 맞음으로 예배하고, 자지 못함으로 예배하고, 굶주림으로 예배하고, 또한 헐벗음으로 예배했다(고후11:23-27).

물론 나는 우리 모두 바울처럼 고난받고 죽을 고생을 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사도들조차 자신을 낮추며 '만물의 찌꺼기'처럼 살았으니, 적어도 '주의 종'이라는 소명을 받았으면 최소한의 분수와 양심이라도 지키며 살아 달라고 부탁을 하고픈 것이다.

목사는 종의 직분이다. 그리고 종의 모습은 본래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찌꺼기같이 되는 것이다. 종은 노예나 다름없는 신분이다. 주인이 시키면 싫어도 해야 한다. 주의 제자들 중에 편하고 풍족하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이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한 진정한 종이었다.

그런데 요즘 어떤 종들은 정말 하고 싶은 짓 다 한다. 누릴 것 다 누린다. 무슨 핑계와 명분을 대서라도 기필코 잘 먹고 잘산다. 그리고 스스로 다 잘났다. 그들은 결코 교인을 섬기지 않는다. 오히려 교인들이 열심히 돈 바치고 몸 바쳐서 그들을 섬기고 있다. 그게 모두 삶을 속이고 예배를 잘 치장한 덕분이다.

화려한 건물, 많은 청중, 유창한 설교, 우아한 기도, 그리고 아름다운 찬양이 저절로 신령한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가짜들이 진짜보다 더 능숙하다. 더 근엄하고 더 종교적이다. 더 뜨겁고 더 열심이다. 더 친절하고 더 인간적이다. 더 박식하고 더 유능하다. 더 잘 웃기고 더 잘 울린다. 하지만 성도들은 그런 겉모습에 속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예배를 분별해야 하는 슬픈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전4:13)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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